번역 : Na2Cr2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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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미모리 스즈코


'꿈을 말로 해서 계속해서 노력하면, 손이 닿는 곳까지 다가갈 수 있다고 실감한 6주년이었습니다.'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야! 정진정명 동료다!


-’μ’s Final LoveLive!’부터 반년, 그 동안 μ’s의 곡을 접한적 있으신가요?


미모리 스즈코 거의 최근까지 μ’s의 곡을 듣지 않았어요. 여러 감정이 자신의 안에서 어지럽게 섞일꺼 같아서 그다지 들을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라이브 BD의 영상 체크도 좀처럼 볼 수 업ㅇ서서, 팩키지로 나온 것을 열지 않고 보관해두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여름에 한 자신의 투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간만에 μ’s의 노래를 듣고 싶었어요. 투어의 첫날이 삿포로여서,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 때에 팬미팅 왔었지, 즐거웠어’라고 생각하니 엄청 그리워져서. 간만에 들으니까 역시 좋은 곡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끝난 직후에는 정리를 할 수 없었던거군요.


미모리 감정의 정리는 못했지만, 그래도 날들은 지나가고,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투어도 시작하고, ‘어, 어, 어쩌지!’ 라고.


-멤버와 만난 일도 없었나요?


미모리 멤버는 자신의 라디오나 라이브에 와주어서 가끔 만나곤했어요. TV 애니메이션에서 2학년이 수학여행으로 오키나와에 갔으니까, 우리들도 가자고해서 2학년조로 오키나와 요리집으로 먹으러 갔다던가. (웃음) 의외로 저, 가장 모두랑 만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다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함께 있다는 느낌이 꽤 드네요.


-다시 한 번 파이널 라이브를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최후의 대무대, 긴장하지 않으셨나요?


미모리 줄곧 재미있었어요. 제가 작은 회장 쪽이 긴장해버리는 타입이라, 크면 클수록 긴장이 분산됩니다. 모두도 아마 라이브를 향해서의 반년간은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해야할까, 전개가 빨라서 마비되어 있던거 같네요. (웃음) 홍백 때도 하루 종일 즐거워서, 긴장은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인상이 남았던 파트는?


미모리 많이 여러가지가 있지만서도…’우리들은 하나의 빛(僕たちはひとつの光)’에서 꽃 안에서 스탠바이하고 있을 때, 모두가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야모니(イヤモニ, 모니터링 이어폰)하고 있어서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힘내자라는 기분이라. 그 때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진정명(正眞正銘), 거짓 없는 동료들이구나 라고. 평소의 자신이라면 부끄럽다고 생각할 것도, 그 때는 감정적인 기분이 되어서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2일차의 최후의 순간은 어떠셨나요?


미모리 그걸로 저의 청춘이 막을 내려가는구나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청춘, 고마워’같은. 막이 천천히 슥하고 내려가는 동안 ‘모두가 보이지 않는구나…’라고 꽤 뭉클해졌습니다.


-막이 내려간 종연 직후의 상태는 어떤 분위기였나요?


미모리 모두가 원이 되어, 엄청 울어버렸어요. 캐스트 뿐만 아니라, 스탭 모두가 모여서 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서도 메이킹 영상을 찍어뒀으면 좋은 그림이 찍혔을텐데, 아무도 그럴참이 아니여서. (웃음) 객석부터 모두가 ‘μ’s! μ’s!’라고 콜해주셔서, 누군가가 ‘모두가 부르고 있어. 나가보면 안될까나’라고 말해서, 저도 ‘안될꺼 같아!’라고 말하면서 울어버렸습니다.


캐스트 똘똘 뭉쳐 “스포츠 근성”으로 해온 6년간


-되돌아보아 프로젝트가 시작 했을 때, 우미의 인상은?


미모리 비쥬얼을 보고, 우미쨩이 엄청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때까지 연기한 캐릭터와 비하면, 머리의 색도 어른스럽고, 성격도 야마토 나데시코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역으로 엄청 어려움을 느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우미쨩과 사이좋게 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바로 잡을 순 없었습니다.


-최초로 연기한 것은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僕らのLIVE、君とのLIFE)’의 레코딩이었나요?


미모리 그렇네요. 노래를 가장 먼저 수록해서, 그 후 보이스드라마를 녹음했습니다. 그저 맨처음일 때는 아직 프로젝트 자체도 어떤 것이 되어가는지 알 수 없어서, 수수께끼였습니다. 드라마CD가 시작하고나서 우미쨩의 재밌는 부분, 실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의외로 장난기있는 부분도 틈이 보여와서 ‘우미쨩을 연기하는게 재밌어졌어’라고 생각했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 제1화의 아후레코(애프터 레코딩)의 추억은?


미모리 제1화는 엄청 시간이 걸려서, 밤 늦게까지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지만, 「러브라이브!」에서는 첫 아후레코였던 분도 있으셨고, 저도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꽤 힘들었던 인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난죠씨가 자신의 장면을 확실히 녹음을 끝내고도 최후까지 남아주어서, 9명 전원이서 녹음했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μ’s는 9명이 하나였었네요. 최초에 ‘이 애니메이션은 어떤 의미 스포츠 근성이야’라고 설명을 들었었데, 그 정신을 우리들도 받아들여서 부활동같은 스타일로 수록했었네요.


-그렇게 길러진 멤버들과의 인연도 있고, 또 아후레코를 거쳐서 우미와의 깊은 관계가 되었던걸로 생각합니다.


미모리 그렇네요. 제가 잠깐 말했던 말이 우미쨩의 성격에 반영되어가는 일체감도 생겨나서. 반대로 저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미쨩이 매력적으로 보일까나라던가, 귀여울까나라던가, 그런 것을 생각해왔었네요.


-여태까지의 곡중에서 인상에 남는 곡은 있으신가요?


미모리 ‘Wonderful Rush’는 힘들었습니다. μ’s는 자신이 부르는 파트 이외에도 한번 풀로 녹음하기 떄문에, 어쨌든 파트가 많아서. 저는 보통 착착 레코딩할 수 있는 타입이지만, ‘Wonderful Rush’ 때는 일번 타자로 몇 시간이 경과해도 끝나지 않고, 지쳐버려서. 당시는 랩(Rap) 같은 것에 도전한 적이 없었고, 텐션이 높은 랩같은건 냉정한 우미쨩이랑 연결지을 수 없어서 엄청 어려웠습니다.


-우미쨩답게 랩하는 것은 확실히 어렵죠.


미모리 멤버 각자각자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미쨩에게는 랩이 들어간 노래는 엄청 익숙하지 않아서. ‘Super LOVE=Super LIVE!’도 고생했었네요. 그럴 때는 대체적으로 니코쨩이 대활약해서, ‘활발한 계열의 아이는 좋겠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웃음)


-노래뿐만 아니라, 2012년의 1st 라이브에서 댄스를 하게 되었을 때는 어떠셨나요?


미모리 저는 ‘좋아!’라고 느꼈었네요. 계속 댄스를 하고 있어서, 드디어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순간이 온게 기뻐서, 엄청 들뜨고 두근두근 했어요. 댄서 분이 춤추는 영상을 사전에 받았기 때문에, 그걸 보면서 안무를 외워서. 첫 레슨에서 선생님에게 ‘확실하네요’라고 칭찬받은 것이 엄청 기뻤습니다. 칭찬받으면 성장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텐션 높아져서. (웃음)


-그 라이브는 그 후에 아니사마로 흘러가는 것도 포함해, 큰 전환기였네요.


미모리 1st 라이브는 관객이 모여주실지 어떨지 알 수 없어서 불안했었지만, 저희들이 어두운 곳에서 살짝살짝 포지션을 이루고 있을 때에 엄청난 환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걸로 놀래서 ‘우리들을 원하고 있어!’라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에는 꽤 용기를 가질 수 있던 해였네요. 그때까지는 어떻게 될까나, 같은 것이 마음 한 가운데에 있었어요.


-그 외에 지금까지 인상에 남았던 라이브가 있으신가요?


미모리 3rd 라이브 때의 2학년 3명이서 ‘START:DASH!!’를 부른 것이 고민했던 것이 많습니다. TV 애니메이션과 같은 의상을 입고, 노래에 이어지는 조금의 연기를 넣기도 했었는데, 그 이후로 3명이서 한적이 없네요.


-그 후에는 확고부동한 존재가 되어서...2015년부터 돔에 이르기까지는 엄청 위세가 대단했었어요.


미모리 2015년에는 μ’s YEAR였었네요. 뭐랄까 믿겨지지 않은 기분이라, 도쿄돔에서 정말로 할 수 있게 된거라던가, 정말로 홍백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라던가, 작년의 여름 쯤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어쨌든 무작정 발버둥치며 2015년이 끝났는데, 몇년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러브라이브!」의 추억이라면 2015년이 팟하고 떠오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농축된 해입니다.


-6년간을 달려나온 지금, 미모리 씨에게 있어서 μ’s란 어떤 존재입니까?


미모리 청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꿈’이라는 단어를 현실의 것으로 해주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던 것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힘으로 문뜩 떠올랐다고 해야할까, 그런 주변의 힘이란 대단하구나라고.


-꿈은 이루어진다, 의 설득력이군요.


미모리 아니 정말로!  멋진 인생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은 어른 9명과 평범했던 우미에 향해


-새삼스럽지만 멤버 8명에 대해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미모리 μ’s의 멤버는 저를 포함해, 엄청 운이 좋은 9명이라고 생각하네요. 모두 운이 좋은  사람으로 있어주어서 고마워라고. 물론 노력도 했기 때문에, 열중한 노력이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운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공은 할 수 없지 않았을까라고.


-이 9명이 아니면 안된다는거군요.


미모리 모두 퓨어하고, 꿈에 향해서 올곧다고 해야할까, 완벽주의자가 많네요. 저도 그렇지만 어느정도 어른이고, 각각 좌절도 경험도 해왔습니다. 인간적인 점이라면 비교적 모두가 너무 간섭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들 같은 질투라던가 따돌림도 없었고, 개방적인 좋은 거리감으로 좋은 어른의 사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미쨩에게 대해서 지금 한마디 한다면?


미모리 최초는 의외로 수수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설마 여기까지 햇빛을 받게 되어(알려지게) 되어 개화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사람을 보는 눈이 없지 않았을까라고도. (웃음)


-여기까지 바뀐 것은 미모리 씨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모리 그렇네요. 제가 좀 더 우미쨩같은 인간이었으면, 계속 심플한 여자아이가 되어있었을지도 몰라요. 돌아보면 애드립부터 우미쨩이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Wonderful Rush’에서 우미쨩이 싸움에 진 무사의 영혼이 된다는 보이스 드라마가 있는데, 그 때 수록에서는 꽤 자유롭게 해버렸었네요. 거기서부터 조금은 익살스러운 노선이 되어, 얼굴장난(顔芸)이라던가도 절대 저의 니코나마의 영향이라고. (웃음) 제가 바로 개그를 치고 싶어지는 성격이니까 이렇게 되버린거라면, ‘만나서 다행이네, 우미쨩. 나에게 감사해도 좋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미모리 씨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거네요. (웃음)


미모리 엄청나게 거만하네요. (웃음) 저도 우미쨩과 만나서, 조용하고 쿨한 연기 등, 성우로서 공부가 된 부분도 잔뜩 있었기 때문에, 서로 WIN-WIN하는 관계를 쌓은게 아닐까나, 라고.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메세지를 부탁드립니다.


미모리 저 자신, μ’s와 만나게 되어 성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확 바뀌었습니다. 아주 큰 꿈은 이뤄지지 않는걸까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부분도 있지만, 꿈을 말로 해서 노력한다면, 의외로 손이 닿는 곳까지 다가갈 수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는 6년간이었습니다. 응원해준 여러분에게 있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된다면 기쁩니다. 저도 μ’s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 적어졌지만, 작품은 그 사람이 봤을 때가 살아있을 때이니까, 자신이 없을 때같은 경우에 다시 보아주셨으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은 몇년이 지나도 좋은 작품이니까 이 앞으로도 계속 봐주셨으면 하고, ‘저희들에 대해서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웃음) 가끔은 기억해주신다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던 것이,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힘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03. 우치다 아야


"힘들 때나 벽에 부딪혔을 때 떠올려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토리다움"을 추구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 "µ's Final LoveLive!" 때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여태까지의 6년을 돌아볼 타이밍이 있었나요?


우치다 아야 벌써 반년이나 지났네요....... 파이널 라이브 BD를 발매날 조금 전에 받아봤는데요, 도착하고 바로 틀어볼 용기가 나질 않아서 2~3일은 그대로 놔뒀어요. 발매날 전에 보긴 봤지만, 관객 입장에서 보고 받아들여야 된다는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긴 라이브였던 건 아니까 따뜻한 마실거리도 준비하고 "느긋하게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몸을 앞으로 기울이게 되고, 마실 걸 마실 틈도 없이 순간순간마다 여기저기로 눈이 가다보니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도 아까울 정도였어요(웃음).


- 다시 보게 되니 어떠셨나요?


우치다 제가 찍히지 않는 부분에선 "이 때 여기 가사 실수한 얘가 너무 귀여워서 눈물이 난다!"라던가, 거의 한 명의 시청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 볼 땐 왠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여긴 깔끔하게 잘 됐네"라던가, "멀리서 찍은 뒷모습은 코토리쨩처럼 보이네!"라던가, 꽤 자세하게 체크했는데요, 저의 다양한 모습이 나와서 기쁘다고 할까요...... 복잡한 심정이었네요. "저번엔 솔직하게 볼 수 없었으니까 가볍게 보자"라던가, "이 곡은 다시 한 번 보자"라던가, 이래저래 몇 번씩 돌려봤네요.


- 파이널 라이브까지 준비기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우치다 솔직히 『러브라이브!』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니 어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 곡은 마지막 곡이구나"하고 리허설 도중에도 묘하게 숙연해지기도 하고요. 팬분들께도 물론 그렇지만, 제게 있어서도 마지막이니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여태까지 이상으로 코토리쨩다운 움직음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다 같이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있다 보니 그 안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고, 저 스스로 최고의 추억으로 남을 라이브로 만들고 싶었어요. 여러가지가 다다닷 달려들어서 "우와앗!"하다가 끝나버리는 건 싫겠지 싶어서요. 돔에서 처음 안무를 하게 된 곡도 있다보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평소보다 제 자신의 의견을 많이 말하게 됐습니다.


- 파이널 라이브에서 인상에 남은 씬은 있었나요?


우치다 "우리들은 하나의 빛"이 시작하기 전에 9명끼리만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객석에 있는 모두에겐 보이지 않는 곳,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꽃에 쌓인 채로 이동하던 멤버들만의 공간이 가장 리얼하게 느껴져서 인상에 남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선 그려지지 않은 무대 뒤입니다만 "작중 µ's도 이런 느낌이었을까"라고 생각하니 그 때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울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지만 결국 마지막엔 울어버렸네요. 그래도 스스로도 멋진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멤버들이 정말 좋은 표정으로 울고 있는 걸 보고 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지구나 싶어요. 미모링은 평소에 그리 울지 않는데, 코멘트를 하고 있을 때 슥하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 때 제가 우연히 그 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눈물이 너무 예쁘게 흘러서 "와아!"했어요. 말로 다 할 수 없다라는 말 그대로였는데, 그 때 여채까지 해온 것들이 전부 아름다워졌다고 느꼈습니다.


- 끝나고 나선 어떤 상태였나요?


우치다 해냈다고 하기엔 또 다른데요, 굳이 따지자면 1일차 끝나고서가 문제였습니다. 아쉬움을 남기기 싫다고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2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안 나왔거든요. "어떡하지!"라고 했죠....... 1일차밖에 못 오는 사람도 있다보니 2일차가 있단 걸 차마 생각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1일차 라이브는 1일차에서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처럼 몸이 따라가주질 못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온 힘을 다했다는 거구나 싶어요. 영상을 보면 틈틈마다 엄청 즐겁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죠(웃음).


"코토리쨩이다!"를 목표로 한 나날


- 거슬러 올라가서 코토리와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땠나요?


우치다 이름만 들어도 멤버들 중에서 부드러운 존재일까 상상하기도 하고, 꼬리 같은 게 붙어있길래 조금 멋쟁이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정보가 없다보니 일러스트랑 이름 분위기에서 어떤 아이일지 상상했어요.


- 아직 성격 같은 것도 정해지지 않았었나 보군요.


우치다 하나하나 더듬어가던 과정이었지만 전 애초부터 「전격 G's magazine」의 독자 참가형 기획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에 참가할 수 있는 게 기뻤고, 독자 여러분의 투표를 통해 앞으로 자라날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고민하는 것도 좋진 않겠다 싶었죠. 어떻게 자라날까 두근두근거렸네요.


- 어떤 의미론 우치다씨는 기획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한 멤버라는 거군요(웃음).


우치다 그래도 투표로 순위를 매긴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아무래도 일희일비하게 되잖아요. 첫 번째 투표에선 9명 중에서 9위라서 "하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죠(웃음). 그 때 제가 좀 더 코토리쨩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9명이서 노래할 때 솔로 한 구절이라도 코토리쨩이라고 눈치챌 만한 표정을 불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 때까지 9명이서 노래하려고 하면 키가 낮은 것 같아서 코토리쨩의 둥실둥실한 부분을 내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baby maybe 사랑의 버튼」은 템포가 느긋하고 부르기 쉬워서 "이런 식으로 부르면 되게 코토리쨩스럽게 불리는구나"하고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그런 코토리다움을 처음 내보이게 된 1st 라이브에선 어떤 기분이셨나요?


우치다 처음엔 아직 자신이 없어서 관객분들이 와주시긴 할까 하는 불안함이 컸습니다. 그 불안이 Printemps 3명이서 『러브라이브!』로서 처음 이벤트를 했을 때부터 있었어요. 그래도 그 때 수용인원을 꽉 채운 80분이 와주셨습니다. 그게 너무 기뻐서....... 그 때부터 라이브 준비를 하는 도중에 조금씩 저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한 걸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이 생긴 것 같아요.


- 그 예감대로 µ's는 점점 큰 존재가 됐습니다만, 심정의 변화는 있었나요?


우치다 저 같은 경우엔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아이돌이 아닌 성우를 동경해서 이 업계에 뛰어들었으니 겉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선 조금 망설이기도 했어요. 무대나 뮤지컬처럼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마음가짐으로 노래하는 게 미나미 코토리쨩의 역할의 우치다 아야로서 정답이라고 생각했던지라 코토리쨩다움을 얼마나 재현해내느냐를 많이 의식했었죠. 라이브에서 애니메이션과 완전히 똑같은 안무를 한다면 단순히 춤만 춰선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 부분에서 코토리 역으로서 연기가 필요다보니 아이돌 그룹의 영상도 보고, 둥실둥실하고 귀엽게 보이는 애의 움직임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토리다움"을 추구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 주변에서 열광하는 가운데에 철저히 코토리라는 존재와 일체화하는 스테이지를 생각했다는 거군요.


우치다 네. 점점 인기가 많아지는 코토리쨩에 대해 제가 따라가는 느낌도 있었고, 불안하기도 했었습니다. 얼굴도 다르고 스타일도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닌데 같은 의상을 입고 잡지에 나가기도 하다보니 보는 사람한텐 "안 귀여워"라는 말을 듣고 축 쳐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가 가진 범위 안에서 최대한 해보려던 게 처음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공연하게 되었을 때 도리어 터져나오게 됐습니다. 회장이 넓어지다보니 콩알만하게밖에 안 보인다면 오히려 실루엣이라도 비슷하게 하면 멀리서 보기엔 코토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펴고 탈색까지 하고서야 코토리 색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 아까 말씀하셨는데, 파이널 라이브 BD를 보시고 스스로도 코토리답다고 생각하게 되신 거네요.


우치다 여태까지 헤어메이크를 해주시는 분과 함께 몇 번씩 고쳐나갔거든요. 돔에선 붙이는 가발까지 붙여서 머리 길이를 늘리고, 염색도 깔끔하게 하고, 벼슬도 붙여서 진짜 코토리에 가장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코토리쨩은 의상쪽이라 전 그 부분에도 고집하는 게 있었어요. 이번에 빨리 갈아입어야 될 일이 많다보니 두껍게 껴입어야 되는 의상이 많아서 몇 번씩 의상 담당하시는 분이랑 상담을 했습니다. 「꼬옥하고 "love"로 접근 중!」 의상은 특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여기 파니에()가 좋아요!"라던가 "여기가 두꺼우면 애니메이션 그림이랑 실루엣이 달라요!"라던가, 끈질기게 건의를 했었죠. 그렇게 머리모양이나 의상에 고집을 부려서 BD 영상에서 뒷모습을 봤을 때 진짜 코토리쨩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스스로도 만족했습니다. "내가 이걸 보고 싶었던 거구나! 이런 작품 어디 없지"라면서요(웃음).


무적의 9명이 모인 기적의 작품


- 우치다씨에게 있어서 µ's 멤버는 어떤 존재인가요?


우치다 정말 무적의 9명이라고 생각합니다. µ's 모두를 대단하다고 여겨요. 평소에도 생각하는 거지만 팬미팅 때 다시금 이 9명이 모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의 본업은 뭘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도, 춤도 잘 하고, 이야기도 재밌잖아요. 한명한명에게 존경할 만한 부분이 많이 있고, 개성 넘치는 9명이 모여있다 보니 잘하는 것도 제각각이예요. "내가 실수해도 얘가 커버해주겠지" 싶은 안정감도 있고, 이상하거나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멤버끼리 무언의 연결고리로 통하는 듯한 팀워크도 엄청났죠. 남얘기 같지만서도 정말 "뭐하는 녀석들이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 한편으로 6년간을 함께 걸어온 코토리는 어떤 존재인가요?


우치다 뭘까요, 신기한 느낌이네요. 작품은 일단락을 맞이했지만 쭉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생명을 불어넣는다"라고 곧잘 말하는데요, 함께한 추억이 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즐겁기도 함께 하며 즐겨온 것들은 쭉 남겠죠. 어릴 때 본 TV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변함없이 마음에 남아있듯이요....... 저와는 확실히 다르지만, 코토리가 있다면 힘낼 수 있다, 그런 인생의 보물 같은 존재일까요. 제가 모르는 부분도 여러 사람의 보물이 되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보물이 되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메시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치다 파이널 라이브가 끝나고 슬퍼해주시는 팬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반년이 지나고, 저는 상당히 상쾌하게 갠 마음으로 지금 인터뷰에 답변할 수 있습니다. 그 스테이지를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러브라이브!』는 기적적인 작품이라고 자주 일컬어지는데요, 라이브 마지막에 다 함께 합창하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기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BD를 다시 봐도 "이렇게 좋은 곳에서 끝난다고!?"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무척이나 멋진 마지막이였어요(웃음).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사랑받은 작품은 어딜 가도 찾아볼 수 없을 거 같고, 그런 작품을 만들어주신 건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신 여러분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CD가 400장밖에 팔리지 않던 때부터 한 명, 또 한 명이 좋아해주셨기에 이렇게 큰 꿈을 꿀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멋진 추억으로서, 함께 청춘들 달려온 일원으로서, 그걸 잊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들은 항상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으니까 힘들 때나 벽에 부딪혔을 때 『러브라이브!』를 떠올려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그런 존재로서 계속해서 빛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02. 난죠 요시노


「6년간 함께 걸어왔으니 "에리는 지금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야세가 빛날 수 없어! 그런 마음가짐으로 스테이지에 섰습니다


- "µ's Final LoveLive!" 때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여태까지의 6년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나요?


난죠 요시노 그 날을 경계로 일단락......이라고는 하지만 극적으로 변한 건 없었네요. 학생 시절 때 봄방학을 하면 「정말 학교 안 가도 되는구나」싶은 정도예요. 그러면서도 항상 눈앞의 새로운 일들이랑 마주하는 게 최근 제 상황이었어요. 한편으론 열심히 응원해주시는 관객분들 중에서도 어디선가 µ's의 흔적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듯한 격한 "µ's로스"를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걸 다른 작품이나 개인 활동에서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응원해줬다고 느끼는 걸 돌아보는 거라고 말한다면 돌아보는 겁니다만, 실제론 "아직 반년밖에 안 지났구나"라는 느낌이 듭니다.


- 다시금 여쭤보는데, 파이널 라이브까진 어떻게 지내셨나요?


난죠 우선 도쿄돔이라는 게 감당하지 못 할 정도로 거대해서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저 "여기서 이틀간 마지막 라이브를 하고, 넓은 회장이 관객분들로 메워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전날에 리허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이다보니 멤버들도 모두 "어떡해야 여태까지의 『러브라이브!』나 µ's의 좋은 점을 라이브에서 전해줄 수 있을까"라며 직전까지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보다도 "좀 더 이렇게 보여주는 게 더 잘 전해지지 않을까"하는 정신적인 노력이 여태까지 했던 라이브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각자가 여태까지 연기해온 여자아이들을 재차 마주하며 만들어낸 라이브 아니었나, 그런 생각입니다.


- 당일에 관객들을 보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난죠 저는 스테이지에서 본 『러브라이브!』의 가장 큰 특징이 아홉 색깔로 빛나는 객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그 무대가 도쿄돔이라 엄청 넓은 곳에서 여러 색깔이 보였고요....... 리허설과 실제 라이브의 결정적 차이는 관객들이 있고, 펜라이트를 들고 있다는 거예요. 몇 달을 아무런 색깔도 없이 연습해온 걸 당일엔 그렇게 예쁘게 빛나는 곳에서 할 수 있다는 거죠. 이쪽으로도 감동받게 됩니다.


- MC에서 난죠씨가 "9명이 아닌 18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라이브에서 에리와 있다는 느낌이란 어떤 거였을까요?


난죠 당시에 에리와의 거리감이 어땠느냐는 건, 실은 라이브에 필사적이어서 잘 기억이 나진 않네요.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리허설 때부터 캐스트진은 모두 자기가 연기하는 아이들을 느껴주길 바라며,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의 "µ's"를 재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 노력한다기보단 아야세 에리를 위해 노력한다, 이런 거지요. 가령 제 자신의 라이브였다면 좀 더 설렁설렁 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그 땐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야세가 빛날 수 없어, 그녀를 위해서 노력하고 싶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스테이지에 서있었네요.


- 그 퍼포먼스는 그런 마음에서 나왔다는 거군요


난죠 스테이지에 서있을 땐 순수하게 즐겁다는 마음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360도에 관객분들이 있고, 계속 웃게 되고, 때론 눈물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어떤 면으론 신을 보는 듯한 눈으로 스테이지를 보기도 하곤 하는 거죠. 그러면 저도 자연스레 할 수 있는 만큼 뒤쪽이나 위쪽 자리 근처까지 가서 "실제로 µ's를 만났다"라는 체험을 전해주고 싶었고, 그에 필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로감이 든 것도 라이브가 다 끝나고서 호텔에 돌아가고 난 후에야 "...... 내일도 있었지!"라고 한 거였어요 (웃음).


아야세 에리를 위해 자신이 노력한다


- 거슬러올라가서 처음에 에리와 만났을 때 인상은 어땠나요?


난죠 저는 에리처럼 "살짝 언니"라는 역할을 연기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애가 걸렸구나 싶었어요. 다른 8명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까 생각했죠. 6년 전이라면 목소리 높고 귀여운 분위기의 여자애들이 인기가 많던 때라서 "에리쨩은 인기 얻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죠. 이 애의 매력을 어떻게 끌어내고 어떻게 연기해야 보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엄청 고민했었네요.


- 노래도 에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인상에 남는 곡은 있나요?


난죠 그렇게 질문받을 때마다 계속 「START:DASH!!」라고 대답해왔었는데, 마지막까지 해보니 「우리들은 하나의 빛」도 인상애 남고, 레코딩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네요. 제 안에선 어렴풋하게 "어른스럽게 연기하자"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레코딩에 들어가니 "어쨌든 활기차게!" 해달라셨습니다(웃음). 아직 성격이 정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여기서 활기차게 했다간 전 그 뒤로 갭에 고생할 것 같아서 제 나름의 에리를 이미지화하고, 그 성격의 분위기에서 기운차게 하는 식으로 미묘하게 가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그 시점에서 노래하는 방법이 달라졌더라면 지금의 에리는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난죠 처음에 그렸던 막연한 이미지가 찰카닥 들어맞게 된 게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서이네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전 쿨하게 연기하려고 했는데, 첫 보이스 드라마 무렵엔 허당 같은 느낌이 좀 있어서.......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서야 간신히 "그래그래, 내가 하고자 했던 아야세가 이거야!"라고 할 수 있었죠(웃음).


- 학생회장스러운 쿨한 분위기 말씀이신가요?


난죠 솔직하지 못 하고, 좀처럼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 하고 서투른 부분이 아야세 에리의 귀여운 부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 때까지 해왔던 "허당치카"가 나올 타이밍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첫 인물상 묘사라던가, TV 애니메이션에서 거리가 줄어드는 과정 같은 걸 보며 "이거야 이거! 이걸 해보고 싶었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 처음엔 대립축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멤버들 사이에서도 에리가 갈등하는 씬이 인상적이었죠.


난죠 고민하길 좋아하는 거겠죠. 정말로 괜찮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해보자!"라고 말하는 호노카라던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하는 멤버들도 있는 와중에 "정말로?"라고 하는 식으로요. 제게도 그런 점이 있어서 상당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 방금 말씀하신 그런 공감을 포함해서 지금 에리와 난죠씨는 어떤 관계인가요?


난죠 때론 제 애 같기도 하고, 때론 반쪽 같기도 하고, 제 자신 같을 때도 있어요. 작품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멤버가 캐스트에게 다가오는 게 있다고 있달까요, 연기하는 제가 에리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물색 물건을 고르게 되기도 해요. 요 6년간 서로가 융합하게 된 부분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에리의 관계성을 다시금 생각해볼 틈도 없이 당장 눈앞에 닥친 라이브나 엄청난 수의 곡을 레코딩을 소화해내느라 필사적이었고,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에리고 저디까지가 저인지가 모호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파이널 라이브에선 "아야세 에리를 있는 힘껏 빛내주고 싶으니까 내가 그걸 위해 노력한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6년 중에서도 작년은 그야말로 숨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고조되었는데요, 그런 흐름을 어떻게 보셨나요?


난죠 초창기의 "아야세 에리를 어떻게 연기할까"라는 망설임이나 제가 아무리 "귀엽잖아!"라고 말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나날들이라던가(웃음), 그런 걸 잊어선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전 『러브라이브!』 때문에 성우가 된 게 아니고, 병행하고 있는 다른 작품의 캐릭터와 마주하기도 하니까요. 그게 전부 『러브라이브!』의 기세에 휩쓸렸다간 순식간에 제 자신마저 휩쓸려 없어져버릴 것 같아서, 냉정하게 있어야 된다는 위기감이 있었네요. 규모가 커지는 속도도 엄청났고, 스케일도 차원이 달랐던 만큼 무서웠던 부분도 있었죠.


- 그 땐 평소에 애니메이션을 안 보는 사람들도 『러브라이브!』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죠.


난죠 "대단하네"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저는 캐스트로서 관여한다는 생각이 강했스니 TV에서나 미디어에서 나마µ's(원문 : 生身のほうのµ's)를 알게 됐다고 해도 그게 애니메이션까지 이어졌으면 싶은 바람이 컸어요.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동지"로서의 말


- 농밀한 6년간을 달려온 지금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난죠 성우 일의 일환으로 있기도 하지만, 그걸 어느 정도 뛰어넘은 라이브이기도 했고, 평범한 성우 일을 했더라면 경험 못 했을 일도 잔뜩 했죠. 배역으로서도 성우로서도 엄청난 일도 물론 있었지만, 정말 여러가지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µ's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도 많이 있고요.


함께 "µ's"를 경험해온 동료로서, 앞을 바라보고 힘내주길 바란다


- 그런 만남 중 하나가 캐스트 8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난죠 역시 아직까지도 약간 가족스러운 감이 가시질 않긴 합니다. 정말로 같은 밥통의 밥을 먹은 셈이고요(웃음). 거의 매일 함께 있는 시간이 지나갔으니 이전만큼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어딘가 현장에서 얼굴을 보면 안심된다고 할까요. 다른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도 또 다른 진정되는 느낌이에요.


- 함께 6년간을 보낸 에리에 대해서 한마디 해준다면?


난죠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일까요. 6년간 계속 바로 옆을 걸어와서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다시 어떤 길에서 마주쳐서 만나면 좋겠다 싶긴 한데요. 그렇게 오랫동안 곁에 있던 사람과 떨어져버린 건 졸업이랑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정말로 지금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싶어요. 2차원이라고 말한다면 2차원이겠지만, 정말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 같아서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 마지막에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난죠 그 뒤로 µ's로스는 어떠신가요?(웃음). 정말로 눈물이 마를 정도로 운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엔 저희를 몰랐던 분한테서 "최근에 알게 됐는데, 왜 몰랐는지 후회한다"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해요. "저는 대체 왜 라이브에 가지 않은 걸까요!" 같이요. 저로선 "그러게 보라고 했잖아!"라고 하는 식이지만요(웃음). 그렇게 다양한 µ's 팬이 있다보니 6년간 계속 좇아와주신 사람들도 있고, 그 중 몇 년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지낸 시간이 많든 적든, 그 마음은 진짜라고 생각해요. 파이널 라이브가 끝나고 아직 슬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µ's가 소멸한 것도 아니고, 함께 만들어온 추억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특히 그렇게 "슬퍼...... 슬퍼서 내일이 깜깜해......"라는 사람에겐 함께 µ's와 지내온 동지로서, 너무 울지 말고 앞을 바라바줬으면 합니다. 또 언제 어디에선가 µ's가 여러분의 앞에 나타나게 될 날이 있다면 그 때 그 6년간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 여러분도 그렇고, 연기한 저희도 그렇습니다. µ's를 경험한 동료로서, 앞을 바라보고 힘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모두 각자의 시간을 보냈을 테니, 이제 다음으로 열정을 쏟을 걸 사람도 있을 테고, 여전히 끝난 것에 개운치 않아서 앞으로 어떡할지 불투명한 사람도 있겠죠. 마음이 좀 정리됐을 때 6년간을 되돌아보며 "서로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변함없이 µ's와의 추억이나 노래를 소중히 여기며 각자의 생활에 힘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번역 : Na2Cr2O7

링크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emitsun&no=1734


01. 닛타 에미


'각각의 시간 안에서 이야기와 만난 순간이, 「러브라이브!」 라는 꿈의 시작입니다.'


호노카의 등을 계속 쫓아와서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생각듭니다.


-"μ’s Final LoveLive!"에서 반년, 다시 생각해볼 기회는 있으셨나요?


닛타 에미 저, '도쿄돔이 끝난다면 「러브라이브!」의 팬이 되자!'라고 계속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돔 공연의 다음 날은 라이브뷰잉에 가기도 하고, 그 후에도 TV 애니메이션을 제1화부터 되돌아보거나 해서 작품에 닿을 기회가 있엇지만서도, 쓸쓸하게 되어 떠올리게 되는 느낌은 아니었네요. 하지만 새삼스럽게 돔의 영상을 볼 때에, '정말 엄청난 경험을 했구나, 우리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에 도쿄돔 공연이라고 들었을 때 감상은 어떠셨나요?


닛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μ’s가 아키바돔에 서있는 모습은, 사실은 애니메이션에서 그려지지 않았죠. 저는 계속 μ’s를 귀감으로 삼아와서, 호노카의 등을 계속 보아왔습니다. 호노카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라서, 지금까지는 뒤쫓자라고 했지만, 처음으로 그녀들보다 큰 스테이지에 저희들이 서서 그녀들의 등을 쫓아 가는 것이 아닌,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답(未踏)의 경치라는 것을 이중으로 느꼈던거군요.


닛타 ‘도쿄돔’ 이라는 이름에 위축되는 느낌도 있었지만, 라이브의 MC에서도 말했듯이,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모인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엄청 넓었지만 스테이지를 이곳저곳 다닌다던가, 토롯코(*무대에서 타고 다니던 차)에서 돔 내를 이동하던가, 응원해주는 여러분의 얼굴이 보이게 되어서. 지금이라도 그 경치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리허설 등의 준비는 어떤 상태였나요?


닛타 돔을 향해서의 리허설은 스케쥴이 꽤 타이트해서, 하지만 도쿄돔이 넓어서 아무리 넓은 스튜디오에서 하더라도 당일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실제의 스테이지에 섰을 때부터 드디어 ‘도쿄돔에 섰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의 안에서도 돔을 상정하며 걸어보지만, 물론 돔 정도의 넓이는 아닙니다. ‘이 거리를 몇번 왕복하면 스테이지의 이쯤에 간다’라고 들어도,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경치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웃음)


-진정한 의미로 서보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거군요.


닛타 네. 하지만, 모두가 의견을 서로 내어 만든 최고의 세트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불안도 있었지만, 곡을 다시 들을 때마다 ‘괜찮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방은 터프한 스테이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멤버도 관객도 웃는 얼굴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기분이 어떠셨나요?


닛타 저, 「러브라이브!」의 스테이지에서는 울어버릴 때가 많지만, 1일차는 ‘울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오늘밖에 없어!’라고 생각해서 참았습니다. 하지만, 2일차에는 ‘코우사카 호노카 역의 닛타 에미’로는 있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네요. 호노카를 잘 연기하는 것보다도, 자기자신을 포함해서 최고의 시간으로 하자라는 기분으로 임하였습니다.


-1일차를 마치고 , 2일차는 이제 즐겁게하자라고 하는.


닛타 ‘Snow halation’의 최후, 객석이 흰색에서 오렌지로 바뀌는 순간을 멤버 중에 저만이 정면을 향하여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도 지금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거 같네요. 라는 것은 풍경으로서는 눈에 들어오지만, μ’s로서 스테이지에 설 때는 PV를 떠올리면서 호노카가 있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해왔으니까요.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이 있어서의 μ’s라 언제나 거기에 몰입하여 보고 있는거군요.


닛타 하지만, 돔의 2일차에서는 닛타 에미로서 객석을 보았습니다. 멤버조차 볼 수 없는 경치를 혼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사치를 맛보는 것은 지금밖에 없어!’라고. 그러니까 라이브의 영상을 보면, 지금까지 중 가장 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예뻤어요! 처음으로 회장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걸 도쿄돔에서 한다는건. (웃음)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1st 라이브를 거쳐 “시작한” 순간


-새삼스럽지만 호노카와 처음 만났던 때의 인상을 들려주세요.


닛타 사무소에서 오디션을 받았을 때는 처음 그림을 보고, 최초의 설정으로 ‘보통의 여자아이’라고 쓰여있던 것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돌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보통의 아이일 리 없어라고.


-거기서부터 긴 교류를 거쳐 인상도 바뀌어 왔다고 생각합니다만, 닛타 씨의 안에서는 호노카다움을 얻은 것은 어느 때셨나요?


닛타 호노카다운 노래 방법을 계속 자신 안에서도 모색해와서, ‘이거다!’라고 채널이 완벽하게 맞은 감각을 얻은 것은 ‘꿈 없는 꿈은 꿈이 아니야(夢なき夢は夢じゃない)’(TV 애니메이션 Blu-ray 제1권 특장한정판특전)네요. 적극적인 것밖에 없는 에너지의 혼으로, ‘파이트야!(ファイトだよ!)’라는 말이 태어난 곡이기도 합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기까지는 단편적인 이야기으로 밖에 그녀들을 알 수 없었지만, 이른바 ‘밝고 활기찬’이라는 연기로는 정리할 수 없는 아이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기부터 제1화의 아후레코(애프터 레코딩)를 끝내고, 호노카에 가까워졌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제1화의 아후레코는 큰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닛타 그렇게 고생했던 아후레코는 없지 않았을까...하지만, 호노카다움을 얻은 것은 그 아후레코와 제1화 삽입곡의 ‘나아가자→내일로(ススメ→トゥモロウ)’에 만났던 것이 컸습니다. 인생을 바꾼 한 곡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TV 애니메이션의 첫번째 소리가 그것을 불렀던 것이기도 하고, 거기에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이 매우 집약되어 있습니다. 감독에게 ‘이 작품의 도입부분이기도 하니, 뉴트럴하게, 퓨어하고 여러 느낌이 드는 창법으로 해주세요’라고 들어서 다시 녹음했었어요. 그 디렉션(방향)으로 ‘그런가!’라고 이해했습니다.


-그 창법이기 때문에 시작했던거군요. 최근의 아후레코에서는 특별한 감정은 없으셨나요?


닛타 작년 12월에 홍백가합전에 돔 공연의 앞부분에 흐르는 애니메이션을 같이 녹화했는데, 그 때는 완성이 기대되어 보통의 팬의 시선으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돔 공연의 영상은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뭉클해져서, 리허설의 날에 그것을 떠올려서 ‘사전에 보아두지 않으면 스테이지에서 울어버릴꺼 같은 패턴이다!’라고 생각해서 스크린으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정말로 보아두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걸 본방에서 처음 보면 저, 설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웃음) ‘다음 곡은 무리에요!’라고 리허설도 한번 중단할 정도로...그건 훌륭했습니다.


-각각의 라이브 회장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의 요코하마BLITZ에서의 1st 라이브는 어떠셨나요?


닛타 그 때 막이 오르고 스테이지의 위에서부터 팬분들이 보였을 때의 공기가 바뀌었다는 것이 알았습니다. 그저 라이브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닌, 좀 더 큰 것이 움직이게 되었다는 감각이 있어서, “시작한다”라는 것은 이렇구나라고 생각했네요.


-팬들의 환성으로 시작한 순간을 실감했던거군요.


닛타 당시, 「러브라이브!」는 TV 애니메이션이 된 것도 아니고, ‘전격 G’s 매거진’이나 니코니코 생방송에서의 조금의 방송이 있던 정도라 수수께끼 같았습니다. 그게 갑자기 라이브를 하게 되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프로듀서와 이야기하거나 했습니다. 아직 불안했었네요.


-지금에 와서 뒤에 영상을 등에 지는 스타일이 확립되었는데, 당시에는 제로부터 그것을 만들게 된거군요.


닛타 영상과 성우가 어우러진 것이 μ’s가 시작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보이스드라마 등에서 라이브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체험하여 처음으로 그녀들이 말한 “라이브”라는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라이브는 외견도 얽혀버려서 호노카의 머리의 위치가 반대로 된다던가. (웃음)


호노카들, 그리고 우리들은, 영원히 μ’s입니다!


-라이브 회장도 점점 커져서 μ’s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것을 느끼셨나요?


닛타 TV 애니메이션 2기 이후는 눈 깜짝할 새에 날들이 지나, 뭐랄까 매달려있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래서 TV 애니메이션에서 호노카가 ‘3학년이 졸업하면 끝낼게’라고 했을 때에 저 자신도 구해졌다고 해야할까...저희들이 형태로 해야할 것은 이렇게 말한 그녀들의 추억이기도 하며, 그것이 저희들 μ’s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쿄돔 공연이 끝나더라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자신도 젊어질 수 없어. 그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바뀌지 않는 것에 향했던 것이 μ’s의 청춘 이야기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것을 부정하면 안된다는 기분은 있었습니다.


-그것을 말로해서 전해진 것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닛타 이 장을 빌려서 한번 더, ‘해산’은 아니라는 것을 소리로 크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좋아해주는 한 그 9인은 거기 있고, 그 이야기와 만났던 순간이 「러브라이브!」 라는 꿈의 시작입니다. 저희들은 도쿄돔 공연이라는 형태로 일단락했지만, 지금도 저는 μ’s의 코우사카 호노카 역의 닛타 에미라고 생각하고 있고, 80세, 90세가 되더라도 그렇게 말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새로 「러브라이브!」에 만날 때, 물론 저희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시기와는 겹치지 않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시간 안에서  μ’s의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μ’sic Forever♪♪♪♪♪♪♪♪♪~”라는 타이틀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당황하셨을 꺼라고 생각하고, ‘어째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거야!’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실꺼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한번 더 이야기를 처음부터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걸로 시간이 지나면, 어째서 호노카들이 ‘끝내겠습니다’라고 말한걸까, ‘스쿨아이돌 모두가 노래를 하자’라고 말한걸까, 분명 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닛타 씨 자신으로서는 최근 반년간 변화가 있었나요?


닛타 이 촬영으로 반년 만에 의상을 입으니, 간만에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었을 때의 부끄러움, 같은 기분이 있어서. (웃음) 고등학교를 마친 듯한 감각이네요. 좀 더 떨어져서 보면 반년따윈 그렇게 바뀌지 않아라고 생각합니다만, 대학에 들어가거나 막 취직한 것은 큰일이고, 그런 시간의 이야기구나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렸습니다.


-정말로 농밀한 6년간이었는데, μ’s의 멤버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이 있나요?


닛타 μ’s의 멤버는 사이가 좋지만, 여자친구와는 다르게, 역시 동료라는 느낌이랄까요. 응해주는, 응해주지 않는다던가 그런 것이 아닌, 가끔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주면서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런건 ‘동료’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더, 같이 6년간을 달려나온 호노카에게 무언가 한마디를.


닛타 라이브를 끝냈을 때에는 ‘고마워’라던가, ‘수고했어’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팟하고 떠오르지가 않네요...호노카는 제가 있더라도, 없더라도 호노카이기 때문에 활기차게 해나가겠지라고. 앞으로도 여러 사람에게 꿈을 주는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떨어지게 되었지만 계속 지켜보고, ‘앞으로도 함께야’라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에게 메세지를 부탁드립니다.


닛타 「러브라이브!」, μ’s를 사랑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나 멋진 6년간을 보낸 것은 「러브라이브!」를 사랑해주신 모든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μ’s의 이야기는 일단락을 맞이했지만, 호노카들의 μ’s는 언제까지나 계속 빛나는 여자아이로서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들 안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작품에서 많은 용기나 살아나갈 양식을 받았기 때문에, 팬 여러분들에게도 청춘을 헤메이고 있다면 몇번이라도 「러브라이브!」를 보고, 「러브라이브!」하고, 인생의 여러 상황에서 떠올려주세요. 호노카들, 그리고 저희들은 영원히 μ’s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청춘을 헤메이고 있다면 몇번이라도 보고, 「러브라이브!」해주시길 바랍니다.

2010년에 시작한 이래, 작중의 성공 스토리를 현실에서도 이루어낸 『러브라이브!』. 올해 4월에 열린 "µ's Final LoveLive!"에서 일단락을 맞게된 지금, 9명의 멤버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언제든지, 지금이 최고


2016년 3월 31일, 4월 1일, 도쿄돔. 이틀에 거쳐 열린 "러브라이브! µ's Final LoveLive! ~µ'sic Forever♪♪♪♪♪♪♪♪♪~"에서 µ's가 달려온 6년이 일단락되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나 그 때의 일을,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

『러브라이브!』가, 그리고 µ's가 이 애니메 음악씬에 가져온 충격은 상당히 크다......라고 말하기엔 이제와서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특히 작년에 극장판 『러브라이브! The School Idol Movie』공개 이후 여러 미디어 매체에 가져온 파문은 이른바 "사회현상"의 테두리를 넘어서 무시무시한 충격이었다. 말하자면 극장판에서 µ's의 멤버에게 일어난 일처럼 엄청난 열광이 2015년 현실에서도 있었고, 그 기세를 타 2016년 파이널 라이브로 이어졌다.

이 책에선 2015년부터 올해 있었던 파이널라이브까지의 기간에 대해 µ's 멤버에게는 물론, µ's의 모든 곡의 작사를 맡은 하타 아키, 파이널 라이브의 무대 감독을 받은 나미키 카츠미치, 안무 담당 코레오그래퍼・이시카와 유미 등 주변인물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를 시작으로 µ's 전곡 리뷰도 실었다. 인터뷰, 리뷰에 있어서 『러브라이브!』, 그리고 µ's의 음악의 궤적을 돌아본다. µ's의 음악대전, 그 집대성이자 앞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러브라이브!』 팬의 입문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우리들의 "지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아니, 언제든지, 「지금이 최고!」인 것이다.


에리가 에리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저에게서 좋은 의미로 떨어져나간다고 할까요, 형태를 갖춰갔어요


「에리와의 경계선이 애매」 「에리를 통한 제 2의 인생」 「에리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형태를 갖춰갔다」―― 난죠 요시노가 『러브라이브!』에 관해, μ's에 관해, 그리고 아야세 에리에 관해 CUT 인터뷰에서 자아왔던 말은 항상 깊은 통찰과 애정이 넘쳤다. 마음 깊이 서로 이어져서 인생을 공유해온 난죠와 에리는 파이널 라이브 전후로 어떻게 마주했는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도쿄돔 라이브 때부터 조금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되짚어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렇네요, 끝났다고 할까, 일단락됐구나, 하는 느낌은 있네요. 그래도 아야세 에리를 6년씩 연기했으니―― 저번에 또 한 명의 인생이 제 안에 있다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만」


- 「에리를 통한 제 2의 인생」과 「에리와의 경계선이 애매」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애매해졌죠. 두 사람 몫의 인생을 걷는단 건 체력도 어지간히 필요하고요(웃음). 그래서 의외로 도쿄돔의 날에서 좀처럼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할까요, 돌아오질 않네요. 어느샌가 계속 머릿속은 온통 μ's 노래가 울리고, 안무도 자꾸 떠오르네요. 에리에 대해 꽤 생각도 들고요」


- 어느샌가 생각이 들더라.


「네. 그러니 『빨리! 빨리 취재해주세요!』라고 생각했어요(웃음)」


- (웃음).


「『빨리 이야기해야 돼!』라는 마음이었죠(웃음). 그렇게 쭈욱 도쿄돔에 마음이 남은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래도 그런 중에 다른 일도 들어오고, 간신히 난죠 요시노 자신의 생활을 기억해냈어요. 돔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서야, 간신히 경계선이 모호했던 에리와 제가 각각의 인간이라는 듯이 쿵하고 납득이 됐다고 할까요. 돔에 서기 위한 준비단계부터, 실제로 돔에 서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저와 에리는 다른 인간입니다』라고 제게 타이르는 듯한, 그런 시간이었구나, 하고 지금이 되어서야 느껴요」


- 타이른다라.


「뭔가, 새삼스럽게요. 아무래도 쭈욱 경계선이 모호했거든요. 에리가 다가오는 건지 제가 다가가는 건지. 라이브도 포함해서 6년간 똑같은 생각을 잔뜩 해와서, 뭘까요...... 그래, 저는 에리가 아니고, 에리는 제가 아니라는 것. 에리의 요소라던가, 함께 만든 추억이나 기억은 물론 제게도 일부로서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인간으로서 있단 거죠. 돔을 향해 준비하던 때도 『에리를 위해 열심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건, 역시 저는 에리가 아니라는 거구나 싶은 거죠」


- 그렇군요. 에리의 존재가 대상화되었단 거군요.


「네, 그런 일련의 시간의 흐름이었던 것 같네요」


- 상당히 농밀한 시간이었네요.


「그렇네요. 제 안의 에리를 떼어낸다, 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아야세 에리는 애니메이션의 존재잖아요. 그래도 단순히 그렇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정도까지 왔거든요」


- 거기서 어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정한다, 그런 말이 되겠군요.


「네, 그렇게 와닿는구나, 싶습니다. 돔 마지막에 인사할 때도 말했었죠――」


- 그건, 울었습니다.


「(웃음) 아, 정말요? 진짠가요」


- 「아야세 에리와 난죠 요시노였습니다」는 위험했죠. 「와」는 위험해요.


「그래요그래요. 그리노 『지금도 어디선가 그 9명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라는 거요. 정말 그럴 것만 같아요. TV 애니메나 극장판은 스토리로서 그녀들의 인생의 단면을 작품화한 거잖아요. 그게 없어졌단 것만으로 어디선가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요」


- 상징적인 말이네요. 「아야세 에리는 여기에 있다」라는 거군요. 그러니 「와」로 열거한 거고요, 「역의」가 아닌.


「그렇네요. 저를 아야세 에리의 역할로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버리면 아야세 에리란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난죠 요시노 이콜 아야세 에리라면 에리는 언젠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고요」


- 그렇네요. 에리를 떼어내는 작업은 괴로웠나요?


「그래도 그것도 경계선이 모호해서요. 가령 "『러브라이브!』 어떤가요"라고 질문을 받아도, 그것도 저에 대해 물어보는 것 같아서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애매한 시기가 꽤 길었거든요. 그 중에 에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나, μ's에 대한 마음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고민이던 중에, 계속 아른거렸네요. 그래도 그게 점점 에리가 에리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제게 좋은 의미로 떨어져나간다고 할까요, 형태를 갖춰갔다고 할까요. 그건 오히려 괴로운 게 아니라 다행이구나 싶습니다. 낳았다고 할까요,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었어요. 그런 것들을 혼자서 욕탕 같은 곳에서 생각하면서―― 어떤 의미론 정신적인 얘기지만요(웃음), 엄청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한 후에 트위터 아이콘을 에리로 해둔 걸 봤을 때 처음으로 『아, 에리쨩 귀여워!라고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네요』」


파이널 라이브에선 아야세 에리가 운 걸로 되어있어서요(웃음). 「나는 인정 못 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 그래도 그건, 제 3자라고 말하기엔, 조금 다르네요. 완전히 제 3자은 아니라고 해야겠네요.


「한 번 제 마음을 쭉 꿰뚫어봤으니까요(웃음). 모성 같은 것도 있고, 굳이 말하자면 전우에 가까울까 싶기도 하네요. 스테이지라는 이름의 전장을 함께 헤쳐나가고요(웃음). 그 거친 건 전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건강히 지내』라는 느낌이죠」


- 저기, 이제 준비해온 질문이 하나밖에 안 했어요(웃음).


「끝날 기미가 없구만, 이건(웃음)」


끝나지 않는 꿈은 저희도 공유했지만, 새로운 꿈은 아직 그녀들만의 것 같아요


- 다음은, 이건 역시 여쭤보고 싶네요. 작년 12월 6일에 블로그 얘기입니다만, 그걸 쓸 때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나요?


「뭐, 그렇네요, 그건 말만 안 나왔으면 조용히 끝내고 싶었어요. 노력하는 걸 알리겠따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있고 싶은 성격이라서요. 그래도 『그건 왜?』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설명는 해야겠더라고요. 안 그러면 작품을, 에리를 응원해주는 사람에게도 성실한 게 아니니」


-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야 될 것들이 있었다, 이런 거군요


「그렇네요. 뭔가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성실하게 있고 싶거든요. 파이널 라이브는 정해졌고, 그 자리에 설 수 없게 되었을 때, 작품이나 에리에 대해서도 구분도 못 지을 테고, 제 안에 평생 갈 마음의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에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줬으면 싶었어요. 그건 에리나 μ's를 위해 파이널 라이브 스테이지에 서고 싶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거라, 그것만큼은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썼던 것 같아요」


- 그 때 스테이지에 꼭 서야겠다는 마음이었다던데요.


「응, 그래요. 파이널이기도 하고, 제게도 구분선이 될 스테이지이기도 하고요. 그 파이널 라이브 자체는 아직 저도 정리가 안 됐네요―― 에리를 떼어내준다는 큰 역할은 있었지만요. 라이브 규모도 엄청 컸고요, 전 한순간도 긴장이 안 됐어요. 순수하게 『기대되네』라는 마음이 셌거든요. 『러브라이브!』는 펜라이트가 9색이잖아요. 그 광경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기다려졌다고 할까요」


- 그렇군요. 노래의 얘기로 가보겠습니다만, "MOMENT RING"의 《끝나지 않는 꿈》 《새로운 꿈》이란 가사가 있지요. 이 부분, 난죠씨는 어떤 해석을 하고 부르셨나요.


「뭐 한 명의 인간으로서 확립된 애들이니까요, 아무래도 인생을 살았더라면 꿈은 얼마든지 떠오르죠. 작품에서 그려지지 않았더라도, 그녀들은 그녀들 품에 또 다시 새로운 꿈을 찾아내고, 각자의 길을 향해 갈 테죠. 게다가 그에 대해선 딱히 아무런 의문도 없어요. 그대로, 저희가 보던 그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과 형태로 앞으로도 그녀들의 인생은 계속될 거 같아요. 끝나지 않는 꿈은, 뭘까요...... 그래도 정말, 그녀들이라면 1년 정도는 그 자체일 것 같기도 해요. 끝나지 않는 꿈은 저희도 공유했지만, 새로운 꿈이란 건 이제 그녀들만의 것인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 "우리들은 하나의 빛"는 작년 특집 좌담회에서도 「9명을 위한 노래, 9명끼리만 부르고 싶다」라고 했던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난죠씨는 확실히 처음부터 「모두의 노래」라고 하셨죠.


「응응」


- 돔에서의 대합창으로 끝나며 모두의 노래가 되었죠.


「그렇죠. 그래도 모두가 대합창을 해준 건 맞지만, 결과적으론 그것 때문에  9명의 노래가 되었단 느낌도 드네요. 물론 함께 쭉 좇아온 팬분들께 『러브라이브!』를 이야기하는 이상 한 명의 멤버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μ's는 9명이구나, 싶었어요. 그 9명이 있고 그 주위의 관객들이 쭉 지켜봐줬기에, 9명은 9명으로서, 스쿨아이돌을 할 수 있었구나 싶었거든요. 그 땐 너무나 따스했고, 내면적으로도 따스했어요. 저렇게 지켜봐줘서, 보다 이렇게, 9명으로서의 심지가 부각된다고 할까요. 곡 자체는 모두를 향해 부르고 싶고, 모두를 노래하고, 엄청 열린 곡이라고 생각해요. 방향성이 360도라고 할까요, 너, 라는 게 아닌, 모두, 라고 생각해요. 『러브라이브!』, μ's와, 그 세상에 대해 노래하는 곡이라과 생각하고, 변함없어요. 하지만, 중심에서 계속해서 노래해온 건 9명이었구나 싶은 게 부각되었다, 라는 표현이 가깝겠네요. 그 9명의 노래를 중심으로, 회장에 있어준 사람들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감싸는 듯한 느낌. 『러브라이브!』, μ's라는 세계관을 만들기 위한 핵으로서 존재하는 게 그 9명이었구나, 싶은 게 선명한 윤곽을 가지고 드러난 것 같았어요」


- "우리들은 하나의 빛"에는 《눈물은 필요없어》라는 가사가 있죠. 실제론 눈물이 있었지만요.


「네. 눈이랑 코에서, 여기저기서 땀도요(웃음)」


- (웃음) 스테이지에서 내려올 때 무슨 생각이 드시던가요?


「『여기부터 심적으로 끝낼 준비를 해야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내려가면서 마지막엔 웅크리다시피 하면서 나왔는데, 쿵하고 아래에 도착했을 때 웅크리고 생각했어요(웃음)」


- 하하하.


「스윽, 『준비하자』, 라는 느낌으로요(웃음). 물론 지금도 여운이 깊숙히 남아있지만, 난죠 요시노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된다고 할까, 떼어내야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100% 여운에 계속 잠겨있었으면 좋았을걸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여운에 잠겨있어야 할 라이브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다들 훨씬 쓸쓸할 거라고 생각해요. 여태까지 열중했던 게 파이널을 맞이한다니」


- 자신만의 것으로 삼는 게 아니라고 할까요. 떼어냄으로써 모두의 에리가 되는 거네요.


「응응. *μ's 상실증라는 말이 있는데요(웃음), 그래도 캐스트로서 있는 제가 쭈욱 거기에 남아있는 건, 왠지 아니지 않나 싶었거든요. 요 6년간 며칠이나 응원해왔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거기서 경험한 추억이나 감정은 진짜고, 과거에 있던 건 사실이죠. 그게 이 2016년에 공유했던, 함께 즐겁다고 생각하고, 쓸쓸하다고 생각하고 했던 것들이니까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원문은 μ'sロス(로스)


- 그 날이 지나, 4월 2일 아침, 일어나시고 어떤 생각이 먼저 드셨나요?


「『앗, 오늘은 아사쿠사인가』 싶었죠 (웃음). 부모님을 아사쿠사에 모셔가야 됐거든요. 예정으론 6년간이 끝나고, 아야세 에리라는 한 명의 인생을 내려놓고, 쓸쓸함도 갠 아침을 맞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6년간 다른 한 명분의 인생을 진 게 역시 컸는지, 1일 밤에는 눈을 한번도 못 붙였어요. 마음이 시끌시끌 사나웠거든요. 그래서 일어나고서 무슨 생각을 했냐 한다면, 여태까지의 일상의 연장선이란 느낌이라고 할까요, 『네, 오늘부터 끝입니다』라는 식으론 될 수 없었죠. 왠지 깨끗하진 못 했어요, 아른거리고. 그래서 『오늘은 아사쿠사인가』라고 생각이 들자―― 전날하고 갭이 엄청났죠(웃음)」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 같아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재밌어요


- 라이브 때 영상에서, 각자 낯을 가렸다는 얘기를 했었죠. 이렇게나 낯가림쟁이들만 모였나 싶었어요. 난죠씨도 낯을 가리신댔지요.


「응, 엄청 가려요」


- 지금은 절대적인 신뢰관계가 9명 사이에 있잖습니까. 처음엔 망설였지만 그게 신뢰로 변하는,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이렇게, 전장에 몇 번이고 나가잖아요(웃음). 그러면서도 각자 자기 일을 똑바로 하고요. 9명의 여자가 모였으니 푸념하라고 한다면 이렇다저렇다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스테이지에선 다들 완성형을 보여줬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라이벌이기도 하고, 전장을 헤쳐나가는 전우이기도 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중에 신뢰관계가 구축된 게 아닐까 싶네요. 언제부턴가 라이브나 이벤트를 거듭할 때마다 라이벌 의식만이 아닌, 서로 지지해준다고 할까요, 신뢰하고, 살짝 의지해도 괜찮겠지 싶은 부분도 생기고, 마음을 허락해간다는 쪽으로 넓어졌다, 그런 식이겠네요. 그건 어느 정도 가족이란 느낌일지도 모르지만요. 가족이나 형제처럼, 가까운 거리감으로 같은 솥밥을 먹는 느낌이네요(웃음)」


- (웃음) 난죠씨와 에리의 관계성에 대한 계기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돌아보면 3rd 라이브 얘기가 곧잘 나오지요. 난죠씨에게 있어 μ's나 에리가 보다 큰 존재로 자리매김한 건 어느 무렵이었을까요.


「쌓임 이라고 한다면 너무 짤막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3rd 라이브 땐, 에리라는 아이를 의식하곤 있지만, 난죠 요시노 자신이 라이브 스테이지에 선다는 의식이 강했던 것 같네요. 구체적으로 딱 집어 어떻다곤 못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게 역전됐어요」


- CUT 첫 취재였던 14년 6월의 시점에서 경계선이 애매해졌네요.


「하하하, 그렇군요. 언제일까...... 언젤까요?(웃음)」


- (웃음) 그건 그라데이션이겠죠.


「정말 그라데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의식이 변했다...... 그런 의미로는 3rd 라이브가 아무래도 제겐 상당히 컸죠. 그리고 『이런 태도는 그만두자』라고 생각한 것도 3rd 라이브였고요. 아마 마지막에 모두가 우는 계기를 준 게 제가 아니었을까요」


- 처음으로 울었으니까요.


「왜 울었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네요. 그게 파이널 라이브에서 운 것도 잘 모르겠거든요. 그 건 제게 있어서 아야세 에리가 운 걸로 되어있어서요(웃음)」


- (웃음) 그건 내가 아니다, 이건가요.


「네, 『나는 인정 못 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뭐, 울 거라곤 생각했어요. 다른 멤버들 표정을 보니 울게 되더라고요. 눈물자국이 남아있고, 눈도 빨갛고. 그거 대해 관객으로서 감동하게 됐어요」


- 3rd 라이브에선 아야세 에리가 아닌 난죠 요시노가 울었던 거죠.


「네, 저에요. 거기서, 저를 위해 라이브를 하는 건 그만두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요. μ's 라이브는 제게 있어서 제각기 뒷배경이 있어요. 4th 라이브 무렵부터 어떻게 아야세 에리를 스테이지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아야세 에리로서 보일 수 있을까, 생각했고, 5th 라이브를 거치며 파이널 라이브는 『아야세 에리를 스테이지에 세워주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점점 졸여내고 굳혀간 것 같아요」


- 그라데이션이네요.


「그라데이션이네요」


- 라이브를 포함해서 쭉 함께 해온 동료이기도 한 다른 8명의 멤버들에게, 아직 말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전해주고 싶은 건 뭔가요?


「그렇네요, 역시 μ's로서 활동하면서는 눈에 띄게 여성스럽진 않은 9명이 모였다고 생각해요. 다들 꽤 털털하고, 제 세계관을 중요하게 여겨주고요. 어떤 의미론 개성이 강한 9명이 모였다고도 생각해요. 그래도 그 9명이 모였기에 스테이지 위에서 그게 시너지를 일으켜 플러스 파워로 바꾼 것 같아요. 아마 이게 『모두 같이 화장실 갈래?』 같은(웃음), 나는 여자다~ 하는 애들만 모였더라면 끝까지 싸워나갈 수 없었을 거 같아서, 이 9명이 모여서 다행이네,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수고했어,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6년간 함께 열심히 해줘서, 함께 열심히 했던 것도 이 9명이 모였기에 가능했구나 싶어서―― 정말 감사합니다!(웃음)」


- 그럼 마지막입니다. 파이널 라이브를 끝마친 지금, 다시 『러브라이브!』란, μ's란 무엇인가요? 난죠씨의 답변은, 2014년엔 「학생 때보다도 청춘이다!!」였고, 작년엔 「에리를 통한 제 2의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벚꽃이 키비주얼인 한 폭의 그림에서 시작했던 『러브라이브!』가, 파이널 라이브도 벚꽃만개철에 열려서, 그 한 폭의 그림에 이어졌다고 할까요, 그것도 『러브라이브!』의 기적답다고 생각해요. 6년이란 긴 기간을 거쳐, 하나의 기적 이야기를 볼 수 있었고, 플러스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응...... 정말, 9명의, 기적의 스토리였구나 싶습니다. 에리네를 통해 저희도 그 세상을 엿볼 수 있었고, 에리네가 살아가는 인생 중간에 개입해서 6년간 같은 것을 봤고, 최종적으론 떨어져갔으니까요. 처음엔 한 폭의 그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에리네의 인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중에 합류해서 같은 광경을 봤고, 떨어질 때는 저희가 본 6년이란 건 가사에서도 쭉 기적,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정말로 그 말 그대로, 기적처럼 엄청나게 아름다운 이야기였구나 싶어요. 그걸 볼 수 있었구나...... 거기서 많은 감정을 느꼈고, 공부도 됐어요. 『정말로 감사합니다!』라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왠지, 이렇게 얘기하려니 새로 생각해야 될 것 같네요. 정말 철학처럼(웃음),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 같아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재밌어요」


- 여태까지랑 거리감은 완전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쭈욱 그렇겠죠. 에리가 완전히 별개의 존재가 되어서 어딘가로 간다는 건 아마 영원히 없을 테고요.


「그렇네요. 아마 앞으로도 떠올릴 일은 잔뜩 있을 것 같고, 지금도 다시 떠올릴 일은 많아요. 정말, 한 건의 세계선이라고 할까요, 평행세계에서 에리네의 인생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확실해요. 응, 그렇겠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웃음)」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요 6년간을 살려내야겠단 마음이 엄청 커요


네거티브하고 마이너스한 사고. 평소에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던 쿠보 유리카의 내면은 μ's의 한 명으로서 체험해온 수많은 기적과 같은 시간을 보내며 변화한 듯하다. 마이너스 사고를 하던 자신을 받아들인 이상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눈앞의 대상에 120% 부딪혀간다. 그 곧고 적극적인 추진력은 코이즈미 하나요와 겹쳐진다. 하나요의 솔로곡 "줄넘기"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크디큰 감사를 이야기해주었다.


- 먼저, 도쿄돔에서의 라이브를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본 라이브에선 안 그랬는데, 다음날엔 스테이지에 섰단 실감이 전혀 안 들었어요. 『엄청 즐거웠어!』나 그 이상의 실감이 없었던 거 같아요. 『정말 저기서 라이브를 했던가?』 싶은 두루뭉술한 마음이 아직도 강하네요. 아마 『러브라이브!』의 스테이지에 선다는 건 저이자 제가 아닌, 아무래도 하나요로서 서는 부분도 있어서요, 『수고했어~』라는 말을 들어도 제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어딘지 엇나간 느낌이더라고요」


- 하나요와 함께였고,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진 게 아니었으니 실감도 절반만 든다, 이런 건가요.


「그렇죠. 그래서 『긴장돼?』라고 물어보면 『응, 뭐, 했어, 하고...... 했겠지?』라고 되묻게 되는(웃음) 상황이에요」


- 긴장도 하나요가 절반을 짊어져준 거군요.


「그렇네요! 그렇게 생각해요. 한곡한곡 꽤나 곱씹었어요. 저만이 아니라, 하나요로서도 그렇고, μ's 멤버와 하고 있단 걸 생각하며 스테이지에 섰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자기 전에 이불을 덮으면 안무가 떠오르는데, 『아아, 이젠 몰라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꼭 잊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누가 외우라고 하는 상황도 아니란 생각이 들면 엄청 허전해져요」


- 어느샌가 보면 생각하고 있다.


「생각하게 돼요. 문득 보면 『아, 나 방금 손으로 안무하고 있었네』라고 하고요(웃음). 아마도 이건 지금 잠깐만 이럴 게 아니라 계속 이러겠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해요. 밥그릇을 왼손에 들고 젓가락은 오른손에 드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몸에 배어드는 기초적인 거라고 할까요, 머리에 새겨진 것 같아요」


- 작년엔 여름에 극장판이랑 팬미팅 투어도 있었죠. 연말에는 M스테나 홍백 출장, 돔 발표까지, μ's로서 다사다난했습니다만,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나요.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팬미팅 같은 경우는 항상 같은 관객들이 모인다곤 할 수 없으니, 한번한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요. 게다가 뮤직스테이션이나 홍백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던 건데, 주변분들의 마음이 모여서 결정된 거였죠, 그것도 엄청 『소중히 여겨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작년 인터뷰에서 언제부턴가 라이브가 즐거워였단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 말씀하셨죠.


「그 때부터 μ's 활동은 물론 긴장감이 있었지만, 『어떡하지!?」 같은 패닉감은 없었어요. 뮤직 스테이션도, 홍백도, 누구보다도 긴장을 안 했다고 생각해요」


- 그 말도 누가 하셨던 거죠(웃음).


「아하하! 그렇네요. 아마 들뜨기도 하면서 긴장하는 건 있었을 거에요. 예전의 저였다면 『나 이런 거에 평생 익숙해지지 못 하겠지』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땐 제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냉정했어요. 그만큼 『이 시간을 긴장해서 안 될 거 같으면 즐겨야지』라는 마음이 먼저였을까 싶지만, 그걸 의식하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보는 사람 입장에선 엄청 헤실거리는 것처럼 보였을 거에요(웃음). 그래도 『해내야지!』라는 마음보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보여주고 싶단 마음이었네요. 저희가 스테이지에서 춤추고 노래하곤 있지만, 역시 μ's는 9명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거든요. 애니메이션도 포함해서, 라이브를 함께 만들어주시는 분들, 그림 그려주시는 분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저희들이 바깥에 설 수 있는 거니까요. 그걸 잘 보여드리고,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이었겠죠. 그래서 옆에 있는 누가 『아~ 엄청 긴장돼!』라고 말해도 『에, 괜찮을 거야』라고 해주게 되더라고요(웃음). 왜냐면 모두 멋지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걸 제가 바로 옆에서 봐왔는걸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모두가 어디서 살짝 실수하더라고 그 이상으로 뭔가 커버할 수 있는 게 반드시 있을 거다, 그런 신뢰감이 멤버들에 대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러면 다들 웃으며 정말 즐겁게 하자는 분위기가 됐어요」


항상 120%를 하려던 마음이 들 수 있었던 건, 하나요에게 받은 지금까지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 쿠보씨한텐 꼭 해야되는 게 뚜렷하게 했다는 면도 있는 거겠네요.


「응,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홍백이 특히 그랬는데, 평생에 한 번 있을 일이라고 생각해요. 9명의 마음을 짊어진 8명이 나갔는데, μ's로서 나간다는 건 특히 평행에 한 번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엄청 소중했죠. 꼭 해야 되는 건 하나라는 마음이었네요」


- 상당히 좋은 얘기네요(웃음).


「아하하! 저로서도 의외였어요. 훨씬 옛날이었더라면 뭐 저지르는 거 아닌가 걱정했을 거에요(웃음). 그만큼 압박에 약했거든요」


- 라이브가 즐거워졌다는 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였나요?


「(2014년에) 란티스 마츠리에서 야외 라이브였어요. 그 때 속에서 파앗!하고 열린 것 같더니, 『애니송이란, 음악이란 대단하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즐거워졌어요. 굳이 말하자면, 음악은 보고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긴장도 되고, 끝나고 다들 『잘 했어』라고 말해주면 살았다! 싶었어요. 그래서 『즐겨!』라는 말을 들어도 제가 즐기는 곳이라기보단 모두에게 좋은 걸 보여줘야 되는 곳, 모두를 기쁘게 해주는 곳이라는 생각에 내가 즐거운 건 애초부터 어찌되든 상관없어, 라고 생각하던 면이 있었어요. 라이브 하다가도 제 실수에 꽤 우울해지기도 했었고요. 『아아, 아까 실수했다, 이젠 끝이야...... 오늘 라이브는 3점!』이라는 식으로요―― 100점 만점에서(웃음). 절 그렇게 몰아세우며 다음엔 잘 할 수 있도록 하자, 라고 하는 스타일이었네요」


- 실제로 그런 식으로 성장한 부분도 있겠네요.


「그게 절 위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마 있었을 거에요. 그래도 즐기며 할 수 있게 되고선 실수를 해도 그거에 신경쓰느라 또 실수하기보단 『방금 실수했지만 그만큼 다른 데서 더 멋지게 커버하자』라고 포지티브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저 스스로도 즐겁다 싶을 때 봐주시는 분들도 『즐거워보이네. 나도 즐거워』라고 생각하게 된단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런 거구나』하고 실감했습니다」


- 누군가 스테이지 위에서 실수를 하거나, 무슨 트러블이 일어나면 그걸 함께 최대한 커버하려고 한단 이야기는 이번 특집에서도 많이 나왔습니다. 서로 커버해주는 것은 그룹으로서의 기본이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입을 모아 그 얘기를 하는,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μ's다움이네요.


「게다가 그게 전혀 힘들지 않아서 오히려 그게 또 하나의 인연이 된 걸까 실감하게 돼요」


- 9명이서 스테이지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아무래도 특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네요. 『역시 9명이어야지』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스테이지를 위해 모두가 각자 주어진 타이밍에 해야할 것들을 솔선해서 열심히 했기도 했고요. 9명, 좀 더 말하자면 18명이서 맞을 수 있었던 건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쌓아온 시간을 쭉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시간을 쌓아가야 돼요


- 라이브에서 했던 곡에 대해서 들어보고자 합니다. "MOMENT RING"의 《끝나지 않는 꿈》 《새로운 꿈》이란 가사를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부르셨던건가요.


「새로운 꿈이란 건 아무래도 앞으로의 미래려나, 하고 생각했어요. 여태까지 쌓아온 시간이 있고, 그걸 쭉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시간을 쌓아가야 되잖아요. 앞으로의 미래는, 6년이란 시간을 지내며 다양한 걸 경험하며 지금의 제가 된 이상 이러한 새로운 걸 해나가요, 하는 걸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 그렇지요.


「끝났다는 마음은 별로 안 드는데, 그건 앞으로 계속될 인생이라고 할까요, 미래가 제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보이지 않는다면 요 6년간이 제게 쓸모없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요 6년간을 살려내야겠다는 마음이 엄청 커요, 제 마음이 새로운 꿈으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하면서요. 모두가 말하고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던 건 『마음 속엔 남을 거야』라는 말이었어요. 살짝 고리타분한 말일 수도 있는데도 정말 그렇구나 싶었던 건, 초반에 말했던 것처럼 문득 생각나게 되는, 몸에 배어버린 것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응원해주는 모든 분들과 마찬가지인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것도 포함해서 앞으로의 새로운 꿈을 모두가 이루어줬으면 좋겠고,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군요.


「그리고 9명 사이에 생긴 인연에 대해선, 정말로 끝나지 않는 꿈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개성이 자라온 환경도 제각각에, 라이브 중에 인터뷰에서 입을 모아 말했던 것처럼, 낯가림쟁이들이거든요. 「그렇게 낯가리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싶긴 하지만요(웃음). 그래도 조금씩조금씩 모두 거리를 좁혀가고, 많은 걸 뛰어넘는, 그런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형제라는 느낌 역시 있겠죠. 그건 평생 끝나지 않는 인연으로, 그게 꿈인 걸까 싶어요」


- "우리들은 하나의 빛"은 돔 전체가 대합창을 해줬는데요, 그 광경을 보고 어떤 감정이 와닿던가요?


「모두의 합창을 들었을 때, 감정보다도 눈물이 먼저 나왔어요. 몸 깊숙히에서 이렇게, 수분이 파악하고 분출되는 느낌으로요. 라이브 전에 『울지 말자!』라고 함께 이야기했는데, 홱 옆을 보니 릿삐가 글썽글썽하더라고요. 그걸 보니 눈물이 떨어졌어요. 제 감정 이상으로 멤버들이나, 노래해주는 팬분들의 마음이 먼저 와닿았던 거 같아요. 아마, 그저 기뻤던 거 같아요」


- 그 기뻤다는 걸 조금만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나요?


「그만큼의 사람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노래해줘』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도 노래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의 마음이 지금, 하나가 되었구나』라고 생각으니까 기뻤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저희를 위해, 모두가 노래해준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싶었죠」


- 9명이서 나란히 서서 내려갈 때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뭔가...... 영원히 이어지는 걸까, 라고, 좋은 의미로 엄청 오래 느꼈어요. 실제론 한순간이었겠죠, 『어라? 시간이 멈췄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 하하하.


「그래도 『이게 끝까지 아래로 내려가면 정말로...... 안녕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모두들 분명 기억할 거고, 아마 다들 기억해줄 거라곤 생각하지만, 왠지...... 『안녕이구나』라는 말이 팟하고 떠올랐어요. 그 때 『지금 이 마음은 뭐지? ":고마워"구나!』라고 생각이 들곤 『고마워』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멤버들도 말하고 있더라고요. 『아, 다들 마음은 하나구나!』라고 생각이 들자 그에 대해서도 『고마워』였고요. 다들 계속해서 노래해줬고, 잊고 싶지 않고, 잊지 못 하겠지 싶었는데―― 어느샌가 끝나있더라고요(웃음)」


- 그럼 다음날, 4월 2일 아침에 일어나니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점심 전에 눈이 팍 떠졌을 때 허무감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몸을 움직이니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이대로 혼자 있는 건 위험하다!』라고 생각해서 곧장 나라에 저희 집에서 와주신 부모님 배웅해드리러 갔어요. 의외로 부모님도 감상을 말씀하시진 않고, 아마 마음을 써주신 거겠지만...... 마지막에 어머니가 『잘 됐구나』라고 말해주셨어요. 라이브가 잘 됐다는 건지 저의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도 『아, 응』이라고 했어요(웃음). 셋이서 케이크 먹고, 헤어졌습니다(웃음)」


- 그건 아마 상당히 많은 의미가 담긴 『잘 됐네』였겠죠.


「응. 아무리 여기가 이렇고 이랬어라고 하셔도 『아, 이젠 모르겠어』라고 했을 테니까요. 저는 아직 아무런 생각도 안 났던 거 같아서요. 응, 왠지 엄청...... 고마운 한마디였다고 생각해요」


『러브라이브!』를 시작했던 무렵과는 달라진 건,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지금 주어진 일을 하자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 『러브라이브!』가 시작했던 무렵, 내심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혹은 내게 있어서 이런 걸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던 의욕 같은 건 어떤 게 있었나요?


「지금은 작품내의 한명의 멤버로서 인식되지만, 그 땐 애니메도 없었던지라 여자애 하나를 제가 담당했구나, 하는 인식이었네요. 성우라는 일을 동경하던 때도 있어서 그게 순수히 기뻤어요. 그저 텐션만 무작정 높았던 것도 있지만, 당시엔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해서 불안함 쪽이 컸어요, 솔직하게」


- 그렇군요.


「이것도 지금이니 할 수 있는 얘기 같지만, 언제까지 버티나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저는 이게 끝나면 해오던 일을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당시에 스무살 정도였고――. 『러브라이브!』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아니면 정말 일 그만두고 나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었죠. 여태까지의 시간을 청산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좋은 타이밍이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믿기질 않네요, 지금이(웃음)」


- 6년간 그러한 자신을 바꿔준 것이다, 라는 거군요.


「그렇네요. 말하자면 전환의 계기가 된 거죠. 성우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금 눈뜨게 해줬다고 할까요」


- 하나요에 관한 겁니다만, 쿠보씨에게 있어서 하나요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고 느낀 건 언제였습니까?


「저는 "줄넘기"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라고 생각해요. 노래할 때 스윽하고 하나요한테 이입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거든요. TV 애니메의 *아후레코를 시작하던 때인데, 하나요가 보는 세상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알기 시작했던 무렵이네요. 그러던 때에 모두에게 『고마워』가 가득찬 "줄넘기"를 부를 때, 스윽하고 이입하게 됐어요. 그 노래를 부르는 게 저인지 하나요인지, 점점 모르게 됐었죠. 『고마워』라는 마음을 노래하면서요. 그 때 『아마도 엄청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러브라이브!』에서 좋은 점 중 하나인 멋진 노래 중에서도, 솔로 노래에서 하나요의 매력을 노래할 수 있었던 건 제게 있어서 너무나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 쿠보씨가 하나요에게 받은 것, 하나요가 준 것 중에서 가장 큰 것, 소중한 건 뭔가요?


「지금 있는 제 자신이 되어왔던 시간, 일까요. 설명하기 되게 어렵지만요. 근본적으론 아무래도 성격이 엄청 네거티브였고, 마이너스한 사고여서 언제 어디서 일을 그만둬도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러브라이브!』를 시작했던 무렵이랑 달라진 건,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지금 주어진 일을 하자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항상 120%를 하려던 마음이 들 수 있었던 건, 하나요에게 받은 지금까지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기에 지금은 마음도 편하고, 제가 하는 거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 그렇군요. μ's를 응원해주는 사람, 지지해주는 사람들, 이른바 팬분들께 받은 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는 부분도 많이 있지만,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걸 보니―― 라이브에서 관객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고, 하나요의 이름을 불러주고, μ's, μ's 하고 불러주는 걸 들었는데 그게 엄청 기뻤다시더라고요. 직접 『엄청 기뻐!』라고 말한 건 아니고, 기뻐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보였어요. 그걸 보고 『어머니가 기뻐하는 것도 팬분들께 받은 거구나』 싶었어요. 그게 정말 개인적으로 솔직한 심정이에요. 『내가!』라는 것 이상으로, 제 감정보다도, 부모님이 기뻐해주시니 기쁘더라고요. 그래도 저 자신이 부모님과 있을 땐 그리 솔직한 편이 아니라 『흐~응......』 하는 느낌이지만요(웃음). 그래도 기뻐하는 걸 보면 『다행이다』 싶어요. 슬프게 하는 것보단 훨씬 좋잖아요. 맞대면하고 효녀노릇 한 적은 좀처럼 없어서, 효녀노릇 한 것 같아요. 그 계기를 모두가 제게 줬고, 제 등을 엄청 밀어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 실제로도 어지간히 스케일 큰 효녀노릇이네요(웃음).


「그렇다니깐요(웃음). 아마 이 이상의 효녀노릇은 없겠지 싶어요」


- 그럼 다른 8명의 멤버들에게 실제로 전해준 것도 괜찮고, 아직 전해주지 못 한 것, 그래도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시겠나요?


「뭘까요,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일까요. 그리고 네가 너로서 있어줘서 고마워, 겠네요. 각자가 각자의 역할에 딱 맞고, 애니메 세계의 멤버들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네가 너로서 있어줘서 다행이야』인 것 같아요」


- 마지막입니다. 「『러브라이브!』란, μ's란, 뭔가요?」라는 질문입니다만, 파이널까지 해낸 지금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재작년에 2기 특집 때 대답은 「holic」이었습니다.


「제가 엄청 감이 좋을 때였네요(웃음). 잘도 『holic』이란 말을 했군요」


- 그리고 작년 극장판 때는 「어른의 청춘」이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이번이 3번째로, 마지막 질문입니다. 쿠보씨에게 있어서 『러브라이브!』란, μ's란, 뭔가요?


『...... 전설(웃음)』


- (웃음) 그 말인즉슨?


「『러브라이브!』도 μ's도, 평생 빛바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게 있어서도, μ's를 사랑하는 분들께 있어서도, 평생 빛바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20년 후에 제가 μ's였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웃음). 그래도, 믿어주지 못 할 정도로 대단한 전설이라고 생각합니다」

μ's로서 활동한 시간이 있었기에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모리 스즈코는 스테이지 위에서의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주위를 밝고 적극적이게 만드는 화사한 퍼스널리티를 가진 사람이다. 『러브라이브!』에 참가하기 전엔 「꿈」이라는 말에 회의적이었던 미모리는 μ's로서의 활동, 그리고 소노다 우미와 마음을 나누며 노래와 댄스에 바친 청춘을 되찾았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다시 붙잡은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 우선은 파이널 라이브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만, 지금 되짚어보면 어떤 기분이신가요?


「첫 1주간 정도일까요, 끝난 직후엔 무(無)가 된 것 같았어요. 전부 했다는 느낌, 그리고 뭔가 끝났다는 느낌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인데, 마음의 정리를 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거기서 눈을 피하려는 것만 같아요. 그래도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 마지막에 한 명씩 멘트를 할 때 마음이 정리가 안 돼서 『나머진 블로그에서!』라고 말했던 게 기억났어요(웃음). 파이널 날엔 웃으며 끝내고 싶었고, 즐거운 라이브였어!라는 추억을 남기고 싶었어서, 『울지 말자!』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뭐, 결국엔 조금 울었지만(웃음). 그래서 블로그 써야겠다, 드디어 내 기분을 마주할 때가 왔구나 싶어서 집에서 μ's 노래 틀어놓고 세네 시간 가까이 써서 블로그를 작성했어요. 그런데 왠지 눈물이 안 멈춰서, 응....... 『어디부터 손대야 돼!?』 싶었지만, 지금은 『고마워!』라는 마음을 전하는 게 제일 우선이다!라고 생각해서 결국에 남는 건 감사의 말이구나, 그 때 엄청 실감했습니다」


- 블로그를 쓰신 지금, 여전히 무인 채인가요?


「여전히 무네요. 언제 이 무의 상태가 끝날지...... 그래도 끝난 직후보단 조금씩 기분이 개었어요. 1일차가 끝나고 2일차 아침, 그 때야말로 눈을 뜨니 눈물이 쏟아졌어요. 『아, 오늘로 끝나버리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아침부터 엄청 울게 됐거든요. 6년간 엄청 즐거웠고, 많은 경험도 했고, 마지막엔 도쿄돔에서 파이널을 장식한다니, 누가 이렇게 행복하겠나요. 지금은 무척 즐거운 기분이라고 할까요, 슬픔보다도 『아아, 정말 다행이다!』라는 마음이에요」


- 작년 특집 좌담회에서 무척 인상 깊었던 말이 있습니다만, 미모리씨, 「이렇게 드라이한 제가」라고 하셨잖습니까(웃음).


「이렇게 드라이한 제가(웃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정말 『감정이란 건 이렇게 동요하기도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죠」


- 『러브라이브!』와 μ's가 미모리씨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게 한 이유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뭘까요? 하나는, 제 고교시절이랑 살짝 닮은 부분일까요. 저도 *중고일관 에스컬레이터식 학교라 이제 곧 폐교가 되는데요(웃음)」

*중고일관 에스컬레이터식 학교 :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학교로, 중학교를 졸업하면 같은 학교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됨


- (웃음) 비슷하다고 할까요, 완전히 똑같잖나요.


「그렇죠. 사람도 매년 줄고, 거기서 저, 뮤지컬부라고 노래하고 춤추며 모두의 앞에서 공연하는 부활동에 들었거든요. μ's 모두가 연습하는 느낌이랑도 엄청 비슷해요. 우미쨩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른 것보다도 그 부활동에 엄청 열심이었고요. 노래하는 것, 춤추는 것이 맨 처음 우선순위였던 나날들이어서 그 시절의 저와 엄청 겹쳐보였어요. 그랬기에 다시 한번 그 때 그 마음이 되어 우미쨩의 인생이라고 할까, 우미쨩과 함께 고교생활을 지냈어요. 『앗, 그렇지! 그 때 그런 게 있었지, 이런 생각을 했어』 같은 게 점점 상기됐었죠. 성인이 되고보니 여러모로 『그렇지, 이런 마음이 되지!』라는 식으로 감정이입하기 무지 쉬웠네요. 그게 제 감정을 움직이는 한 키포인트였지 싶습니다. 그리고 역시 성우로 데뷔하고 바로 맡게 된 배역이자 작품이었는데, 그 때의 전 비교적 이렇게, 『뭐, 인생이 잘 풀리진 않겠지』 같은 부분이 있었거든요. 특히 여러가지 일이 많았던 1년 반 정도 동안 『이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구나! 쓸 만하잖아!?』라고 느꼈었네요」


- 인생은 쓸 만하다라.


「꿈을 버리지 마!」라고 설득력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게 너무 기뻐요


「그렇죠! 성인이 되면 꿈 같은 건 어느 정도 포기해야 되는 것도 있고요. 특히 무대를 끝마치곤 『아아, 평생 이렇게 코러스만 하다가 끝나겠지』라는 식으로 어린데도 벌써 포기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우선 찬스이니 뛰어들어보자는 마음에 뛰어든 성우 세계도, 한치 앞이 안 보여서 처음엔 불안하기만 했어요.」


- 그 얘기도 "나아가자→내일로" 그 자체라고 할까요. 자신에게 가능성을 느꼈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 무렵엔 속으로 성우가 되는 거에 걸어보려는 심리도 살짝 있었어요. "MOMENT RING" 가사에서 《끝나지 않는 청춘은 여기에 있어 우리들이 알고 있어》라고, 엄청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우미쨩을 연기하는 제게 고교시절은 꽤 먼 얘기인데도 『끝나지 않는 청춘이란 건 이거구나!』라고 『러브라이브!』에 연관지으며 느꼈던 적이 많았거든요. 다함께 연습하던 때나 녹음 후에도 정말 청춘 그 자체구나 싶었네요. 『어른이 되고서도 꿈을 꿔도 되는구나. 꿈은 이루어지는구나, 그게 언제라도』라고 느꼈습니다」


『러브라이브!』를 만나기까지 「꿈」이란 말이 조금 어려웠어요


- 지금 막 "MOMENT RING"의 1절을 들어주셨는데요, 《끝나지 않는 꿈》 《새로운 꿈》이란 가사도 있잖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노래하셨나요?


「뭐랄까요...... μ's가 파이널 라이브를 가지고, 홀연 사라지게 되는 것도 아니고, μ's가 지금까지 이뤄온 많은 꿈은 앞으로도 모두의 마음 속에 남을 거라고 할까요, 저는 그게 쭉 계속될 거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한편으론 새로운 꿈이란 건 파이널이 끝나고, 4월 2일부터 9명이 μ's로서 지내며, 각자의 새로운 길을 향해 가는 걸까 싶네요. 애니메는 끝났지만, 우미쨩은 분명 우미쨩 나름의 인생을 걸어갈 테고, 미모리 스즈코는 미모리 스즈코로서 새로운 인생을 걸어갈 테고요. μ's로서 활동했던 반짝이던 시간이 있었기에,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란 느낌이 확 드네요.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직까지도, 꿈 따위,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요」


- μ's로서 6년간을 보냄으로 「꿈」이란 말을 솔직하게,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단 거네요.


「그렇네요! 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에 걸쳐, 뮤지컬을 하던 시기부터 『러브라이브!』를 만나기까지 『꿈』이란 말을 조금 어려웠거든요. 꿈이라고 말하고 싶을 땐 가능한 한 『목표』라고 말했고요. 꿈이란 말에 엄청 저항감이 있었죠. 목표라면 제가 그것을 향해 착실히 오르기만 한다면 언젠간 이루어질지도 모르죠. 그래도 꿈이라고 하면 조금 두루뭉술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 땐 목표라는 말을 곧잘 썼던 것 같네요」


- 그 당시에 이루고 싶었던 건 있었나요?


「이루고 싶었던 건 있었어요」


- 그런데, 이루어지지 않을까 무서웠다, 는 거군요


「그렇죠! 그래서 정말로 이뤄질 것 같은, 이거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목표를 세웠던 거에요」


- 정말로 하고 싶은 걸 꿈으로 두고, 손에 닿을 것 같은 걸 목표로 설정한단 거네요.


「네. 하고 싶은 건 있지만, 그건 정말 꿈으로. 그래서 제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걸 목표로 두고, 이걸 달성하자, 이런 식으로 설정했었네요. 『꿈이란 건 있구나!』라는 걸 μ's와 만나고 실감했어요, 응」


- 앞으론 주저하지 않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겠네요.


「그렇네요. 『꿈은 이루어져!』라고 생각해요. 그게 정말 대단하다 싶고, 거기서 제 의식개혁이 시작했죠(웃음). 『꿈이라는 말, 써도 돼!』라고요」


- "우리들은 하나의 빛"을 9명이서 부르고, 돔에 있던 모두가 대합창을 해줬잖습니까. 그 광경을 보며 어떤 느낌이셨나요?


「처음엔 이야모니를 하고 있어서 『어라? 무슨 소리가 들리나』 싶었던 순간에 팟하고 빼냈어요. 그러자 모두가 엄청나게 큰 소리로 불러주고 있었어요. 그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에 『역시나!』 싶었죠. 이 『러브라이브!』의 이야기 자체가 「다함께 이루는 이야기」인데, 다함께 만들어왔구나 싶었거든요. 저희 μ's뿐만이 아니라 팬 모두와 함께 만들어온 것처럼, 마지막인 파이널 라이브에서의 이 연출도 다함께 만드는구나! 싶어서 엄청 감동했어요. 그 때 멤버도 다들 이를 악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즐거운 라이브로 끝내자!』라고 얘기했었거든요. 저도 파이널 라이브라는 걸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로지 『도쿄돔 라이브, 즐거워~!』라고 생각하며 노래했었네요」


- 그렇군요.


「단지 라이브 도중에 확 다가온 순간이 있었어요. "나아가자→내일로" 때, 애달픔이 확 느껴졌거든요.」


- 비교적 전반이네요.


「그렇다니깐요. 그 때 『아, 위험해, 울 것 같아!』 싶어져서 『집중하자 집중!』이라고 생각했어요. 『러브라이브!』가 처음 TVA 애니메화 된 걸 봤을 때, 「여기부터 우리들이 시작하는구나, 나아가자!」라던 그 날의 마음으로 되돌아갔어요. 『우리 지금 여기까지 왔어! 대단해!』라고 생각하니 왠지, 찡해졌죠. 『아, 이거 위험한데......』 싶었지만, 거기서 마음을 달리먹고(웃음), 1일차는 "우리들은 하나의 빛"의 아웃트로까진 비교적 즐겁다즐겁다했죠. 2일차엔, 왠지...... 한곡한곡 끝나갈 때마다 『이 노래, 이제 다신 춤출 일 없는 걸까』 싶어서 왠지, 섭섭했죠」


- 라이브 마지막에, 9명이 나란히 서서 스테이지를 내려갈 때,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이젠 뭐, 무(無)였습니다! 무슨 감정일까요, 그거? 『아, 이제 댐이 무너진다!』 같은 느낌이었네요. 그래도 웃으며 보내주고 싶어!라는 마음이었던지라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거든요, 다 내려갈 때까지. 그래도 인사하며 머리를 숙였을 땐 정말 위험했죠. 『아아, 끝나버렸구나』 싶어서. 그래도 그 광경은 뇌리게 강하게 새겨졌어요. 끝났다는 안심이랑 감동, 그래도 아직 스테이지에 조금이라도 있고 싶었던 마음까지도요. 그 모습을 못 보게 되는 게 아쉬웠다고 할까요, 그런 감정들이 뒤섞여서 폭발 일보 직전이었어요. 뭔가 학교 졸업식도 떠오르고. 다시 언제든지 모두를 만날 수 있다고 착각했어요. 언제든 모두가 모여 이렇게 라이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은 무의 상태, 인가 싶은 느낌이었어요, 응. 이 무가 계속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10년 정도 지났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자신감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용기를 갖고 더더욱 많이 나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요


- 『러브라이브!』가 시작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라이브 때의 영상을 보면 거의 다가 낯을 가렸다고 하셨죠.


「그랬죠, 낯을 가렸어요. 9명이나 있고, 처음엔 『9명인가. 정리는 될까?』라고 생각했어요. 부활동을 했었으니 여자끼리의 어려운 문제 같은 게 있잖아요(웃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누가 리더십을 가졌을까 등, 그래서 처음엔 가늠질을 했죠. 나이도 다르고, 해온 것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랬기에 이렇게 정리될 수 있었다고 할까요. 각자의 특기분야가 다른 게 어떤 의미론 도움이 됐다고 할까요. 조언받을 수 있는 것도 많아서 상당히 도움이 됐어요」


- 미모리씨가 다른 멤버에게 조언해준 건 어떤 거였나요?


「댄스는 비교적 제가 맡았던 거 같아요. 여긴 이렇다던가, 릴화의 스텝도 직전까지 릿삐한테 가르쳐주고 했죠(웃음). 제가 이끌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반대로 배우는 부분도 잔뜩 있었죠. 특히 모두를 처음 만났을 때 얘긴데, 저는 『내가 뭔가가 돼야겠어!』라며 초조해하던 시기였어요. 그 때는 열정도 엄청났고, 좋은 의미로 라이벌 의식도 있었어요. 그래도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네요」


- 그럼 미모리 스즈코라는 사람이 소노다 우미를 보물처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역시 TV 애니메화가 되고, 살아움직이는 우미쨩을 보고서일 거에요. 그 때까진 우미쨩에 대해서 조금 벽을 느꼈거든요(웃음). 특히 1기 제 3화일까요. 실은 스쿨아이돌을 한다는 것에 부끄러워하고―― 의상을 입고 『싫어!』라는 듯이 나오면서도 집에선 몰래 러브애로우슛을 하는 게 있었죠. 그런 우미쨩의 본질을 보고 『나 우미쨩이 엄청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보다도 나 여태까지 우미쨩에 대해 전혀 몰랐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상상도 못 하겠어, 이런 진지한 사람은』이라고 생각했는데, 『뭐야, 평범한 애였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누구보다도 여자애의 마음을 가졌으면서, 그걸 커버하기 위해 일부러 강한 모습으로 감친 거 아냐, 라는 싶었고요. 『아, 뭐야, 인간이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꽤 거리가 줄었어요」


- 그럼 요 6년간 우미쨩에게 받은 것 중, 가장 소중한 건 뭔가요?


「우미쨩은...... 올곧은 말을 똑바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이죠. 가령 소꿉친구인 호노카에게도 잘못된 건 『이건 잘못됐어! 너, 이거 아냐! 똑바로 해!』라고 정면으로 말해줄 수 있는 애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미움받아도 괜찮아, 싶을 정도의 의지로 팡!하고 똑바로 말해줄 수 있는 강한 면이 멋진 것 같아요. 따라할 수 있으면 좋겠는 우미쨩의 성경」


- 애정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네요.


「그렇죠」


- 딱 "용기의 Reason"이군요.


「정말 "용기의 Reason"이죠」


- "용기의 Reason"은 TV 애니메 전에 발매된 곡이었죠. 실은 TV 애니메에서 「우미쨩은 이런 애였구나!」라고 알기 전부터 미모리씨는 노래하셨는데요.


「그렇네~ 정말 노래했었네요! 그렇구나, 용기있는 사람이었구나. 정말 애정만이 아니었네요. 거기에 용기까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구나. 하여간 그만한 나잇대의 여자가 9명 모이면 어떻게든 주변에 맞추게 되잖아요.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는 식으로요(웃음). 제가 튀지 않도록 하면서 집단에 들어가려고 하죠. 그런데 우미쨩은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서 짜악! 하고 뺨을 치고요. 간신히 괜찮은 말이 떠올라서 다행이네요(웃음)」


- (웃음) 여태까지 함께 해온 8명의 멤버에게 전해준 거나 전해주고 싶은 것. 혹은 라이브가 끝난 후, 실제로 전해준 건 뭐가 있나요?


「라이브가 끝나고 뒤풀이에서 이야기했던 게 있어요. 라이브 중에 필사적이 되면 될수록 제가 아닌 『쟤는 방금 안무 틀렸지만 괜찮을까』라던가 『쟤 의상 순식간에 바꾸는 거, 잘할 수 있을까』라던가, 다른 사람이 걱정이 되더라고, 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다들 똑같더라고요. 가령 이번에 에미츤 마이크 커버가 떨어졌는데, 본인이 당황했을 때, 제가 대각선 뒤에 있었거든요. 『앗!』하곤, 가능한 한 앞으로 나가 눈에 띄는 곳에 나서서 안무를 평소보다 크게 추고 했어요(웃음). 『여기야!』라는 식으로. 그런 배려 같은 걸 다른 8명한테도 많이 느껴요. 그게 전혀 거북하지 않은 배려부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거나 진심으로 칭찬해주는 것까지도요. 그 관계성에는 거짓이 없구나 싶네요. 저희는 9명으로서 μ's이기에 누구 하나가 삐져나가선 안 돼. 그런 단결력이라고 할까요, 『다함께 힘내자!』라는 느낌이네요」


- 요 6년간 경험해온 건, 미모리씨에게 있어서 앞으로 어떤 걸로서 남겨두려고 하나요?


「우선, 앞으로의 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되돌아보면 『너무 희망을 가지지 말자,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라는 식의 네거티브하던 때에서 시작해서, 실제로 여러가지 기적이 일어났고, 꿈이 이루어졌고, 『모두의 힘이 모이면 꿈은 이루어지잖아!』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정말 『해냈어, 마지막까지』라는 말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러브라이브!』, μ's의 마지막까지 해낸 것이 제게 많은 자신감이 되었어요. 『자신감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용기를 갖고 더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요」


- μ's를 통해 많은 걸 받기 전엔 많은 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었단 거군요.


「네, 식어버린 현대사람이었죠(웃음). 댄스는 원래 엄청 열심히 했었지만, 특히 열중할 수 있는 꿈이 있었다, 그런 거 같아요. 이전엔 좀 더 나이를 먹고 저희 아이들의 세대가 된다면 엄청 리얼리티있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초거대한 설득력이네요(웃음).


「그렇죠(웃음). 『꿈을 포기하지 마!』라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요. 그게 너무 기쁩니다. 도중에 내팽개치지도 포기하지도 않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해요」


- 마지막입니다. 「『러브라이브!』란, μ's란, 뭔가요?」라는 질문입니다만, 미모리씨는 재작년에 「기적」, 작년엔 「청춘. 그래도 기적이기도 합니다」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해낸 지금, 『러브라이브!』란, μ's란 무엇입니까?


「뭘까요...... 재산일까요(웃음). 저, 뭐하는 분이냐고 질문받으면, 우선 『μ's의 소노다 우미 역인 미모리 스즈코』라고 팍 튀어나가요. 이게 뭔가가 되고 싶어했던 제가 본다면 대단한 거잖아요. 모두가 알아주는, 그런 거니까요. 정말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 기적이나 청춘 같은 게 아닌 개념 아닌가요. 형태가 없는 거죠. 그런데 재산이라면 형태가 있는 거고요.


「그렇네요, 응」


- 형태가 생겼다, 결국.


「응, 그렇죠! 형태로서 남겼다고 할까요. 극장판에서 일어난 것 같은 일을 저희들 자신이 다시 체험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 기적, 있다?』라는 듯이요. 정말이지 이건 이제, 평생 이야깃거리네요. 그러니 사라지지도, 빛바랠 일도 없는 거다, 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무(無)는 빨리 벗어나고 싶겠죠.


「네, 무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벗어나는 방법을 지금 모색하고 있습니다(웃음)」

μ's는 「제게도 있을 곳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해줬어요. 제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 하고


멤버로서, 팬으로 μ's에 깊은 애정을 자기 안에 길러온 토쿠이 소라. 그녀에게 있어서 μ's란 사랑하는 음악을 전해준 존재이자, 무엇보다도 소중한 있을 곳이자, 야자와 니코와 많은 약속을 주고받은 시간으로도 있었다. 응원해주는 모두에게 온 힘을 다해 대답해주고, 자기자신도 힘껏 즐겨온 μ's와의 6년간과 동료들에의 마음을 말해주었다.


- 우선은 파이널 라이브에 대해서 이야기를 여쭙고자 합니다. 도쿄돔에서의 라이브를 지금 되짚어보면 어떤 느낌이신가요?


「뭔가 이젠, 상당히...... 정말, 꿈처럼 두루뭉술한 느낌이라서요. 하기는 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끝난 걸까 싶기도 하고, 신기한 느낌이네요. 『파이널 라이브가 끝났다는 실감은 언제 느껴지는 걸까?』라는 느낌이라 모두랑 얘기했었어요. 지금 전혀 실감이 안 나는 것 같네요」


- 연말부터 μ's랑 관련된 상황이 상당히 바빠지면서 엄청났습니다만, 토쿠이씨는 무슨 생각을 하시며 그 시간을 보내셨나요?


「으음, 음악방송 같은 것도 왠지 일상을 넘어선 것 같아서 진짜 신기했어요. 『럭키-!』라는 생각이랑 같이. 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달리자!는 식이었네요. 시카쨩이랑은 『홍백 발표 때도 전혀 긴장이 안 됐다, 실감이 하나도 안 나서』라고 했고요. 의외로 다들 긴장하면서도 붕 뜬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한순간한순간이 모두 긴장뿐이었던 것만 같은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주변에선 『야, 홍백가수!』 같은 식으로 말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9명은 아마 시작할 때랑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 주변만 점점 커져서 오히려 동떨어지게 된 건 아닐까 싶던 순간도 있을 정도엿네요. 개인적으론 굳이 말하자면 기분이 아직 TV 애니메 2기 때 정도라(웃음)」


- (웃음) 라이브를 대비하는 시기안 많은 감정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가령 지금껏 없었던 가장 큰 스테이지에 선다는 긴장이나 불안감, 혹은 기쁨도 있을 수 있겠고요, 즐거움이나 쓸쓸함도 있을 수 있겠죠. 특히 강하게 느꼈던 건 어떤 걸까요.


「『이걸로 끝인가』하는 건 저~기 맨 아래층에 있는 것 같았고, 그 바로 위층에 라이브까지 시간이 얼마 없어서 『괜찮을까? 시간 안에 다 할 수 있을까?』하는 두근거림도 있었어요. 그리고 맨 위층은 역시 『즐겨야지&즐겁다!』였어요. 준비하는 기간도 멤버들이랑 계속 만나서 밥 먹으며 『마지막인걸』이라 말하고, 연습하는 모습도 많이 사진 찍고, 정말 부활동 마지막 대회를 대비해 모두가 모여있는 듯한 느낌이었네요. 침울한 얘기는 하나도 안 했어요. 아마 다들 그걸 각자 집에 놔두고 왔는지, 모두 모여서 하는 얘기라곤 오늘 케이터링 빵이 맛있다는 정도――」


- (웃음).


「뭐가 몸에 잘 듣는다던가, 이게 몸에 좋다던가(웃음).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곤 아무래도 저희들의 스테이지를 관객으로서 볼 기회가 없었던 터라 Printemps 의상 같은 걸 보며 『와아, 멋지다!』라고 했죠. 거기서 관객들의 기분을 동시에 느끼면서도 『릴화 여길 봐줘!』라는 식으로 손을 흔들며 연습했어요. 뭘까요, 역시 애초에 제가 오타쿠였던 것도 있어서 제가 멤버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μ's에 푹 빠졌을 거에요. 그래서 노래만 나와도 엄청 달아오르고, 그 순간이 관객으로서 달아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왠지 『일찍 세트리스트를 알 수 있어서 럭키구만!』이라고 생각했죠(웃음). Printemps의 3번째 곡 "sweet & sweet holiday"의 인트로가 흘러나올 때 제 마음은 이미 날뛰고 있었죠(웃음)」


- 하하하.


「Printemps의 3명한테 『이, 이건 불타오르는걸!?』이라고 전해줬어요(웃음)」


- (웃음) BiBi에 대해선 어떤가요? "PSYCHIC FIRE"은 이번 파이널 라이브의 노래 중에서도 회장을 무지하게 달아오르게 했던 곡 중 하나였지요.


2일차의 마지막 노래가 끝날 때까진 울지 않을 거라 결심하고, 마음 속의 야자와에게 선언했어요(웃음)


「그렇죠! "PSYCHIC FIRE"는 정말, 추임새 같은 게 엄청 많았죠. 녹음할 때 얘기했더니 다양한 추임새를 넣어줬거든요. 그 부분에 관객들이 추임새를 넣어줌으로서 처음 완성되는 곡이라는 느낌이라 연습할 때도 즐거웠지만, 본 라이브에선 정신없을 정도로 즐거웠다니깐요. 정말로 BiBi 제국이 완성된 듯한 기분이었어요(웃음). 무지 즐거웠죠. 정말 BiBi는 『돔에서 이렇게 소란 피워도 되나?』싶을 정도였고(웃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BiBi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뭐라고 할까요, 그 3명의 감정이 여과없이 나온 게 아닐까 싶네요. 코믹유닛인가 싶을 정도로요(웃음). "착각 CROSSROADS"에서 내려가는 것도, 연습할 때 나오게 된 얘기었어요. 『아니, 설마 이런 흐리멍덩한 느낌으론 안 할 거잖아?』랬지만, 꽤 그런 느낌이 돼서 『그런 면도 BiBi다운 건가』 싶었네요」


8명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라이브에서 했던 노래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우선 앵콜 마지막이었던 "MOMENT RING"에는 《끝나지 않는 꿈》 《새로운 꿈》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토쿠이씨는 이 「꿈」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부르셨던 건가요?


「그렇네요, 끝나지 않는 꿈이란, 정말 이 『러브라이브!』, μ's 자체가 꿈 같은 경험을 많이 했고, 끔도 이뤄왔죠. 진짜 『꿈이었구나!』하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새로운 꿈은 뭘까 싶었습니다. μ's 한명한명의 앞날일지, 『러브라이브!』의 앞날일지, 아니면 팬 모두의 앞날일지. 『《새로운 꿈》이란 게 뭘까?』 싶었어요. 그런데 전 파이널 라이브가 끝나고 4월이 되니 새로운 꿈을 만들자, 새로운 목표를 세우자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꿈이 뭘까?』라고 생각하던 그 때부터가 새로운 꿈이라고 할까요. 노래할 땐 새로운 꿈은 4월 2일 이후에나 알겠지!라고 생각했어요(웃음)」


- (웃음) "우리들은 하나의 빛"은 작년 극장판 특집 좌담회에서 「9명을 위해, 9명끼리만 부르고 싶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상당히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그 때 토쿠이씨가 특히 그렇게 말씀하셨죠.


「응, 말했었죠」


- 그런데 돔에선 회장에 있던 모두가 불러주지 않았습니까. 그 마지막 대합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대합창을 보고...... 『그런가, 모두 μ's였구나!』라고 생각했네요(웃음). 그 전에도 가장 마지막 곡을 관객들이 불러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저흰 그 순간을 완전히 잊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모두가 불러주는 게 정말 예상외였고............ 모두가 있었기에 μ's였구나, 9명끼리만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딱 9명만이 μ's인 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모두들 같은 마음으로, 그 마음을 공유하며, 모두가 하나가 되었네요」


- 하나――?


「의 빛으로요(웃음). 하나의 빛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모두 그렇게 노래해주면 저희는 당연히 운다고요. 2일차는 울게 된다고 치더라도 『1일차는 절대 울지 않아!』라고 결심했는데 『그만두게!』라고 생각했어요」


- 하하하.


「『1일차에서 모두가 그렇게 합창하면 울게 되잖아!』라는 기분도 있었고, 한편으론 그렇게, 1일차는 견디자는 마음이 셌거든요. 그래서 『모두의 마음은 알았어! 그런데! 참을 거야!』라는 마음이었죠」


- 1일차는 끝끝내 참았다, 이건가요.


「1일차는 참았어요. 그건 야자와랑 약속했거든요(웃음). 『울지 않아!』라고 결심했어요」


- 그에 대해 야자와는 뭐라고 하던가요?


「야자와는 『당연하지!』라던대요(웃음). 솔직히 모두 그랬겠지만, 3월 30일에 리허설하던 때 『μ's는 여기부터 시작했어!』라는 처음 알파카 영상이 나올 때, 갑자기 다들 뚝뚝 눈물을 흘렸어요. 『아, 정말 하는구나』하는 실감이, 갑자기 거기서 와닿았거든요. 저도 울어버렸고, 릿삐랑 다들 울었고요. 돔에서 한다는 마음이 들자 이젠 툭하면 울 것 같았어요. 5시간 하는 동안 계속 울 만한 거리들이 있어서 언제든 눈물이 흘러넘치려고 했지만, 역시 『웃게 하는 게 일이다!』라고 니코쨩도 얘기했으니까요. 2일차 마지막 노래가 끝나기 전까진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고요. 마음 속의 야자와에게 『그렇게 하려는데!』라고 선언했죠(웃음). 이번에 제 안에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 무척 좋은 이야기 아닌가요. 야자와와의 약속(웃음).


「아하하하! 야자와와의 약속했죠. 1일차가 끝났을 때도 관객들이 노래하는 걸 보고 우는 멤버들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기본적으론 모두 울지 않겠다고 했어요. 모두가 그랬죠. 모두가 언제든 울 만한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런 생각이 강했어요」


- 멤버 중에서 울지 말자고 얘길 했던 건가요?


「했었죠. 『울지 말자!』라고요. 저는 정말 눈물샘이 약해서 언제 흘러나올지 모른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1일차 마지막에 『운 사람도 있었지만, 뭐 괜찮아, 울면 안 돼!』라고 다시금 확인했어요. 『우는 건 내일, 노래 다 부르고야!』라고 야자와와의 약속을 모두랑 살짝 공유했죠(웃음)」


- 하하하.


「『가능한 한 참자』라는 거였지만 『다 부르고 난 다음엔 자유입니다!』라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2일차에 『그럼 ♪좇아왔어 라는 마지막 가사에선 울어도 돼?』라고 간도 봐보고요(웃음). 그래도 역시 마지막엔 9명이 모이고 싶네, 싶었죠」


- 원형으로 모였던 거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모이자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은 했었어요. 확실하게 정한 건 아니었지만요. 아무래도 노래가 끝나니 울게 돼서, 우선 모두에게 『고마워!』라는 마음을 손을 흔듦으로써 전해줬어요. 그 다음은 9명이서, 8명에게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서 9명이서 모였던 거죠. 와, 엄청 울었어요(웃음). 대통곡했네요. 그래도 니코쨩과의 약속은 지켰구나 싶었어요」


- 토쿠이씨는 작년 좌담회에서 "여름빛 미소로 1, 2, Jump!"에 대해 속마음을 말씀해주셨잖아요. "나츠이로(夏色)"에서도 꽤 위험하지 않았던가요?


「하아, 위험했죠. 한곡한곡, 가사를 부를 때마다 『아, 이제 이 부분, 다신 부를 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노래했으니깐요! 『아, 이 안무도 이젠 평생 할 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니 점점 이렇게, 걸어온 뒤쪽의 다리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 2일차엔 특히 쩌억하고 갈라져 무너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네요」


- 그럼 그게, 좀 더 하고 싶어, 평생 하고 싶어, 라는 거랑은 또 다른 거군요. 무론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요.


「그렇죠. 정말 해냈다는 마음이 상당히 컸던 것 같아요」


- 라이브를 끝마치고, 다음날 아침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4월 2일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에? 끝났어?』라는 생각이었어요(웃음). 뭐라고 할까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네요. 『오늘부턴 라이브 연습도 안 하는 거야?』라고 생각이 드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딱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네요. 얼마나 커다란 게 빠져나간 건지 모르겠다고 할까요, 믿기 힘들었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엄청 시차가 있는 저희인지라, 아직도 꿈에서 라이브 연습을 하곤 해요. 꿈을 꾸게 되면, 실감이 안 나는구나 싶고......」


-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으음, 돌아가고 싶다고 할까요, 8명을 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죄송합니다......」


- 내일 만나잖아요(웃음) (이 취재는 전원 촬영 전날에 실시).


「(웃음) 그렇네요! 내일 만나네요, 응」


사랑하는 동료가 이루고 싶다고 하는 건, 나도 이루고 싶다! 라고 많이 생각했어요


- 이제부턴 니코와 지낸 6년간, 이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러브라이브!』가 시작하던 당시, 「내심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라던가 「나는 이런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끓어오르는 마음이 각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토쿠이씨는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저는 정말, 당시에 갓데뷔했었는데요, 어쨌건 니코쨩이 귀엽게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맨 처음에 개개인의 자기소개도 제가 생각하는, 제가 그리는 가장 귀여운 애의 이미지를 내보내자는 마음이었어요. 『모두에게 귀엽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이라고 생각하고, 내놨었죠」


- 토쿠이씨에게 있어서 야자와 니코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리라 확신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그렇네요, 역시 TV 애니메 1기 때, 한명한명의 마음 속까지 처음 볼 수 있었어요. 니코쨩이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가를 파고들게 됐고, 거기서 여러가지로 알았죠. 그 때 확 친근감이 느껴졌고―― 『소중히 하고 싶어!』라고 생각했네요. TV 애니메에서 각자에 대해 잘 알게 되었을 때, 딱 달라붙게 되었다는 느낌은 들어요. 그 때까진 연기할 기회도 적었고, 노래는 노래대로 부르는 거고, 스테이지에 설 때도 야자와 니코로서라기보다는 아마 토쿠이 소라로서라는 느낌이 강했던 거 같아요. 뿐만아니라 에미츤이랑 노래한다는 느낌이었고, 그런 이미지쪽이 강했던 거 같아요. 그래도 TV애니메화가 되고부턴, 스테이지에 설 때도, 역시 (CV : 토쿠이 소라)구나, 연기의 일종이구나라고 확 느껴졌어요」


- 토쿠이씨가 요 6년간 니코에게 받은 것, 니코가 준 것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뭘까요, μ's에겐 청춘을 받았고, 니코에겐 동료를 받았다는 느낌일까요. 여러모로 『니코쨩이 좋아요!』라는 사람이 많이 생겨서 동료가 잔뜩 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정말 니코쨩 덕분이구나 싶어요」


- 그 동료에는 괜객이나 응원해주는 사람도 포함되는 건가요?


「그렇죠」


- 그럼 그 동료들에게 받은 건 뭔가요?


「그저, 사랑이죠. 동료,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저도 한 명의 팬으로서 『러브라이브!』에 사랑을 쏟았으니까요. 다함께 응원하고, 다함께 좋아하고, 다함께 서로 『사랑해!』라는 마음을 말하고, 소리치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 멤버끼리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은데요, 6년간 함께 지내는 동안 나눈 대화 중에서, 어떤 게 인상에 남던가요?


「2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요, μ's의 꿈으로서, 오리콘 1위를 하고 싶다던가, 홍백에 출장하고 싶다는 꿈이 스태프들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 때 에미츤이 『나는 그걸 이뤄주고 싶어』라고 했었어요. 그걸 듣고...... 『사랑하는 동료가 이루고 싶다고 하는 건, 나도 이루고 싶어! 그러니 에미츤이 바라는 스태프들의 꿈을 어떻게든 나도 이뤄주고 싶어!』라고 강하게 바랐던 때가 있네요. 인생에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 강하게 바라기가 힘들잖아요. 그래도 역시 한명한명이 강하게 바라니, 보이지 않더라도 힘이 되리라 믿고, 저도 결국 『오리콘 1위를 할 수 있도록!』하고 강하게 바라게 되었어요.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오리콘 1위를 하고, 홍백도 결정돼서 『굉장하다! 바라니까 이뤄졌구나』라고 생각했어요」


- 그럼 6년간 쭉 함께 해온 8명의 멤버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전해주고 싶은 건 있으신가요?


「저는, 정말 다른 모두를 너무 존경해요. 이렇게 많은 것들을 뛰어넘기도 했고, 연습 때문에 나날이 만나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아, 대단해!』라고 생각한 게 있었고, 9명을 위해 힘내자!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거든요. 저도 처음엔 낯을 가려서―― 꽤 마음이 닫아두는 편인데도(웃음), 그런데도 μ's는 『제게도 있을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것 같아요. 제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하고 안심도 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 그렇군요. 그렇다면 토쿠이씨 자신은 그 때까진 있을 곳이 딱히 없었던 건가요?


「그렇네요. 비교적 딱히 머무를 곳도 없이 자라왔고, 그리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었어요. 그래도 『내게도 어엿히 있을 곳이 있구나. 내게도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안심하게 되면서 엄청 존경하게 되고, 좋아하는 부분이 늘고 했어요. 왠지 앞으로의 삶도 무척 기대하게 된 것 같아요. 모두에게 즐긴다는 것의 즐거운 점이라던가, 힘들어도 연습하는 것, 정말 여러가지로 배워왔고, 그게 청춘 이상의 청춘이었다고 할까요. 정말로, 따스한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동료를 위해 뭔갈 해주고 싶다던가, 무언갈 해줘서 항상 고맙다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은, 앞으로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 μ's는, 인생은 즐거운 거라는 걸 토쿠이씨에게 가르쳐준 곳이군요.


「그렇네요. 그게 정말 커요」


- 정말 소중한 곳이군요.


「그렇네요...... 하아~......」


- 그럼 마지막입니다. 도쿄돔에서 파이널 라이브를 끝마치고, 마지막까지 해냈습니다. 토쿠이씨에게 있어서 지금 『러브라이브!』란, μ's란 무엇인가요? 덧붙여 TV 애니메 2기가 끝난 직후인 재작년엔 「μ's의 모두와 함께 청춘했습니다! 최고의 시간 고마워」. 작년 극장판 때는 「청춘」이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역시, 청춘은 무조건 들어가겠지만............ 정리하자면 『끝나지 않는 청춘! 고마워! 사랑해!』일까요(웃음). 니코쨩네는 앞으로도 평생 변하지 않고, 빛바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모두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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