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쿠보 유리카


어느 순간엔가 문득 하나요의 목소리가 나와요. 하나요는 제 안에 있고, 전 하나요로서도 있습니다.


몇 번씩이고 돌려듣다보니 부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렇게나 사랑받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 "µ's Final LoveLive!"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다시 『러브라이브!』를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나요?


쿠보 유리카 그 라이브 후로 µ's에 대해 인터뷰를 했던 게 1번뿐이라 차분하게 얘기하게 되는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2016년은 파이널 라이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라 고작 3일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엄청 옛날 일처럼도 느껴지네요. "평생 잊을 수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선 무대였는데도 자세한 건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아요. 마지막에 퇴장하던 때만 자세히 기억나네요. 엄청 행복한 꿈을 꿨을 때 대략적으로밖에 기억나지 않잖아요? 그런 느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 그만큼 감정이 올랐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라이브가 시작하기까지 어떠셨나요?


쿠보 그 때까지 라이브 중에서 가장 실감 없이 나아갔었네요. 제게 있어선 솔로 활동이나 다른 작품과 비교해봐도 µ's 활동은 특별해요. 제 스스로 다른 것과는 다른 문에 들어가있는 느낌. 그래서 평소라면 라이브 전에 "라이브다!"하는 느낌이 잔뜩 들었는데요...... 파이널 전엔 팬미팅 투어나 「뮤직 스테이션」, 「홍백가합전」 등 4월까지 엄청 활동이 많다보니 진정할 틈이 없었어요(웃음). 당시엔 "왜 숨도 못 돌리게 한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양껏 활동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눈앞에 닥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저에겐 정말 좋았네요.


- 당시엔 멈춰서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네요.


쿠보 그러니 반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게 멋지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끝난 직후에 취재를 받았을 땐 진짜 감상이 잘 안 나왔으니까요. 생각이야 하고 있어도, 말로 하자니 거의 거짓말처럼 나오는 것 같아서 SNS에서도 잘 정리가 안 됐습니다. 워낙 역사가 너무 길어서 하나하나 적으려니 9명분의 책이 나올 정도라서요(웃음).


- 관객분들을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쿠보 평소라면 매번 "우와!" 하죠. 리허설에설랑 본 라이브에서랑 보이는 모습이 완전 다르거든요. 그래도 이번엔 "사뿐"한 느낌이었습니다. 라이브 중간에 생각을 곱씹는 일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평소라면 "여기서 틀리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노래에 집중하는데요, 2일차 땐 그야말로 "이 곡은 이게 마지막이구나. 더는 춤출 수 없구나"라고 하나씩 양초를 꺼가는 느낌이었습니다. 1일차 땐 냉정하게 "이 곡은 내일도 하지, 이 곡은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할 여유가 있었지만요.


- 가장 확 와닿는 곡은 뭐였나요?


쿠보 여태까지 부른 수가 많았던 건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인데요, 라이브에서 「Snow halation」은 항상 마침맞는 순간에 들어가는 곡이다보니 인상깊습니다. 그래도 저흰 평생 객석의 빛깔이 변하는 광경을 못 본다고요! 그 순간엔 뒤를 돌아보고 있거든요(웃음). "결국 마지막까지 못 봤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순간 마지막인데 봐볼까하는 잡념이 들었네요. 인상적인 안무가 않아서 "이 동작을 더는 할 일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 아까 라이브가 끝나고 퇴장하던 순간은 잘 기억이 나신다고 했는데요, 어떤 느낌이셨을까요?


쿠보 끝나는 것에 대한 마음만큼이나 관객분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 거에 대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우리 멤버들조차 외우는 게 힘들었는데, 다 외워주고 있구나!" 싶었죠. 그 후에 곧 노래를 부르려고 일부러 외운 게 아니라, 몇 번씩이고 돌려듣다보니 부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렇게나 사랑받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라이브가 끝난다기보단 "그 목소리가 안 들리게 된다"는 감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 종연 직후 멤버들의 상태는 어땠나요?


쿠보 원형으로 모여서 와~하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정말 기억이 안 나네요.


- 혹시 스스로 기억을 막아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쿠보 혹은 아무에게도 평생 말하지 않고 저만의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죠. 9명밖에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괜찮잖아?"라며 비밀로 해두고 싶을지도요(웃음).


지금, 눈앞의 시간을 어떻게 소중하게 할까


- 처음 하나요와 만났던 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쿠보 그녀의 성격을 알기 전에 노래를 수록하다보니 처음엔 하나요가 노래한다는 의식이 없이, 그저 "이 노래를 가장 좋은 형태로 표현한다"라는 것만을 생각하며 노래했습니다. 그 뒤로 하나요의 "자기소개"라는 아직까지도 역사적인 작품이 된 걸 녹음했는데요...... 아니, 지금도 부끄러워서 못 듣겠어요(웃음).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그나마 6년이 지나서죠. 당시엔 제가 연기하는 역할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했고, 왠지 모를 신기한 느낌이었네요. 실은 오디션에선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린쨩이나 호노카도 연기했었어요. 그 때 어떤 식으로 했었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 해보면 에미츤 흉내밖에 더 안 되겠죠(웃음). 이제 막 시작했을 땐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9명 각자의 역할을 맡고, 다른 캐스트였다면 상상하지 못 할 만큼 정착한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싶습니다.


- 연기하면서 하나요와 영향을 주고받은 부분은 있었나요?


쿠보 애초에 저와 하나요의 성격이 닮은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하나요는 자신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오다가 최근에 문득 "나도 어지간히 자신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꽤 여기저기에서 소극적이고, 칭찬받으면 우선 상대방을 의심부터 하기도 했고요(웃음). 그게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제가 자신이 없어서였겠죠. 그런 근본적인 부분이 닮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요가 계기가 되어 저 스스로를 알게 되는 것도 재밌고, 제 스스로 저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구나 싶기도 하고요.


- 라이브나 TV 애니메이션을 하며 영향이 커지는 흐름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었나요?


쿠보 기본적으로 µ's의 원맨라이브는 1년에 1번이다보니 1st, *2nd, 3rd 때엔 "좀 더 라이브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계단을 올라가며 자랐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요. 4th 라이브 땐 반향이 커져서 다른 일의 현장에서도 공연하시는 분들한테서 "엄청 신났네"라는 말을 듣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동종 업계라도 다른 애니메이션을 알고 있는 일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 얘기를 통해 실감이 드는 부분도 있었고, 그 때부터 "앞을 보는 것보다도 지금 있는 것을 어떻게 소중히 할까"라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뉴이어 라이브


- 어느 시기부터인가 작품 자체에서도 "지금"이라는 키워드가 축이 되었죠.


쿠보 저는 야마구치 모모에씨 스타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아직 세간에선 젊다고 해도, 저도 1년씩 나이를 먹어가며 경험하고 알게 되는 부분도 있는가 하면, 체력이 따라가지 못 하는 부분도 나오겠죠. 계속하면 계속한 만큼 봐주시는 분들이 기뻐하고 응원해주시겠지만, 점점 생각만큼 할 수 없게 되는 퍼포먼스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보면 끝내는 방법도 중요하다 싶어요. 특히 µ's의 퍼포먼스는 애니메이션 PV와 같은 안무를 하는 게 메인이다보니 그걸 못 하게 된다면 무서울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최고의 퍼포먼스를 할 수 있을 때에 아름답게 끝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쭉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파이널까지의 예정을 처음 들었을 때 순수하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 2015년은 팬미팅도 많았고, 반향이 컸던 해입니다만, 그 와중에 보며 어떠셨나요?


쿠보 팬분들이 하는 말이 신조어・유행어 대상(大賞)으로 지명된다는 건 참 대단하지요. 일반적인 분들은 몰라도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분들이 그만큼 소리쳐줬다는 거니까요. 팬미팅 투어를 많이 돈 멤버 중 한 명이다보니 투어를 돌 땐 "역시 체력이 부족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멤버들끼리의 거리도 가까워졌고, 스태프분들이나 헤어메이크 팀분들도 계속 따라와주시고, µ's 팀으로서 움직인 게 컸던 것 같네요. 그 시기를 보내며 아무 말도 안 해도 전해지는 게 전체적으로 늘었던 것 같습니다


좋든 나쁘든 그 이상의 흥분은 없다


- 다시 한 번 µ's 6년이 쿠보씨에게 있어 어떤 거였는지 여쭤보고자 합니다.


쿠보 20대의 6년이라니 당찮을 만큼 긴데요,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지도 않고, 파이널을 포함해서 µ's로서 지낸 시간이나 추억은 꼬옥 눌러담아 평생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어떤 일이 됐든 6년씩이나 계속하면 한 번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을 테고, 저도 "별로 나랑 안 맞는 거 같아"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µ's의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런 불안감도 생겼거든요.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앞으로 펼쳐진 미래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중요한 20대라는 시기를 µ's로서 보낼 수 있어서 그저 행복했다고만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의미로 과거가 되었다고 할까요, 그 중에서도 소중히 해두고 싶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생각들도 엄청 많지만, 저는 정말 µ's를 하느냐 마느냐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좋든 나쁘든 그 이상의 흥분은 앞으로 다시 맛볼 수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 지금 제가 어딘가에 두둥실 빠져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네요. 다른 일을 하더라도 문득 떠오른단 말이죠. "이거 먹었을 때 멤버들이 이랬었지"라던가요(웃음). 이게 평생 계속될 거라 생각하면 신기해요.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도 바로 옆에 없으니까......라고 왠지 죽은 연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네요(웃음). 하지만 정말로 그런 느낌입니다.


그 이상의 흥분은 앞으로 다시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요에 대해선 어떤 마음이신가요?


쿠보 뭘까요...... 하나요에 대해선 정말 제 자신 같은 느낌이 있어서 "그녀에게 뭐라고 전해주고 싶습니까?"라고 물어본들 제게 물어보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파이널 라이브가 끝난 직후엔 『러브라이브!』가 하나요와 함께 추억이 되는 걸까 싶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문득 하나요의 목소리이고 하니 재밌구나 싶네요(웃음). 그래서 말도 무엇도 안 나온다고 할까요, 새로이 연기할 기회가 없다고 해도 하나요는 제 안에 있고, 저는 하나요로서도 있다는 느낌입니다. 말을 하자면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일까요.


-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쿠보 여태까지 몇 번씩 하다보니, µ's의 쿠보 유리카로서 「리스아니!」에 실리는 지금 단계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기한 기분입니다. 5년, 10년씩 크게 일단락이 된다면 이렇게 동창회처럼 모일 수 있으면 재밌겠네요. 아무래도 그 때까지 같은 의상을 입는 건 조금 그렇지만요(웃음). 라이브가 끝나자마자 µ's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좀처럼 없어서 「쿠보씨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가버렸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웃음). "아니, 아니라고! 적절한 타이밍에 말하게 해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웃음). 그래서 이런 기회가 생겨서 정말 다행입니다. 코이즈미 하나요 역의 쿠보 유리카로서 지낸 건 제게 있어서 최고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µ's 노래를 들어주시고, BD도 봐주시면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러브라이브!』라는 작품 자체는 계속될 거고, 그렇게 역사가 계속되길 바라니 여러분, 앞으로도 『러브라이브!』를 사랑해주시길 바라요. 사랑하는 방법은 각자 나름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제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번역 : Na2Cr2O7

링크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comment_view/?id=sunshine&no=1001634


07. 쿠스다 아이나


'1장의 CD부터 시작해 이렇게나 많은 분들에게 지지받고, 사랑받아,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제가 노조미를 연기하고 있다는 자각이 아니라, 「노조미」라는 인간도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μ’s Final LoveLive!’의 스테이지부터 반년 이상 지났는데, 「러브라이브!」나 μ’s의 안무를 출 타이밍은 있었나요?


쿠스다 아이나 반년...좀 더 전같은 느낌이 드네요. 새로운 현장에서 만난 분이, ‘도쿄돔에 서셨었죠, 대단하네요’라고 듣기도해서 추억을 떠올리는 기회는 많았습니다. 역시 처음 일이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僕らのLIVE 君とのLIFE)’의 레코딩이었기 때문에, 저의 성우활동을 되돌아본다면 빠질 수 없는 원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도쿄돔에서 한다고 들었을 때는 어떠셨습니까?


쿠스다 ‘도쿄돔이라면 야구하는 곳 아닌가요?’라고. (웃음) 물론 관객으로도 가본 적 있어서, 도쿄돔에서 라이브하는건 엄청난 일이라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역시 그것보다 ‘파이널’이라는 마음이 강했었고, 지금까지의 라이브와 변함 없는 진지한 마음으로 노조미나 μ’s의 멤버에 마주하여, 라이브를 만들어가자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장소가 도쿄돔이었다는 정도의 감각?


쿠스다 그렇네요. 물론, 그렇게나 큰 회장에서 많은 분과 같이 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 멋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리허설의 분위기는 어떠셨습니까?


쿠스다 아무도 없는 회장은 그다지 크다고 느껴지지 않아서...위가 천막으로 되어있어서, 낮시간은 밝아서 관객석도 잘 보입니다. 게다가 둥글어서, 저는 세로로 긴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가 더 멀다고 느껴졌습니다. 스테이지의 뒤에도 관객분들이 들어온다고 들어서, 전방위부터 팬분들에게 둘러 쌓여있다는 것은 정말로 집대성이구나라고.


-라이브가 시작하기 직전의 백 스테이지는 어떤 분위기였나요?


쿠스다 분주했었네요. 이 쯤에는 각자 자신 나름의 집중하는 방법이 있어서, 밥을 먹는다던가, 마사지를 하던가하며 각각 준비했었습니다. 저는 계속 ‘아-긴장된다’라고 말했던 느낌이네요. (웃음) 그리고는 모두 나란히 메이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곡을 불러서 모두가 노래를 부른다던가. 그런 점은 비교적 평소대로네요.


-본방에서도 스테이지 위에서는 매우 자연체로 보였습니다.


쿠스다 처음에 나왔을 때, 관객들의 얼굴이 지금까지 중에 가장 잘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웃는 얼굴이 빛나는 것처럼 보여서, 저도 자연스럽게 즐거워졌습니다. 처음에는 정말로 긴장해서 밥도 먹지 못할 정도였는데, 나와보니 즐거워서 눈 깜짝할 새의 5시간이었네요.


-그런 라이브가 끝날 때에는 어떠셨나요?


쿠스다 2일차의 최후에는 오히려 릴랙스하고 있었지만, 1일차의 최후가 힘들었습니다. ‘내일로 끝!’이라는 마음이 있어 너무 긴장한걸까, 도중에 발이 땅겼습니다. 전날도 늦게까지 리허설이 있었고, 몸이 지쳐 있었네요. 즐거웠으니까 본방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뒤로 물러나면 욱신거려서, 과호흡같이 걸을 수 없어서...매달려서 이동했습니다. 사실은.


-네!? 스테이지에서는 그걸 느끼지 못하는 웃는 얼굴이나 퍼포먼스였는데…


쿠스다 스테이지 위에서는 마음을 잡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프구나’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힘을 쏟지 않으면 후회할꺼라는 기분도 있어서. 그런 것도 있어서, 2일차는 전력으로 서포트할 수 있어서 릴랙스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2일차에 스테이지에서 떠나는 순간은 어떤 것을 생각하셨었나요?


쿠스다 ‘도쿄돔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21시까지라고 들었는데, 시간 괜찮을까나’라고 냉정한 자신을. (웃음) ‘6년간 행복했구나’라는 생각과,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끝내고 싶지 않아’라고도 생각했었고, 자주 기억이 주마등처럼 흐른다고 말하지 하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민하게 된 감각이었더군요.


쿠스다 넓은 회장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장 관객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 전원의 얼굴을 볼 수 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 순간 한 순간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무지는 강하다”로 넘어온 격동의 6년간


-처음으로 노조미와 만났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쿠스다 집으로 보내주신 한 장의 일러스트 데이터로 처음 노조미를 만나서, 처음에는 소극적인걸까라고 인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사람의 뒤에 숨어 있는 듯한, 하나요쨩같은 아이인걸까 생각했었는데, ‘처음 뵙겠습니다’의 보이스 드라마나 TV 애니메이션을 거치면서 인상이 바뀌어갔네요.


-보고 있어도 쿠스다 씨와 노조미의 거리가 좁혀지고, 리얼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은 있었습니다.


쿠스다 저는 그다지 노조미를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연기는 하고 있지만서도, ‘노조미’라는 인간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연기한다랄까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게 아니라, 곁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자기자신 같은, 친구 같은, 신기한 관계네요. (웃음)


-쿠스다 씨의 성장이 노조미에 피드백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쿠스다 TV 애니메이션 안에서 노조미가 성장했기 때문에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고, 반대도 있기에...조금 다른 듯한 느낌도 있지만, ‘전우’랄까요?


-노조미와의 거리는 가까워지는 편이었네요?


쿠스다 노조미에 대해서 알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의 1기가 시작했을 때, μ’s가 되기 전의 토죠 노조미를 만나,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일면에 놀라거나, 조금 당황하거나 했습니다. TV 애니메이션 1기에서는 노조미의 본심이 그다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μ’s를 만들고 싶어했는지. 그런 것도 엄청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여 보다 거리를 줄인게?


쿠스다 예를 들어 친구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고. 하지만, 모르던 부분을 깨달아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소중한 존재가 된걸까나, 라고. TV 애니메이션이나 다수의 라이브를 거쳐, 확 거리가 좁혀저서 특별한 인연이 생긴 것 같습니다.


-맨 처음 레코딩은 기억하시나요?


쿠스다 엄청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제 앞에 에미츤이 녹음하고 있었고, 처음 레코딩이었기 때문에 견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녹음하는구나’라고 신선하게 느꼈고, 쿨러가 너무 쌔서 ‘추워’라고 생각하기도. (웃음) 긴장하면 손발이 차가워지는 타입이라, 추워서 노래할 때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노래하지 못했고, 레코딩도 어려웠고, 부스에 있는 기재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인상적으로 남는 노래는?


쿠스다 전부네요. 어느 곡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Snow Halation’입니다. 엄청나게 어려워서 고전했던 기억이 있어서, 솔로 버젼이 나올 때는 다시 녹음했습니다. 그 때는 1st 라이브 후라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게 되어, 자기자신의 성장을 느꼈습니다. 이 곡은 ‘Heart of  Magic Garden2’로 이토 마스미(伊藤真澄) 씨가 어레인지하여 한번 더 레코딩해서 제 안에서는 가장 수록의 회수가 많아서 추억이 깊습니다.


-1st 라이브는 어떠셨었나요?


쿠스다 아마 스탭은 큰일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에게는 뭐가 힘들었는지 몰라서, 가장 헤매임도 느끼지 못했던 라이브였습니다. 어쨌든, 들은 것을 소화해서 갈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무지는 엄청난 무기구나라고, 지금이서야 생각하네요. 거듭할수록 점점 부담도 커지게 되어서.


-그런 의미로는 회장이 점점 커지게 된거에 비례해서 부담도 엄청난게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쿠스다 퍼시픽코 요코하마의 라이브가 특히 긴장되었습니다. 본방 전에 긴장으로 맘대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미모링이 ‘안 돼, 아직 안 돼!’라고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렇다면 쿠스다 씨가 시작하기 전에 울었고 마지막에도 또 울었다는 것이.


쿠스다 사실 다음 라이브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한다는 것을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퍼시픽코를 성공하지 못하면 SSA에 서지 못한다는 부담도 있었었네요. 아니사마에서 섰던 그 스테이지를 9명만으로 2일간 채운다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불안도 컸기 때문에, 그 때 멤버와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멤버 사이 거리가 좁혀진 것도 이쯤이 계기가 아닐까.


-그리고 작년, 여름 이후로 노도와 같은 활동이었습니다.


쿠스다 저에게 있어서 「러브라이브!」는 당연한 존재였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대단하네’라고 말해주셔도 ‘그런거야?’라는 느낌이라. M스테나 홍백도 저희들은 생방송으로 온에어를 보지 못해서, 실감없는 채로 끝나버렸습니다.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고 있는 느낌으로 ‘이런 식으로 찍는구나’ 같은. (웃음) 이것도 무지해서 그랬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직 같은 기회가 있다면 긴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야말로 라이브에 향해서 활동도 있었고, 바빠서 실감하지 못한게 아닐지.


쿠스다 그렇네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러브라이브!」를 알게 되어, 좋아해주시는 것이 전해져와서, 그것이 기쁘게 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같이 걸어온 전우에 향해서 지금, 보내는 말


-새삼스럽지만, 6년간을 달려온 지금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쿠스다 뭐랄까, 신기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거 일생에 한 번 있을까 없을까고, 아니, 평범하게 생활한다면 없지 않나요. 정말로 신기한 6년간으로 다시금 생각하면 여러가지 것들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의 저는 하나하나가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지금 돌아보면 전부 꿈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눈 깜짝할 새였습니다.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편 크게 바뀐 6년간이라는 마음도 있어서...결국 뭘 말하고 싶은걸까요. (웃음)


-여러가지 생각이 쌓여서 그렇군요. (웃음)


쿠스다 지금 6년을 돌이켜봐도 실감은 없지만서도, 10년 후 20년 후에 ‘진한 6년간이었구나’라고 돌아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6년간을 같이 보낸 8명의 멤버는 쿠스다 씨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쿠스다 어떤 존재인걸까요...모두가 각자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쁘고, 나도 힘내지 않으면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라이벌이며, 동료이기도 하며, 하지만 친구는 아니네요.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라서. (웃음) 친구라기 보다는 6년간의 부활동을 같이한 동료같은. 사이좋은 그룹으로 매일 같이 놀고 싶어라는 느낌은 아니지만, 각자 모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평생 끊어지지 않을 인연같은 것은 분명 있는게 아닐까라고.


-아까 전우라고 한 노조미에 대해서도 지금 한마디 하신다면 어떻게 말하고 싶으신가요?


쿠스다 그렇네요, 말을 건다면…’지금 당신은 웃고 있으신가요? 행복하신가요?’라고 묻고 싶습니다. 물어보는거랑은 조금 다르지만, 행복하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해서. 그렇네요. ‘당신의 행복을 빌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걸 들으니 지금 노조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네요.


쿠스다 음...그렇다면 기쁘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에게 메세지를 부탁드립니다.


쿠스다 지금까지 응원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6년간, 단 1장의 CD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시고, 사랑받아, 매우 행복했습니다. 이 마음은 분명 계속 잊혀지지 않을꺼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했습니다.


만약 지금, 노조미에게 말을 건다면, '당신의 행복을 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06. Pile


스쿨아이돌로서 성장하는 마키쨩과 함께 제 자신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락을 짓는 걸 확실히 전해줄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µ's Final LoveLive!"로부터 반년이 넘게 지났습니다만, Pile씨 안에서 µ's의 6년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나요?


Pile 사실 아직 BD도 끝까지 다 못 봤습니다(웃음). 아무래도 집대성 라이브이다보니 단순히 슬쩍 볼 순 없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최근에 도쿄돔 라이브를 보러 갔을 때 "저쪽에 섰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넓었구나. 그래도 의외로 잘 보이네"라고 관객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어요.


- 그 때 다시 실감했다는 거군요.


Pile 그렇네요. "회장이 넓어지면 모두와 멀어지잖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객석에 앉아보니 의외로 거리감이 느껴지질 않았어요. "다들 이런 느낌으로 보고 있던 걸까?"라며 돌아보게 됐습니다.


- 원래 도쿄돔이라는 장소에 대한 인상을 갖고 계셨던 건가요?


Pile 돔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에 대해선, 실은 그렇게 특별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뒤쪽까지 관객분들이 계신 걸 봤을 때 "이렇게까지 사람이 모이다니, 왠지 엄청난 곳까지 왔구나" 싶었죠.


- 라이브 중에 퍼포먼스를 하면서 객석을 돌아볼 정도였다면, 비교적 냉정했다는 건가요?


Pile 그렇네요. 그저 "다음에 내가 어디로 가지?"라는 것에 필사적이었습니다. 회장이 넓다보니 일단 반대로 가면 다시 돌아오질 못 하니까요(웃음). 신경 써서 스테이지 사진을 찍어서 확인했습니다.


- 그만큼 넓다보면 동선을 염두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군요.


Pile 그렇죠. 아무래도 오랫동안 라이브를 해온 만큼 새로 익혀야 될 것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할 수 있는 한 여기저기로 가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제 자신도 관객분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토롯코*를 탔을 때 한명한명이 잘 보여서 즐거웠고, BiBi 땐 엄청 높은 곳까지 올라갔기도 했고요(웃음).

*라이브에서 타고 다니던 이동차


- 정말 전후좌우부터 위아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를 향해 퍼포먼스를 하셨군요.


Pile 네. 단념석에 계신 관객분들께도 스테이지에서 나오면서 마이크 꺼졌을 때 "잘 즐겨줘!"라는 둥 말해줬어요. 그래서 전 "단념석이 카미석(神席)이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 2일간의 스테이지, 특히 마지막에 접어들면서 "파이널 라이브"라는 것에 대한 실감도 천천히 들지 않던가요?


Pile 아뇨, 꽤 냉정했네요. "다 함께 하는 건 이게 마지막이구나"라고 느꼈기에 "더더욱 완벽하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냉정했어요. 안무도 거의 틀리는 것 없이 다 해냈습니다.


- 2일차의 마지막 "우리들은 하나의 빛"을 다 부르고서 관객들의 얼굴을 보며 퇴장할 때 복받치는 생각이 있었나요?


Pile 으음...... 아직 열기가 남은 상태라 그럴지도 모르겠는데요, 확실하게 무슨 생각이 들었다기보단 "아아, 끝났구나......" 하는 마음이었네요. 그래도 "다행이다"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이런 형태로 같이 일단락을 짓는 걸 확실히 전해줄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거든요.


- 그렇군요. 최고의 모습으로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다는 거니까요.


Pile 그렇지요. 그리고 끝난 뒤에는 "아드레날린이란 게 대단한 거구나" 싶었습니다. 그도 그런 게, 그 이틀이 끝나고 다음날부터 하반신에 엄청난 근육통이 있었거든요(웃음). 그 전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 걷기도 힘들 만큼 아팠어요. 그래서 다음날엔 집에서 계속 잠만 잤고, 결국 그 근육통이 2주정도 지속됐습니다(웃음).


고고한 존재라고 보이지만 실은 "별 거 없다"


- 그럼 이번엔 훨씬 전의 일에 대해 여쭤보려고 합니다. 우선, 마키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기억나시나요?


Pile 처음엔 "혼자 눈꼬리가 올라갔구나"라는 인상이었네요. 그 땐 아직 어떤 애인지 자세한 걸 몰랐어요.


- 그런 마키쨩과 함께 해나가는 것에 있어서 그녀와 자신의 닮은 부분을 느낀 건 없었나요?


Pile 원래 주변 사람들과 그렇게까지 어울리지 않는 타입인데도 마음을 열고 친해지면 그 사람들한테 이래저래 신경쓰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엄청 낯을 가리는 편인데, 상대가 다가와주면 저도 어떻게든 다가가보려고 하거든요.


- 그런 부분은 TV 애니메이션에서 µ's에 가입하는 과정이 그려질 때 여실히 느껴졌던 것 같네요. 고고한 존재로부터 9명의 동료가 되어간다는 점에서요.


Pile 그러게요. 고고하게 보이지만 실은 "별 거 없다"는 거죠(웃음). 그 "휘말려들었다는 느낌을 내지만, 실은 상당히 기뻐한다"라는 심정도 정말 잘 이해됩니다.


- TV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초창기 애프터레코드 때는 기억이 나시나요?


Pile 네, 기억납니다. 첫 애프터레코드인데 낯을 가리다보니 어떡해야 좋을지 물어보지도 못 하고, 누가 알려주는 걸 옆에서 듣고 "그렇구나......!" 하고 있었어요. 보고 흉내내면서 조금씩 익혀갔었죠(웃음). 그것도 중간부턴 점점 스스로 물어볼 수 있게 돼서 나중에라도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여러가질 경험하며...... 스쿨아이돌로서 성장하는 마키쨩과 함께 제 자신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마키 역할로서 레코딩하면서 깊은 추억으로 남은 건 있나요?


Pile 실은 레코딩 때문에 고전했던 건 없었습니다. 그저 "마키쨩은 이런 느낌으로 노래한다"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된 게 「여름빛 미소로 1,2,Jump!」랑 BiBi 첫 싱글 때였던 것 같네요.


- 확실히 그 때쯤부터 마키의 목소리가 9명 중에서 악센트가 된 것 같습니다. 마키 목소리가 들리면 곡이 찰카닥 맞아들어간다고나 할까요.


Pile 그렇죠. 「Wonderful Rush」에서도 그랬는데, "마키쨩은 음색으로 쭈욱"이라는 감이 있었네요.


- 그 중에서 Pile씨의 인상에 남은 곡을 고르자면 어떤 곡일까요?


Pile 잔뜩 있는데요...... TV 애니메이션 1기 제2화에서 나왔던 「START:DASH!!」일까요. CD로 나온 건 싱글보다도 좀 더 나중이었지만, 녹음은 그보다 훨씬 앞이었거든요. 어떤 의미론 무기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직한 창법이라서 그 때는 그 때 나름의 조금 다른 느낌의 마키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2012년, µ's에게 있어서 첫 라이브가 열린다고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셨나요?


Pile "...... 하는구나"였네요(웃음). 어렴풋이 "할지도 모르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당시엔 TV 애니메이션화도 확실하지 않았던 때이고, 전개도 CD랑 잡지 등 여러 갈래로 하다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이 올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를 보러 올까?"하는 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 그런데 실제론 1st 라이브부터 엄청 고조됐었지요.


Pile 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이 방송될 때에도 보시는 분들의 반응이 전해져왔지만, 라이브는 그 곳에서 직접 반향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역시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폭풍같이 달려온 시기는 최고의 "추억"으로


- 그 때부터 회장의 규모도 점점 커졌는데요, 라이브 중에서 Pile씨의 인상에 남은 장면이 있었나요?


Pile µ's의 원맨라이브에서도 물론 잔뜩 있는데요...... 실은 µ's가 무도관에 섰던 건 "리스아니! LIVE" 한 번뿐이었어요. 그 땐 신발이나 의상도 초창기 때 거에, 더군다나 밴드가 직접 연주해서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 그리고 극장판 공개 이후로 작품의 인기는 물론, 정말 다양한 곳에서 µ's 여러분의 활약을 볼 기회가 늘었습니다.


Pile 성난 파도 같았죠. M스테나 홍백처럼 다 함께 TV에도 많이 나갔고요. 덕분에 함께 행동할 일이 잔뜩 늘어서 파이널 때까지 추억이 많이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최고의 추억 만들기 같은 느낌이네요(웃음).


- 그렇군요. 팬미팅에서 전국을 돌기도 했고요.


Pile 여태까지 아껴뒀던 µ's의 매력을 모두에게 한꺼번에 보여주는 1년이라고도 여겨집니다. 다양한 곳에 파바박 나가서 스윽 일단락을 짓는, 폭풍 같은 기세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 돔 공연 때문에 더 바빠지거나 한 건 없었나요?


Pile 그렇네요. 하는 일도 엄청 많았고요. 특히 「우리들은 하나의 빛」 리허설로 꽃에 타려고 치바까지 가기도 했었고요.


- 엇, 단순히 그거 하나 타려고요?


Pile 네. 본 무대 스테이지가 워낙 크다보니 리허설하는 곳에선 무대장치가 들어가질 않아서 장치확인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돔에 임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함께 만들어낸 "다 함께 이루는 이야기"는 절대로 그 빛이 바래지 않는다


- 그렇게 파이널 라이브를 준비하던 때엔 파이널 싱글 「MOMENT RING」 레코딩 등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Pile 그랬죠. 처음 들었을 땐 랩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역시 µ's 다운 밝은 곡으로 끝을 맺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라이브 때까지 듣던 중에 「엄청 좋은 곡이잖아!」라고 점점 좋아하게 됐습니다. 라이브에서 불렀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각자 자신이 연기하는 멤버와 같은 포즈를 취하는 연출도 엄청 좋았고, µ's의 초창기에 안무를 붙여주신 분이 마지막 라이브도 담당해주신 것도 감개가 무량했고...... 그래서 전 그 곡의 안무를 상당히 좋아해요.


- 6년간을 µ's로서 달려온 지금 기분은 어떠신가요?


Pile 그러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른 멤버들도 그럴 것 같지만, 저희들 = µ's는 아니잖아요. "처음부터 µ's로서 데뷔해서, 노래하고 해산했습니다"라는 게 아니라서 "µ's로서 일단락을 잘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힘내야지!"라고 "하나의 큰 일이 끝났다"라는 마음이에요. µ's로서 선 스테이지에 혼자서 섰을 때의 느낌이 재밌더라고요. 가령 작년에 "아니사마"에 µ's로 출연한 다음날에 솔로로도 출연했는데요, "어젠 편하게 했는데...... 오늘은 긴장되네"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웃음). 그런 의미로도 µ's로서 자신과 평상시의 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마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Pile 그렇네요...... 처음부터 잘 풀린 건 아니었는데요, 최종적으론 마키쨩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다양한 경험도 시켜줬고,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느낌일까요.


- 그럼 마지막으로 독자분들, 그리고 µ's의 팬분들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Pile 요 6년간, 처음엔 관동근교에서 활동이 많았던 게 점점 더 많은 지역을 돌게 되고, 마침내 전세계에서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팬분들께 사랑받는 µ's의 일원으로서 있을 수 있었던 건 마키쨩을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이나 스태프분들 등 다양한 분들 덕분입니다. 그렇게 다 함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함께 이루는 이야기"는 절대로 그 빛이 바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러브라이브!』와 µ's를 쭉 사랑해주시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 부디 µ's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번역 : Na2Cr2O7

링크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unshine&no=998223


09. 토쿠이 소라


‘작품은 언제까지나 남으니까 영원히 “러브라이브! 팬”을 늘려가고 싶습니다.


객석이 그야말로 펜라이트의 바다같이 아름다운 하나의 덩어리 같았습니다


-”μ’s Final LoveLive”이 끝나고 반년이 지났습니다만, 현재의 기분은?


토쿠이 소라 겨우 반년 전이지만 옛날 일인것처럼 느낍니다. 파이널은 태풍처럼 지나가서, 발매된 라이브 영상을 보고 ‘이거 했었구나-’라고 떠올리기도 해서. (웃음) 다른 일로 매일 분주했기 때문에, 어느새 반년이 지나가버렸습니다.


-도쿄돔에서 2일간 공연이라고 처음 들었을 때의 인상은?


토쿠이 지금까지도 큰 곳에서 해왔었지만, 규모가 달라서...그렇게 큰 곳에서 어떤 라이브를 하는걸까,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집대성의 라이브이기 때문에, 어쨌든 아쉽지 않은 스테이지를 하고 싶은 기분은 엄청 있었습니다.


-사전 준비나 리허설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토쿠이 리허설의 시기는 팬미팅부터 계속 이어져, 멤버 전원으로 있는게 자연스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엄청 편하고 좋은 부활동의 멤버와 방과후에 모여있는듯한,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모이는 중에도 추억을 남겨두고 싶다고 생각해서 모두의 사진을 잔뜩 찍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도쿄돔을 향해서 긴장감도 있지 않았나요?


토쿠이 물론 긴장도 있었지만, 팬 여러분이 기다려주고 있기 때문에, 어쨌든 전력으로 전하고 싶다는 방향으로 멤버 전원의 마음이 향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휴식시간은 화목하고 한편으로는 리허설은 집중하며 가서, 엄청나게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파이널 라이브이니까 전력으로 하지 않으면이라는 마음으로 두근거렸습니다.


-라이브 당일, 스테이지에 서서 많은 관객들을 보았을 때는 어떠셨나요?


토쿠이 처음에는 회장이 너무 넓어서 팬 여러분들이라기 보다는 아름다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여서...펜라이트의 바다라던가 우주라고 자주 말하지만, 정말로 그런 느낌. 하지만 시작하니 모두의 얼굴이 잘 보여서, 팬 분들의 한사람 한사람에게 정말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2일간의 라이브를 통해서 인상에 남은 장면은?


토쿠이 직전의 리허설에서 처음으로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보았는데, 인트로의 하트의 바톤이 차례대로 전해지는 장면에서 멤버 모두가 그렁그렁해져서, 첫번째 곡은 울면서 춤을 췄습니다. ‘본방에 처음 봤으면 큰일이었겠네’라고 말하면서. (웃음)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로 첫날에 임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집대성으로서 퍼포먼스도 레벨이 높아서.


토쿠이 어쨌든 즐겁게 콜을 할 수 있도록, 간주 등도 스탭 분과 상담하면서 만들어서, 팬 여러분과 소리를 내는 순간을 엄청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소리가 예상 이상으로 크고, 텐션은 놀랄 정도라서 동시에 엄청 기분이 좋았었네요.


-긴 라이브였는데, 끝이 다가올수록 쓸쓸함도 있었겠네요.


토쿠이 2일차는 한 곡, 한 곡 할때마다 ‘더 이상 이 곡을 춤추는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해서, 한 곡, 한 곡을 졸업식의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래를 끝내기까지는 울지 않겠다고 정했었지만, 라스트에선 전원이 울어버려서. 관객도 물론, 멤버들 사이에도 서로 ‘고마워’를 전하고 싶은 기분이 가득해서, 마지막에 모두가 모여서 원진을 만들 수 있던게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브 직후, 6년간의 활동을 달려왔을 때의 기분은?


토쿠이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아들이고, 한편으론 여러가지 것들이 한순간에 방출되는 느낌입니다. 모두와 함께 있던 시간이 엄청 길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말로 끝난걸까라는 느낌이 듭니다.


야자와 니코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TV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개시 시점에서의 활동을 돌아보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맨처음으로 야자와 니코와 만났을 때의 인상은?


토쿠이 겉보기가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대사에 ‘닛코니코니-’가 들어가있어서, 신기한 걸 말하는 아이구나라고. (웃음) 정말로 이렇게 오래 말하는 대사가 될 줄은 생각못해서.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했을 때는 니코를 어떻게 연기할건지 생각하셨나요?


토쿠이 「러브라이브!」는 성우로서 2, 3번째 정도의 출연작품이었기 때문에, 상세한 연기 플랜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초기의 일러스트 등 표정은 어른스럽지만, 안에 있는 것은 ‘나는 귀여워’같은, 소극적인거 같지도 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제 안에서 가장 귀여움, 가장 귀여운 목소리를 내보자 같은 기세로 연기했습니다.


-초기의 곡의 레코딩은 어떠셨습니까?


토쿠이 ‘Snow Halation’ 쯤이 기억에 남아있는데...레코딩에 전혀 익숙치 않았어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헤드폰부터 자신의 소리가 돌아와서 ‘노래방이랑은 다르구나’라고. (웃음) 어떻게 노래하면 좋을까, 지금 어떤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스탭의 도움을 받아 진행해갔습니다. 3rd 싱글 쯤에는 어쩄든 힘낼 수 밖에 없어라는 기분이 앞서 나가고 있던걸로 생각합니다.


-고전하는 와중에 뭔가 얻을 수 있었던 곡은?


토쿠이 ‘꼬옥 “Love”로 접근중!(もぎゅっと“love”で接近中!)’ 쯤부터 드라마 CD의 니코쨩의 파트가 늘었고, 서서히 성격이나 특징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노래하는 법도 마음을 담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 4th 때네요.


-서서히 자라 온 니코의 성격이나 특징이 TV 애니메이션에서 한순간에 개화한 것인가요?


토쿠이 어떤 여자아이인지 확립되어 엄청 마음이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연기할지를 생각하기보다도 니코쨩을 강림시켜 소리를 내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웃음)


-거기까지 통했다, 군요. TV 애니메이션 1기의 니코는 「러브라이브!」의 팝 아이콘이랄까 처음 작품을 접하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계기가 되는 여자아이였습니다.


토쿠이 연기하고 있어도 즐거웠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기 전에 감독에게 ‘드디어 “닛코니코니-”에 움직임이 붙습니다’라고 들었을 때, 엄청 감동했습니다. (웃음) TV 애니메이션 이전에는 포즈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름색 미소로 1,2, Jump!(夏色えがおで1,2,Jump!)’의 자켓에 있는 포즈가 좋을꺼 같아요’ 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네요.


-밝은 아이인 한편, TV 애니메이션에서는 멤버를 통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토쿠이 지금까지 혼자서 아이돌 연구부를 하고 있었는데, 동료와 함께 라이브나 댄스의 연습을 한다는 것. 저도 친구가 없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싱크로하는 것처럼 감정을 많이 쏟으며 연기했습니다.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느낌입니다.


애니메이션과 현실이 크로스한 팬과 μ’s의 인기


-극중과 똑같이 현실에서도 μ’s가 인기를 모아갔습니다. 2012년의 요코하마BLITZ에서 첫 라이브는 어떠셨습니까?


토쿠이 당시는 PV의 애니메이션을 재현하는 듯한 퍼포먼스로 팬분이 어떤 기분으로 이걸 보러 와주는 걸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일에 모두의 환성을 듣고, 함께 즐겨주시는 분들이 제대로 있다는걸 깨달아서, 힘낼 수 있었습니다.


-”아니사마”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환성이 대단했었습니다.


토쿠이 아니사마에서 흘러나온 ‘여름색(夏色)’의 PV는 귀엽고 댄스도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걸 계기로 한사람이라도 많은 분들이 μ’s에 흥미를 가져주길 기도하며 스테이지에 섰습니다.


-이어서 2013년 6월의 퍼시픽코 요코하마에서는 TV 애니메이션 2기, 게임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공연의 결정이 발표되어 한순간에 달아올랐던 느낌이 있었습니다.


토쿠이 ‘니코린파나’의 라디오에서도 ‘어쨌든 러브라이브!의 팬을 늘리고 싶어’라고, 멤버 3인과 말버릇처럼 말했었는데, 설마 수년으로 이렇게 많이 늘었을 줄은, 라고 놀랬습니다. 이듬해의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도 아니사마에서 유명한 아티스트 분이 모였던 장소인데, 저희들이 원맨으로 사람이 와주어 성공할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큰 회장에서는 스테이지에서의 서는 방법도 바뀌었나요?


토쿠이 그렇네요. 좀 더 큰 곳이 되니까 좀 더 모두를 기쁘게 해주싶어, 좀 더 즐겁게 해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많이 있어서. 새로운 팬분에 대해서도 물론이지만, 초기부터 팬에게도 ‘μ’s가 먼 존재가 되어버렸다’ 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고 싶어, 모두에게 닿고 싶어 등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멤버 전원이 여러가지로 이야기 했지만, 사이타마 이후는 그 이상으로 연출에 대한 것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은 극장판도 공개되고, 팬미팅도 가고, 게다가 ‘뮤직 스테이션’이나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등 많은 주목을 받은 해였습니다.


토쿠이 자신이 가수로서 TV에 나온다니 정말로 상상할 수 없어서, 정말로 애니메이션 안의 이야기 같구나라고 놀랬습니다. 저희들이 그런 노래 방송에 나온다니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하지만, 팬분들에게는 ‘μ’s는 오리콘 상위에도 즐어가는 아이돌인데도 왜 나오지 않는거지’라는 소리도 있던거 같아서. (웃음) 팬분들이 애니메이션과 현실을 겹쳐 응원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그 경계가 없어질 정도의 것이 일어난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런 인기가 계속되는 와중에 도쿄돔 공연을 맞이했습니다.


토쿠이 파이널 라이브의 전에 홍백의 연습이 있었고, 취재나 노래의 수록도 잔뜩 있어서, 그 시기는 매일 분주했습니다.


앞으로도 팬을 늘려가고 싶습니다


-파이널을 끝낸 후의 반향은 어떠셨나요?


토쿠이 그 후에는 다른 일을 계속하는 매일이었지만, 물론 μ’s의 이야기를 하는 기회도 있었고, 팬분들로부터도 ‘파이널 라이브 좋았습니다’라고 지금까지 듣고 있습니다. 정말로 최후까지 봐주셨구나라고, 기뻤습니다.


-멤버와 다른 현장에서 만날 때는 어떤 상태인가요?


토쿠이 지금까지는 ‘니코린파나’의 방송에서도 정기적으로 모두와 만나고 있었고, ‘아, 안녕’라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에서는 현장에서 만나면 ‘앗, 있다!’같은 텐션이 됩니다. (웃음)


-6년간을 같이 한 멤버의 인연의 깊음이랄까.


토쿠이 저는 사람 사귀는게 어색한게 있었고, 동료같은 의식은 사실은 지금까지 연이 없어서. 동료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도 μ’s의 모두와 만나게 된 것이 계기입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있을 곳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저의 인생에서 엄청 큰 일이고, 동료를 위해서 힘내볼까, 모두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길게 사귀어온 야자와 니코에 대해서 뭔가 말을 건다고 하면?


토쿠이 ‘오늘도 귀엽네!’라던가네요. (웃음) ‘영원히 귀여웠으면 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도 계속 변하지 않아라던가. ‘그리워’라던가 ‘간만이야’라고 하는 것보다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계속 곁에 있는 감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나 팬분들을 위해 한마디 메세지를.


토쿠이 응원해주시고 있는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 자신도, μ’s는 정말로 즐겁고, 많이 좋은 점이 있고, 노래도 매력적이고, 정말로 계속계속 언제까지나 빛나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형태가 바뀌어도 응원을 계속해주셨으면 하고, 오히려 앞으로도 μ’s의 팬을 좀 더 좀 더 늘려가고 싶다고 생각하네요. 앞으로 애니메이션에 열중하는 사람에게도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좋아해주었으면 합니다. 영원히 “러브라이브! 팬”을 늘려나가고 싶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도 μ’s의 팬을 좀 더 좀 더 늘려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05. 이이다 리호


"슬퍼하고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개운한 기분이었습니다. 전부 해내서 그런 기분이 든 게 아니었을까요?


- "µ's Final LoveLive!"부터 약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이다 리호 이제 고작 반년 됐는데 되게 예전 일처럼 느껴지네요. 벌써 1, 2년은 지난 일처럼 느껴져요.


- 여태까지 활동을 돌아보며 노래를 들어보고 라이브 영상을 다시 본 적이 있나요?


이이다 최근에 µ's 곡을 듣지 않고 있었네요. 듣지 않는 건지 듣지 못 한 건진 모르겠지만, 플레이리스트에 손이 안 가서요. 듣기만 한다면 분명 멋진 추억이 다시 떠오를 테지만, 일단 보물상자에 소중히 넣어둔 걸 간단히 열어버리는 건 조금 아니다 싶은 마음이 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도쿄돔에서 라이브를 한다고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이이다 그 땐 "짱이다!"라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이전부터 머리 한편에서 "언젠간 µ's는 그 무대에 서겠지"하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있었어요. 실은 처음부터 갈 기세로 노력했던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 한편으론 "아, 드디어 왔구나"라는 감도 있었습니다(웃음).


- 언젠간 그만큼 큰 회장에서 하겠지, 라는 건가요?


이이다 그렇다기보단 도쿄돔에서 인연을 느꼈어요. 「µ's New Year LoveLive! 2013」에서 TOKYO DOME CITY HALL에 섰을 때, 바로 옆에 있는 도쿄돔을 보며 문득 "언젠가 여기서 하겠지"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방송에서 "앞으로의 목표는?"라고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았을 때, 생방송 끝나기 5초 전에 "노리자, 돔!"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 적이 있어요. 그 뒤로 극장판이 나왔고, 실제로 돔에서 라이브를 하게 되고...... 신기한 인연을 느꼈다고 할까요, 속으로 모종의 예감을 한 거네요.


- 사상 최대의 회장이자 장기전 라이브였습니다만, 리허설 상황은 어땠나요?


이이다 떠올려보자니 그립네요. 라이브에 대비한 체력 기르기를 겸하며 추운 날에도 스튜디오에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해보고, 집에선 스트레칭이나 근력 트레이닝도 했었네요. 그 때까진 그 정도로 하진 않았었지만, 전부 해내고 싶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리허설에 시간을 투자하려고 했습니다.


- 총연습 같은 일으로 돔 무대에 선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일단 넓고, 천장도 엄청 높고,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엄청났습니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는 세로로 길었는데, 돔은 둥그런 느낌이었네요.


- 아무래도 당일을 맞았을 땐 긴장도 상당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이다 바로 직전까지도 별로 긴장하진 않았습니다. 든든한 제 편이 8명이나 있는 데다가, 기대감에 부풀었거든요. 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무대에 올라가려고 하니까 손이 엄청 떨렸어요. "아, 나 긴장하는구나"라고 그 때 처음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른지 5초만에 금방 괜찮아졌어요.


도쿄돔에서 신기한 인연을 느꼈다고 할까요, 속으로 예감 같은 걸 했습니다.


- 당일 무대에 섰을 때 광경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엄청났습니다. 빛에 둘러쌓여있는 것 같았어요. 와주신 분들의 환성에 땅이 흔들리는 게 몸으로 느껴졌고요. 귀가 아니라 뼈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처럼 몸으로 목소리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웃음).


- 처음부터 엄청난 환성이었군요. 아무래도 멤버들의 텐션도 올라가던가요?


이이다 물론 즐거운 건 맥스로 최고조에 달했지만, 의외로 퍼포먼스 자체는 냉정하게 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허둥대다가 주변에 신경을 못 쓰게 되는 일도 없이, 좋은 의미로서 냉정함을 지키며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카메라를 보는 표정이나 모습도 착실히 의식해가며 미더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이다 리허설을 그만큼이나 했던 것도 있었고, 여태까지와는 침착하게 있는 것부터가 달랐거든요. 단단히 벼르고 있던 탓에 하나씩 잘 소화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고조되는 한편, 이게 마지막이라는 섭섭함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2일차 스테이지는 어떠셨나요?


이이다 2일차 아침엔 기분 좋은 근육통에 눈을 떴습니다. 뭔가 특별한 것도 없이 정말 이게 마지막인가 싶을 정도였고, 다른 멤버들도 엄청나게 평소처럼이었습니다. 그래도 스테이지의 마지막 직전에 멤버 전원이 꽃 안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을 때가 있었어요. 아무도 볼 수 없이 9명만의 공간에서, 다 같이 눈빛을 주고받곤 원형으로 서서 손을 맞잡았을 때 처음으로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려나요. 그 순간은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서 남아있습니다.


- 마지막 「우리들은 하나의 빛」이 끝나고 스테이지를 뒤로 했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퇴장 중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며 관객 한명한명의 얼굴이 갑자기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즐거운 듯이 웃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시는 분도, 엄청 울고 계신 분들도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퇴장한 뒤에도 모두가 노래해주는 게 들려서 애정을 느꼈습니다. 한순간 다시 한 번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스테이지를 뒤로 했습니다.


- 스테이지를 마친 다음날엔 어떠셨나요?


이이다 슬프고 공허할 것 같았는데, 무척이나 기분이 좋고 개운한 기분이었습니다. 모두 해낼 수 있었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린쨩과 µ's의 성장을 고민하며 좇아가는 6년간


- 다시 6년간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무렵 활동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있었나요?


이이다 처음 레코딩했을 때 일은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Pile쨩이랑 시카쨩까지 3명이 함께 있었는데요, 그 때가 첫 대면이라서 서로 말 한 마디를 안 하고 있었어요(웃음).


- 멤버들과 몇 번씩 레코딩을 같이 하며 서서히 알아갔다는 거군요.


이이다 그렇죠. 그 후의 레코딩은 9명의 나레이션 파트가 들어가는 곡도 몇 개 있다보니, 대사 타이밍을 재려고 첫 대사를 넣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 대사까지 혼자서 했어야 됐습니다. 「Mermaid festa vol.1」이나 「카구야의 성에서 춤추고 싶어」였던가요? 제가 첫 대사를 맡게 돼서 다른 멤버들의 대사를 흉내내자 "완전 똑같아!"라더라고요(웃음). 멤버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다보니 그게 인상적인 에피소드였네요.


- 2012년 요코하마 BLITZ의 첫 라이브에선 어떤 심정으로 임하셨나요? 초창기 라이브는 애니메이션 PV와 호흡을 맞춰 퍼포먼스를 했었죠.


이이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댄스를 연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까지도 애니메이션와 똑같은 안무를 외워 9명이서 추는 스테이지는 처음이다보니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그저 그 무렵엔 린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지금도 초창기 CD, DVD는 부끄러워서 틀질 못 해요. 댄스 표현력도 그렇습니다만, 린쨩과 싱크로하는 걸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초창기엔 린쨩과 어딘지 거리감이 있었네요. 거기 있던 건 아직 이이다 리호인 거죠. 린쨩의 역할을 지고 있지 않은 걸 보기 부끄럽다고 할까요.......


- 린쨩은 극중에서 다른 사람을 지지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이 두드러졌지요.


이이다 의외로 착실한 애라 귀여웠고, "좀 더 귀엽게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부모 같은 심정으로 보기도 했어요. 그랬기에 좀 더 린쨩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쳐주길 계속 바랐고, 어딘지 린쨩이라는 여자애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 한 것 같아서 스스로도 여러가지로 고민하며 조금씩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 작중 스토리처럼 자신을 어떻게 내보일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거군요. 그 중에서도 린쨩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계기는 뭐였나요?


이이다 꽤 시간이 지나서이긴 한데, 「Love wing bell」 때였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의 영상도 멋졌고, 스태프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연기했습니다.


- TV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는 한편, 라이브에서도 주목받으며 점점 회장이 커졌는데요, 그 과정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 일을 보는 것 같을 정도로 실감이 들지 않았어요. "헤에, 이 사람들 그렇게 대단하구나. 이 9명 확실히 귀엽네"라는 느낌이었습니다(웃음).


지금도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이 있기에 린쨩이 멀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 그녀들이 스타덤을 뛰어올라가는 걸 관조하는 느낌이었다는 거군요.


이이다 저희가 나오는 건데도 반쯤은 다른 사람 일처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왠지 엄청난 일이 됐네" 같은 말도 몇 번씩 했고요. TV에 출연했을 때도 집에 돌아가서 체크해보니 웬 낯선 사람이 춤추고 있는 듯한, 신기한 감각이었습니다. 철저하게 그녀들이 이런 의상을 입고 있으니 우리들도 이런 의상을 입습니다, 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TV나 잡지를 통해 보는 µ's가 점점 귀여워지고, 그걸 저희아 좇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 2015년은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극장판, 팬미팅 투어, TV 출연 등, 정말 다사다난했는데요, 좇아가는 것조차 힘들진 않던가요?


이이다 「M스테」부터 홍백까지 텀도 짧았고, 파이널 라이브 리허설도 있는 와중에 다들 무작정 하고 있었네요. 일들이 엄청난 기대로 눈앞을 홱홱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목표하는 곳으로 이끌어준 『러브라이브!』라는 작품


- µ's로서 『러브라이브!』와 함께 날려온 요 6년간은 이이다씨에게 있어서 어떤 6년이었나요?


이이다 인생이 변한 6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가 시작했던 당시에 제가 18살이었고, 대학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의 기간이 이 6년에 포함돼서 실은 TV 애니메이션 1기가 끝난 직후에 평범하게 취업활동을 하고 있었어요(웃음). 도중에 취직했더라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역시 이 일을 쭉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일들이 좋게좋게 거듭되고, 결과로서 제가 바라던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기간을 『러브라이브!』와 지냈네요.


- 멤버들과도 서로 자극을 해주는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이다 학생 시절의 이 시기에 함께 시간을 지냈다는 건 정말 중요하니까요. 멤버들의 구성요소를 전부 빨아들일 기세로 동료들로부터 다양한 걸 흡수한 것 같습니다.


- 린쨩에게 한마디 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떤 말을 해주겠습니까?


이이다 µ's 활동은 일단락 된 지금도 팬들 모두 린쨩을 엄청 사랑해주시기에 린쨩이 멀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여태까지 린쨩을 비롯한 µ's가 얼어온 길을, 앞으로 제 개인이 좇아가게 될 것 같네요. 활동하는 와중에 "함께 나아가자"라고 말한 동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지금은 프로필란에 "목표로 삼은 사람"으로 써놔도 될 정도로(웃음), "린쨩정도는 되어보고 싶다"라는 목표 같은 존재로 옮겨갔네요. 린쨩이 "따라와"라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라, 혹시 말을 건넨다면 "갈게 린쨩, 지금 그리로 갈 테니 기다려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이이다 이 인터뷰를 통해 다시 여러분과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예전에 나온 애니메이션으로 아직까지도 성지순례를 하시는 팬분들이 잔뜩 몰려들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러브라이브!』나 µ's도 20년 후, 30년 후까지 여러분의 안에 소중하게 남겨주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시간이 지나고서 추억 순례 투어 같은 것도 해보고 싶네요(웃음). 10년 후에도 쭉 µ's의 이이다 리호로서, 그리고 호시조라 린쨩의 이이다 리호로서 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문득 떠올려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번역 : Na2Cr2O7

링크 : http://bbs.ruliweb.com/game/81035/board/read/9431069


03. 미모리 스즈코


'꿈을 말로 해서 계속해서 노력하면, 손이 닿는 곳까지 다가갈 수 있다고 실감한 6주년이었습니다.'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야! 정진정명 동료다!


-’μ’s Final LoveLive!’부터 반년, 그 동안 μ’s의 곡을 접한적 있으신가요?


미모리 스즈코 거의 최근까지 μ’s의 곡을 듣지 않았어요. 여러 감정이 자신의 안에서 어지럽게 섞일꺼 같아서 그다지 들을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라이브 BD의 영상 체크도 좀처럼 볼 수 업ㅇ서서, 팩키지로 나온 것을 열지 않고 보관해두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여름에 한 자신의 투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간만에 μ’s의 노래를 듣고 싶었어요. 투어의 첫날이 삿포로여서,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 때에 팬미팅 왔었지, 즐거웠어’라고 생각하니 엄청 그리워져서. 간만에 들으니까 역시 좋은 곡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끝난 직후에는 정리를 할 수 없었던거군요.


미모리 감정의 정리는 못했지만, 그래도 날들은 지나가고,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투어도 시작하고, ‘어, 어, 어쩌지!’ 라고.


-멤버와 만난 일도 없었나요?


미모리 멤버는 자신의 라디오나 라이브에 와주어서 가끔 만나곤했어요. TV 애니메이션에서 2학년이 수학여행으로 오키나와에 갔으니까, 우리들도 가자고해서 2학년조로 오키나와 요리집으로 먹으러 갔다던가. (웃음) 의외로 저, 가장 모두랑 만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다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함께 있다는 느낌이 꽤 드네요.


-다시 한 번 파이널 라이브를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최후의 대무대, 긴장하지 않으셨나요?


미모리 줄곧 재미있었어요. 제가 작은 회장 쪽이 긴장해버리는 타입이라, 크면 클수록 긴장이 분산됩니다. 모두도 아마 라이브를 향해서의 반년간은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해야할까, 전개가 빨라서 마비되어 있던거 같네요. (웃음) 홍백 때도 하루 종일 즐거워서, 긴장은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인상이 남았던 파트는?


미모리 많이 여러가지가 있지만서도…’우리들은 하나의 빛(僕たちはひとつの光)’에서 꽃 안에서 스탠바이하고 있을 때, 모두가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야모니(イヤモニ, 모니터링 이어폰)하고 있어서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힘내자라는 기분이라. 그 때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진정명(正眞正銘), 거짓 없는 동료들이구나 라고. 평소의 자신이라면 부끄럽다고 생각할 것도, 그 때는 감정적인 기분이 되어서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2일차의 최후의 순간은 어떠셨나요?


미모리 그걸로 저의 청춘이 막을 내려가는구나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청춘, 고마워’같은. 막이 천천히 슥하고 내려가는 동안 ‘모두가 보이지 않는구나…’라고 꽤 뭉클해졌습니다.


-막이 내려간 종연 직후의 상태는 어떤 분위기였나요?


미모리 모두가 원이 되어, 엄청 울어버렸어요. 캐스트 뿐만 아니라, 스탭 모두가 모여서 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서도 메이킹 영상을 찍어뒀으면 좋은 그림이 찍혔을텐데, 아무도 그럴참이 아니여서. (웃음) 객석부터 모두가 ‘μ’s! μ’s!’라고 콜해주셔서, 누군가가 ‘모두가 부르고 있어. 나가보면 안될까나’라고 말해서, 저도 ‘안될꺼 같아!’라고 말하면서 울어버렸습니다.


캐스트 똘똘 뭉쳐 “스포츠 근성”으로 해온 6년간


-되돌아보아 프로젝트가 시작 했을 때, 우미의 인상은?


미모리 비쥬얼을 보고, 우미쨩이 엄청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때까지 연기한 캐릭터와 비하면, 머리의 색도 어른스럽고, 성격도 야마토 나데시코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역으로 엄청 어려움을 느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우미쨩과 사이좋게 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바로 잡을 순 없었습니다.


-최초로 연기한 것은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僕らのLIVE、君とのLIFE)’의 레코딩이었나요?


미모리 그렇네요. 노래를 가장 먼저 수록해서, 그 후 보이스드라마를 녹음했습니다. 그저 맨처음일 때는 아직 프로젝트 자체도 어떤 것이 되어가는지 알 수 없어서, 수수께끼였습니다. 드라마CD가 시작하고나서 우미쨩의 재밌는 부분, 실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의외로 장난기있는 부분도 틈이 보여와서 ‘우미쨩을 연기하는게 재밌어졌어’라고 생각했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 제1화의 아후레코(애프터 레코딩)의 추억은?


미모리 제1화는 엄청 시간이 걸려서, 밤 늦게까지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지만, 「러브라이브!」에서는 첫 아후레코였던 분도 있으셨고, 저도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꽤 힘들었던 인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난죠씨가 자신의 장면을 확실히 녹음을 끝내고도 최후까지 남아주어서, 9명 전원이서 녹음했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μ’s는 9명이 하나였었네요. 최초에 ‘이 애니메이션은 어떤 의미 스포츠 근성이야’라고 설명을 들었었데, 그 정신을 우리들도 받아들여서 부활동같은 스타일로 수록했었네요.


-그렇게 길러진 멤버들과의 인연도 있고, 또 아후레코를 거쳐서 우미와의 깊은 관계가 되었던걸로 생각합니다.


미모리 그렇네요. 제가 잠깐 말했던 말이 우미쨩의 성격에 반영되어가는 일체감도 생겨나서. 반대로 저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미쨩이 매력적으로 보일까나라던가, 귀여울까나라던가, 그런 것을 생각해왔었네요.


-여태까지의 곡중에서 인상에 남는 곡은 있으신가요?


미모리 ‘Wonderful Rush’는 힘들었습니다. μ’s는 자신이 부르는 파트 이외에도 한번 풀로 녹음하기 떄문에, 어쨌든 파트가 많아서. 저는 보통 착착 레코딩할 수 있는 타입이지만, ‘Wonderful Rush’ 때는 일번 타자로 몇 시간이 경과해도 끝나지 않고, 지쳐버려서. 당시는 랩(Rap) 같은 것에 도전한 적이 없었고, 텐션이 높은 랩같은건 냉정한 우미쨩이랑 연결지을 수 없어서 엄청 어려웠습니다.


-우미쨩답게 랩하는 것은 확실히 어렵죠.


미모리 멤버 각자각자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미쨩에게는 랩이 들어간 노래는 엄청 익숙하지 않아서. ‘Super LOVE=Super LIVE!’도 고생했었네요. 그럴 때는 대체적으로 니코쨩이 대활약해서, ‘활발한 계열의 아이는 좋겠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웃음)


-노래뿐만 아니라, 2012년의 1st 라이브에서 댄스를 하게 되었을 때는 어떠셨나요?


미모리 저는 ‘좋아!’라고 느꼈었네요. 계속 댄스를 하고 있어서, 드디어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순간이 온게 기뻐서, 엄청 들뜨고 두근두근 했어요. 댄서 분이 춤추는 영상을 사전에 받았기 때문에, 그걸 보면서 안무를 외워서. 첫 레슨에서 선생님에게 ‘확실하네요’라고 칭찬받은 것이 엄청 기뻤습니다. 칭찬받으면 성장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텐션 높아져서. (웃음)


-그 라이브는 그 후에 아니사마로 흘러가는 것도 포함해, 큰 전환기였네요.


미모리 1st 라이브는 관객이 모여주실지 어떨지 알 수 없어서 불안했었지만, 저희들이 어두운 곳에서 살짝살짝 포지션을 이루고 있을 때에 엄청난 환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걸로 놀래서 ‘우리들을 원하고 있어!’라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에는 꽤 용기를 가질 수 있던 해였네요. 그때까지는 어떻게 될까나, 같은 것이 마음 한 가운데에 있었어요.


-그 외에 지금까지 인상에 남았던 라이브가 있으신가요?


미모리 3rd 라이브 때의 2학년 3명이서 ‘START:DASH!!’를 부른 것이 고민했던 것이 많습니다. TV 애니메이션과 같은 의상을 입고, 노래에 이어지는 조금의 연기를 넣기도 했었는데, 그 이후로 3명이서 한적이 없네요.


-그 후에는 확고부동한 존재가 되어서...2015년부터 돔에 이르기까지는 엄청 위세가 대단했었어요.


미모리 2015년에는 μ’s YEAR였었네요. 뭐랄까 믿겨지지 않은 기분이라, 도쿄돔에서 정말로 할 수 있게 된거라던가, 정말로 홍백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라던가, 작년의 여름 쯤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어쨌든 무작정 발버둥치며 2015년이 끝났는데, 몇년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러브라이브!」의 추억이라면 2015년이 팟하고 떠오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농축된 해입니다.


-6년간을 달려나온 지금, 미모리 씨에게 있어서 μ’s란 어떤 존재입니까?


미모리 청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꿈’이라는 단어를 현실의 것으로 해주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던 것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힘으로 문뜩 떠올랐다고 해야할까, 그런 주변의 힘이란 대단하구나라고.


-꿈은 이루어진다, 의 설득력이군요.


미모리 아니 정말로!  멋진 인생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은 어른 9명과 평범했던 우미에 향해


-새삼스럽지만 멤버 8명에 대해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미모리 μ’s의 멤버는 저를 포함해, 엄청 운이 좋은 9명이라고 생각하네요. 모두 운이 좋은  사람으로 있어주어서 고마워라고. 물론 노력도 했기 때문에, 열중한 노력이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운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공은 할 수 없지 않았을까라고.


-이 9명이 아니면 안된다는거군요.


미모리 모두 퓨어하고, 꿈에 향해서 올곧다고 해야할까, 완벽주의자가 많네요. 저도 그렇지만 어느정도 어른이고, 각각 좌절도 경험도 해왔습니다. 인간적인 점이라면 비교적 모두가 너무 간섭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들 같은 질투라던가 따돌림도 없었고, 개방적인 좋은 거리감으로 좋은 어른의 사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미쨩에게 대해서 지금 한마디 한다면?


미모리 최초는 의외로 수수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설마 여기까지 햇빛을 받게 되어(알려지게) 되어 개화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사람을 보는 눈이 없지 않았을까라고도. (웃음)


-여기까지 바뀐 것은 미모리 씨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모리 그렇네요. 제가 좀 더 우미쨩같은 인간이었으면, 계속 심플한 여자아이가 되어있었을지도 몰라요. 돌아보면 애드립부터 우미쨩이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Wonderful Rush’에서 우미쨩이 싸움에 진 무사의 영혼이 된다는 보이스 드라마가 있는데, 그 때 수록에서는 꽤 자유롭게 해버렸었네요. 거기서부터 조금은 익살스러운 노선이 되어, 얼굴장난(顔芸)이라던가도 절대 저의 니코나마의 영향이라고. (웃음) 제가 바로 개그를 치고 싶어지는 성격이니까 이렇게 되버린거라면, ‘만나서 다행이네, 우미쨩. 나에게 감사해도 좋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미모리 씨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거네요. (웃음)


미모리 엄청나게 거만하네요. (웃음) 저도 우미쨩과 만나서, 조용하고 쿨한 연기 등, 성우로서 공부가 된 부분도 잔뜩 있었기 때문에, 서로 WIN-WIN하는 관계를 쌓은게 아닐까나, 라고.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메세지를 부탁드립니다.


미모리 저 자신, μ’s와 만나게 되어 성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확 바뀌었습니다. 아주 큰 꿈은 이뤄지지 않는걸까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부분도 있지만, 꿈을 말로 해서 노력한다면, 의외로 손이 닿는 곳까지 다가갈 수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는 6년간이었습니다. 응원해준 여러분에게 있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된다면 기쁩니다. 저도 μ’s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 적어졌지만, 작품은 그 사람이 봤을 때가 살아있을 때이니까, 자신이 없을 때같은 경우에 다시 보아주셨으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은 몇년이 지나도 좋은 작품이니까 이 앞으로도 계속 봐주셨으면 하고, ‘저희들에 대해서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웃음) 가끔은 기억해주신다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던 것이,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힘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03. 우치다 아야


"힘들 때나 벽에 부딪혔을 때 떠올려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토리다움"을 추구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 "µ's Final LoveLive!" 때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여태까지의 6년을 돌아볼 타이밍이 있었나요?


우치다 아야 벌써 반년이나 지났네요....... 파이널 라이브 BD를 발매날 조금 전에 받아봤는데요, 도착하고 바로 틀어볼 용기가 나질 않아서 2~3일은 그대로 놔뒀어요. 발매날 전에 보긴 봤지만, 관객 입장에서 보고 받아들여야 된다는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긴 라이브였던 건 아니까 따뜻한 마실거리도 준비하고 "느긋하게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몸을 앞으로 기울이게 되고, 마실 걸 마실 틈도 없이 순간순간마다 여기저기로 눈이 가다보니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도 아까울 정도였어요(웃음).


- 다시 보게 되니 어떠셨나요?


우치다 제가 찍히지 않는 부분에선 "이 때 여기 가사 실수한 얘가 너무 귀여워서 눈물이 난다!"라던가, 거의 한 명의 시청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 볼 땐 왠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여긴 깔끔하게 잘 됐네"라던가, "멀리서 찍은 뒷모습은 코토리쨩처럼 보이네!"라던가, 꽤 자세하게 체크했는데요, 저의 다양한 모습이 나와서 기쁘다고 할까요...... 복잡한 심정이었네요. "저번엔 솔직하게 볼 수 없었으니까 가볍게 보자"라던가, "이 곡은 다시 한 번 보자"라던가, 이래저래 몇 번씩 돌려봤네요.


- 파이널 라이브까지 준비기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우치다 솔직히 『러브라이브!』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니 어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 곡은 마지막 곡이구나"하고 리허설 도중에도 묘하게 숙연해지기도 하고요. 팬분들께도 물론 그렇지만, 제게 있어서도 마지막이니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여태까지 이상으로 코토리쨩다운 움직음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다 같이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있다 보니 그 안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고, 저 스스로 최고의 추억으로 남을 라이브로 만들고 싶었어요. 여러가지가 다다닷 달려들어서 "우와앗!"하다가 끝나버리는 건 싫겠지 싶어서요. 돔에서 처음 안무를 하게 된 곡도 있다보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평소보다 제 자신의 의견을 많이 말하게 됐습니다.


- 파이널 라이브에서 인상에 남은 씬은 있었나요?


우치다 "우리들은 하나의 빛"이 시작하기 전에 9명끼리만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객석에 있는 모두에겐 보이지 않는 곳,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꽃에 쌓인 채로 이동하던 멤버들만의 공간이 가장 리얼하게 느껴져서 인상에 남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선 그려지지 않은 무대 뒤입니다만 "작중 µ's도 이런 느낌이었을까"라고 생각하니 그 때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울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지만 결국 마지막엔 울어버렸네요. 그래도 스스로도 멋진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멤버들이 정말 좋은 표정으로 울고 있는 걸 보고 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지구나 싶어요. 미모링은 평소에 그리 울지 않는데, 코멘트를 하고 있을 때 슥하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 때 제가 우연히 그 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눈물이 너무 예쁘게 흘러서 "와아!"했어요. 말로 다 할 수 없다라는 말 그대로였는데, 그 때 여채까지 해온 것들이 전부 아름다워졌다고 느꼈습니다.


- 끝나고 나선 어떤 상태였나요?


우치다 해냈다고 하기엔 또 다른데요, 굳이 따지자면 1일차 끝나고서가 문제였습니다. 아쉬움을 남기기 싫다고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2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안 나왔거든요. "어떡하지!"라고 했죠....... 1일차밖에 못 오는 사람도 있다보니 2일차가 있단 걸 차마 생각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1일차 라이브는 1일차에서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처럼 몸이 따라가주질 못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온 힘을 다했다는 거구나 싶어요. 영상을 보면 틈틈마다 엄청 즐겁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죠(웃음).


"코토리쨩이다!"를 목표로 한 나날


- 거슬러 올라가서 코토리와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땠나요?


우치다 이름만 들어도 멤버들 중에서 부드러운 존재일까 상상하기도 하고, 꼬리 같은 게 붙어있길래 조금 멋쟁이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정보가 없다보니 일러스트랑 이름 분위기에서 어떤 아이일지 상상했어요.


- 아직 성격 같은 것도 정해지지 않았었나 보군요.


우치다 하나하나 더듬어가던 과정이었지만 전 애초부터 「전격 G's magazine」의 독자 참가형 기획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에 참가할 수 있는 게 기뻤고, 독자 여러분의 투표를 통해 앞으로 자라날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고민하는 것도 좋진 않겠다 싶었죠. 어떻게 자라날까 두근두근거렸네요.


- 어떤 의미론 우치다씨는 기획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한 멤버라는 거군요(웃음).


우치다 그래도 투표로 순위를 매긴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아무래도 일희일비하게 되잖아요. 첫 번째 투표에선 9명 중에서 9위라서 "하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죠(웃음). 그 때 제가 좀 더 코토리쨩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9명이서 노래할 때 솔로 한 구절이라도 코토리쨩이라고 눈치챌 만한 표정을 불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 때까지 9명이서 노래하려고 하면 키가 낮은 것 같아서 코토리쨩의 둥실둥실한 부분을 내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baby maybe 사랑의 버튼」은 템포가 느긋하고 부르기 쉬워서 "이런 식으로 부르면 되게 코토리쨩스럽게 불리는구나"하고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그런 코토리다움을 처음 내보이게 된 1st 라이브에선 어떤 기분이셨나요?


우치다 처음엔 아직 자신이 없어서 관객분들이 와주시긴 할까 하는 불안함이 컸습니다. 그 불안이 Printemps 3명이서 『러브라이브!』로서 처음 이벤트를 했을 때부터 있었어요. 그래도 그 때 수용인원을 꽉 채운 80분이 와주셨습니다. 그게 너무 기뻐서....... 그 때부터 라이브 준비를 하는 도중에 조금씩 저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한 걸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이 생긴 것 같아요.


- 그 예감대로 µ's는 점점 큰 존재가 됐습니다만, 심정의 변화는 있었나요?


우치다 저 같은 경우엔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아이돌이 아닌 성우를 동경해서 이 업계에 뛰어들었으니 겉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선 조금 망설이기도 했어요. 무대나 뮤지컬처럼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마음가짐으로 노래하는 게 미나미 코토리쨩의 역할의 우치다 아야로서 정답이라고 생각했던지라 코토리쨩다움을 얼마나 재현해내느냐를 많이 의식했었죠. 라이브에서 애니메이션과 완전히 똑같은 안무를 한다면 단순히 춤만 춰선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 부분에서 코토리 역으로서 연기가 필요다보니 아이돌 그룹의 영상도 보고, 둥실둥실하고 귀엽게 보이는 애의 움직임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토리다움"을 추구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 주변에서 열광하는 가운데에 철저히 코토리라는 존재와 일체화하는 스테이지를 생각했다는 거군요.


우치다 네. 점점 인기가 많아지는 코토리쨩에 대해 제가 따라가는 느낌도 있었고, 불안하기도 했었습니다. 얼굴도 다르고 스타일도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닌데 같은 의상을 입고 잡지에 나가기도 하다보니 보는 사람한텐 "안 귀여워"라는 말을 듣고 축 쳐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가 가진 범위 안에서 최대한 해보려던 게 처음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공연하게 되었을 때 도리어 터져나오게 됐습니다. 회장이 넓어지다보니 콩알만하게밖에 안 보인다면 오히려 실루엣이라도 비슷하게 하면 멀리서 보기엔 코토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펴고 탈색까지 하고서야 코토리 색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 아까 말씀하셨는데, 파이널 라이브 BD를 보시고 스스로도 코토리답다고 생각하게 되신 거네요.


우치다 여태까지 헤어메이크를 해주시는 분과 함께 몇 번씩 고쳐나갔거든요. 돔에선 붙이는 가발까지 붙여서 머리 길이를 늘리고, 염색도 깔끔하게 하고, 벼슬도 붙여서 진짜 코토리에 가장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코토리쨩은 의상쪽이라 전 그 부분에도 고집하는 게 있었어요. 이번에 빨리 갈아입어야 될 일이 많다보니 두껍게 껴입어야 되는 의상이 많아서 몇 번씩 의상 담당하시는 분이랑 상담을 했습니다. 「꼬옥하고 "love"로 접근 중!」 의상은 특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여기 파니에()가 좋아요!"라던가 "여기가 두꺼우면 애니메이션 그림이랑 실루엣이 달라요!"라던가, 끈질기게 건의를 했었죠. 그렇게 머리모양이나 의상에 고집을 부려서 BD 영상에서 뒷모습을 봤을 때 진짜 코토리쨩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스스로도 만족했습니다. "내가 이걸 보고 싶었던 거구나! 이런 작품 어디 없지"라면서요(웃음).


무적의 9명이 모인 기적의 작품


- 우치다씨에게 있어서 µ's 멤버는 어떤 존재인가요?


우치다 정말 무적의 9명이라고 생각합니다. µ's 모두를 대단하다고 여겨요. 평소에도 생각하는 거지만 팬미팅 때 다시금 이 9명이 모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의 본업은 뭘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도, 춤도 잘 하고, 이야기도 재밌잖아요. 한명한명에게 존경할 만한 부분이 많이 있고, 개성 넘치는 9명이 모여있다 보니 잘하는 것도 제각각이예요. "내가 실수해도 얘가 커버해주겠지" 싶은 안정감도 있고, 이상하거나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멤버끼리 무언의 연결고리로 통하는 듯한 팀워크도 엄청났죠. 남얘기 같지만서도 정말 "뭐하는 녀석들이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 한편으로 6년간을 함께 걸어온 코토리는 어떤 존재인가요?


우치다 뭘까요, 신기한 느낌이네요. 작품은 일단락을 맞이했지만 쭉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생명을 불어넣는다"라고 곧잘 말하는데요, 함께한 추억이 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즐겁기도 함께 하며 즐겨온 것들은 쭉 남겠죠. 어릴 때 본 TV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변함없이 마음에 남아있듯이요....... 저와는 확실히 다르지만, 코토리가 있다면 힘낼 수 있다, 그런 인생의 보물 같은 존재일까요. 제가 모르는 부분도 여러 사람의 보물이 되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보물이 되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메시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치다 파이널 라이브가 끝나고 슬퍼해주시는 팬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반년이 지나고, 저는 상당히 상쾌하게 갠 마음으로 지금 인터뷰에 답변할 수 있습니다. 그 스테이지를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러브라이브!』는 기적적인 작품이라고 자주 일컬어지는데요, 라이브 마지막에 다 함께 합창하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기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BD를 다시 봐도 "이렇게 좋은 곳에서 끝난다고!?"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무척이나 멋진 마지막이였어요(웃음).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사랑받은 작품은 어딜 가도 찾아볼 수 없을 거 같고, 그런 작품을 만들어주신 건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신 여러분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CD가 400장밖에 팔리지 않던 때부터 한 명, 또 한 명이 좋아해주셨기에 이렇게 큰 꿈을 꿀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멋진 추억으로서, 함께 청춘들 달려온 일원으로서, 그걸 잊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들은 항상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으니까 힘들 때나 벽에 부딪혔을 때 『러브라이브!』를 떠올려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그런 존재로서 계속해서 빛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02. 난죠 요시노


「6년간 함께 걸어왔으니 "에리는 지금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야세가 빛날 수 없어! 그런 마음가짐으로 스테이지에 섰습니다


- "µ's Final LoveLive!" 때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여태까지의 6년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나요?


난죠 요시노 그 날을 경계로 일단락......이라고는 하지만 극적으로 변한 건 없었네요. 학생 시절 때 봄방학을 하면 「정말 학교 안 가도 되는구나」싶은 정도예요. 그러면서도 항상 눈앞의 새로운 일들이랑 마주하는 게 최근 제 상황이었어요. 한편으론 열심히 응원해주시는 관객분들 중에서도 어디선가 µ's의 흔적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듯한 격한 "µ's로스"를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걸 다른 작품이나 개인 활동에서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응원해줬다고 느끼는 걸 돌아보는 거라고 말한다면 돌아보는 겁니다만, 실제론 "아직 반년밖에 안 지났구나"라는 느낌이 듭니다.


- 다시금 여쭤보는데, 파이널 라이브까진 어떻게 지내셨나요?


난죠 우선 도쿄돔이라는 게 감당하지 못 할 정도로 거대해서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저 "여기서 이틀간 마지막 라이브를 하고, 넓은 회장이 관객분들로 메워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전날에 리허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이다보니 멤버들도 모두 "어떡해야 여태까지의 『러브라이브!』나 µ's의 좋은 점을 라이브에서 전해줄 수 있을까"라며 직전까지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보다도 "좀 더 이렇게 보여주는 게 더 잘 전해지지 않을까"하는 정신적인 노력이 여태까지 했던 라이브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각자가 여태까지 연기해온 여자아이들을 재차 마주하며 만들어낸 라이브 아니었나, 그런 생각입니다.


- 당일에 관객들을 보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난죠 저는 스테이지에서 본 『러브라이브!』의 가장 큰 특징이 아홉 색깔로 빛나는 객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그 무대가 도쿄돔이라 엄청 넓은 곳에서 여러 색깔이 보였고요....... 리허설과 실제 라이브의 결정적 차이는 관객들이 있고, 펜라이트를 들고 있다는 거예요. 몇 달을 아무런 색깔도 없이 연습해온 걸 당일엔 그렇게 예쁘게 빛나는 곳에서 할 수 있다는 거죠. 이쪽으로도 감동받게 됩니다.


- MC에서 난죠씨가 "9명이 아닌 18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라이브에서 에리와 있다는 느낌이란 어떤 거였을까요?


난죠 당시에 에리와의 거리감이 어땠느냐는 건, 실은 라이브에 필사적이어서 잘 기억이 나진 않네요.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리허설 때부터 캐스트진은 모두 자기가 연기하는 아이들을 느껴주길 바라며,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의 "µ's"를 재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 노력한다기보단 아야세 에리를 위해 노력한다, 이런 거지요. 가령 제 자신의 라이브였다면 좀 더 설렁설렁 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그 땐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야세가 빛날 수 없어, 그녀를 위해서 노력하고 싶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스테이지에 서있었네요.


- 그 퍼포먼스는 그런 마음에서 나왔다는 거군요


난죠 스테이지에 서있을 땐 순수하게 즐겁다는 마음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360도에 관객분들이 있고, 계속 웃게 되고, 때론 눈물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어떤 면으론 신을 보는 듯한 눈으로 스테이지를 보기도 하곤 하는 거죠. 그러면 저도 자연스레 할 수 있는 만큼 뒤쪽이나 위쪽 자리 근처까지 가서 "실제로 µ's를 만났다"라는 체험을 전해주고 싶었고, 그에 필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로감이 든 것도 라이브가 다 끝나고서 호텔에 돌아가고 난 후에야 "...... 내일도 있었지!"라고 한 거였어요 (웃음).


아야세 에리를 위해 자신이 노력한다


- 거슬러올라가서 처음에 에리와 만났을 때 인상은 어땠나요?


난죠 저는 에리처럼 "살짝 언니"라는 역할을 연기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애가 걸렸구나 싶었어요. 다른 8명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까 생각했죠. 6년 전이라면 목소리 높고 귀여운 분위기의 여자애들이 인기가 많던 때라서 "에리쨩은 인기 얻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죠. 이 애의 매력을 어떻게 끌어내고 어떻게 연기해야 보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엄청 고민했었네요.


- 노래도 에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인상에 남는 곡은 있나요?


난죠 그렇게 질문받을 때마다 계속 「START:DASH!!」라고 대답해왔었는데, 마지막까지 해보니 「우리들은 하나의 빛」도 인상애 남고, 레코딩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네요. 제 안에선 어렴풋하게 "어른스럽게 연기하자"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레코딩에 들어가니 "어쨌든 활기차게!" 해달라셨습니다(웃음). 아직 성격이 정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여기서 활기차게 했다간 전 그 뒤로 갭에 고생할 것 같아서 제 나름의 에리를 이미지화하고, 그 성격의 분위기에서 기운차게 하는 식으로 미묘하게 가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그 시점에서 노래하는 방법이 달라졌더라면 지금의 에리는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난죠 처음에 그렸던 막연한 이미지가 찰카닥 들어맞게 된 게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서이네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전 쿨하게 연기하려고 했는데, 첫 보이스 드라마 무렵엔 허당 같은 느낌이 좀 있어서.......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서야 간신히 "그래그래, 내가 하고자 했던 아야세가 이거야!"라고 할 수 있었죠(웃음).


- 학생회장스러운 쿨한 분위기 말씀이신가요?


난죠 솔직하지 못 하고, 좀처럼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 하고 서투른 부분이 아야세 에리의 귀여운 부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 때까지 해왔던 "허당치카"가 나올 타이밍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첫 인물상 묘사라던가, TV 애니메이션에서 거리가 줄어드는 과정 같은 걸 보며 "이거야 이거! 이걸 해보고 싶었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 처음엔 대립축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멤버들 사이에서도 에리가 갈등하는 씬이 인상적이었죠.


난죠 고민하길 좋아하는 거겠죠. 정말로 괜찮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해보자!"라고 말하는 호노카라던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하는 멤버들도 있는 와중에 "정말로?"라고 하는 식으로요. 제게도 그런 점이 있어서 상당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 방금 말씀하신 그런 공감을 포함해서 지금 에리와 난죠씨는 어떤 관계인가요?


난죠 때론 제 애 같기도 하고, 때론 반쪽 같기도 하고, 제 자신 같을 때도 있어요. 작품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멤버가 캐스트에게 다가오는 게 있다고 있달까요, 연기하는 제가 에리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물색 물건을 고르게 되기도 해요. 요 6년간 서로가 융합하게 된 부분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에리의 관계성을 다시금 생각해볼 틈도 없이 당장 눈앞에 닥친 라이브나 엄청난 수의 곡을 레코딩을 소화해내느라 필사적이었고,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에리고 저디까지가 저인지가 모호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파이널 라이브에선 "아야세 에리를 있는 힘껏 빛내주고 싶으니까 내가 그걸 위해 노력한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6년 중에서도 작년은 그야말로 숨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고조되었는데요, 그런 흐름을 어떻게 보셨나요?


난죠 초창기의 "아야세 에리를 어떻게 연기할까"라는 망설임이나 제가 아무리 "귀엽잖아!"라고 말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나날들이라던가(웃음), 그런 걸 잊어선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전 『러브라이브!』 때문에 성우가 된 게 아니고, 병행하고 있는 다른 작품의 캐릭터와 마주하기도 하니까요. 그게 전부 『러브라이브!』의 기세에 휩쓸렸다간 순식간에 제 자신마저 휩쓸려 없어져버릴 것 같아서, 냉정하게 있어야 된다는 위기감이 있었네요. 규모가 커지는 속도도 엄청났고, 스케일도 차원이 달랐던 만큼 무서웠던 부분도 있었죠.


- 그 땐 평소에 애니메이션을 안 보는 사람들도 『러브라이브!』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죠.


난죠 "대단하네"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저는 캐스트로서 관여한다는 생각이 강했스니 TV에서나 미디어에서 나마µ's(원문 : 生身のほうのµ's)를 알게 됐다고 해도 그게 애니메이션까지 이어졌으면 싶은 바람이 컸어요.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동지"로서의 말


- 농밀한 6년간을 달려온 지금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난죠 성우 일의 일환으로 있기도 하지만, 그걸 어느 정도 뛰어넘은 라이브이기도 했고, 평범한 성우 일을 했더라면 경험 못 했을 일도 잔뜩 했죠. 배역으로서도 성우로서도 엄청난 일도 물론 있었지만, 정말 여러가지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µ's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도 많이 있고요.


함께 "µ's"를 경험해온 동료로서, 앞을 바라보고 힘내주길 바란다


- 그런 만남 중 하나가 캐스트 8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난죠 역시 아직까지도 약간 가족스러운 감이 가시질 않긴 합니다. 정말로 같은 밥통의 밥을 먹은 셈이고요(웃음). 거의 매일 함께 있는 시간이 지나갔으니 이전만큼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어딘가 현장에서 얼굴을 보면 안심된다고 할까요. 다른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도 또 다른 진정되는 느낌이에요.


- 함께 6년간을 보낸 에리에 대해서 한마디 해준다면?


난죠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일까요. 6년간 계속 바로 옆을 걸어와서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다시 어떤 길에서 마주쳐서 만나면 좋겠다 싶긴 한데요. 그렇게 오랫동안 곁에 있던 사람과 떨어져버린 건 졸업이랑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정말로 지금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싶어요. 2차원이라고 말한다면 2차원이겠지만, 정말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 같아서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 마지막에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난죠 그 뒤로 µ's로스는 어떠신가요?(웃음). 정말로 눈물이 마를 정도로 운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엔 저희를 몰랐던 분한테서 "최근에 알게 됐는데, 왜 몰랐는지 후회한다"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해요. "저는 대체 왜 라이브에 가지 않은 걸까요!" 같이요. 저로선 "그러게 보라고 했잖아!"라고 하는 식이지만요(웃음). 그렇게 다양한 µ's 팬이 있다보니 6년간 계속 좇아와주신 사람들도 있고, 그 중 몇 년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지낸 시간이 많든 적든, 그 마음은 진짜라고 생각해요. 파이널 라이브가 끝나고 아직 슬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µ's가 소멸한 것도 아니고, 함께 만들어온 추억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특히 그렇게 "슬퍼...... 슬퍼서 내일이 깜깜해......"라는 사람에겐 함께 µ's와 지내온 동지로서, 너무 울지 말고 앞을 바라바줬으면 합니다. 또 언제 어디에선가 µ's가 여러분의 앞에 나타나게 될 날이 있다면 그 때 그 6년간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 여러분도 그렇고, 연기한 저희도 그렇습니다. µ's를 경험한 동료로서, 앞을 바라보고 힘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모두 각자의 시간을 보냈을 테니, 이제 다음으로 열정을 쏟을 걸 사람도 있을 테고, 여전히 끝난 것에 개운치 않아서 앞으로 어떡할지 불투명한 사람도 있겠죠. 마음이 좀 정리됐을 때 6년간을 되돌아보며 "서로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변함없이 µ's와의 추억이나 노래를 소중히 여기며 각자의 생활에 힘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번역 : Na2Cr2O7

링크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emitsun&no=1734


01. 닛타 에미


'각각의 시간 안에서 이야기와 만난 순간이, 「러브라이브!」 라는 꿈의 시작입니다.'


호노카의 등을 계속 쫓아와서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생각듭니다.


-"μ’s Final LoveLive!"에서 반년, 다시 생각해볼 기회는 있으셨나요?


닛타 에미 저, '도쿄돔이 끝난다면 「러브라이브!」의 팬이 되자!'라고 계속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돔 공연의 다음 날은 라이브뷰잉에 가기도 하고, 그 후에도 TV 애니메이션을 제1화부터 되돌아보거나 해서 작품에 닿을 기회가 있엇지만서도, 쓸쓸하게 되어 떠올리게 되는 느낌은 아니었네요. 하지만 새삼스럽게 돔의 영상을 볼 때에, '정말 엄청난 경험을 했구나, 우리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에 도쿄돔 공연이라고 들었을 때 감상은 어떠셨나요?


닛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μ’s가 아키바돔에 서있는 모습은, 사실은 애니메이션에서 그려지지 않았죠. 저는 계속 μ’s를 귀감으로 삼아와서, 호노카의 등을 계속 보아왔습니다. 호노카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라서, 지금까지는 뒤쫓자라고 했지만, 처음으로 그녀들보다 큰 스테이지에 저희들이 서서 그녀들의 등을 쫓아 가는 것이 아닌,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답(未踏)의 경치라는 것을 이중으로 느꼈던거군요.


닛타 ‘도쿄돔’ 이라는 이름에 위축되는 느낌도 있었지만, 라이브의 MC에서도 말했듯이,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모인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엄청 넓었지만 스테이지를 이곳저곳 다닌다던가, 토롯코(*무대에서 타고 다니던 차)에서 돔 내를 이동하던가, 응원해주는 여러분의 얼굴이 보이게 되어서. 지금이라도 그 경치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리허설 등의 준비는 어떤 상태였나요?


닛타 돔을 향해서의 리허설은 스케쥴이 꽤 타이트해서, 하지만 도쿄돔이 넓어서 아무리 넓은 스튜디오에서 하더라도 당일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실제의 스테이지에 섰을 때부터 드디어 ‘도쿄돔에 섰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의 안에서도 돔을 상정하며 걸어보지만, 물론 돔 정도의 넓이는 아닙니다. ‘이 거리를 몇번 왕복하면 스테이지의 이쯤에 간다’라고 들어도,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경치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웃음)


-진정한 의미로 서보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거군요.


닛타 네. 하지만, 모두가 의견을 서로 내어 만든 최고의 세트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불안도 있었지만, 곡을 다시 들을 때마다 ‘괜찮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방은 터프한 스테이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멤버도 관객도 웃는 얼굴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기분이 어떠셨나요?


닛타 저, 「러브라이브!」의 스테이지에서는 울어버릴 때가 많지만, 1일차는 ‘울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오늘밖에 없어!’라고 생각해서 참았습니다. 하지만, 2일차에는 ‘코우사카 호노카 역의 닛타 에미’로는 있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네요. 호노카를 잘 연기하는 것보다도, 자기자신을 포함해서 최고의 시간으로 하자라는 기분으로 임하였습니다.


-1일차를 마치고 , 2일차는 이제 즐겁게하자라고 하는.


닛타 ‘Snow halation’의 최후, 객석이 흰색에서 오렌지로 바뀌는 순간을 멤버 중에 저만이 정면을 향하여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도 지금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거 같네요. 라는 것은 풍경으로서는 눈에 들어오지만, μ’s로서 스테이지에 설 때는 PV를 떠올리면서 호노카가 있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해왔으니까요.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이 있어서의 μ’s라 언제나 거기에 몰입하여 보고 있는거군요.


닛타 하지만, 돔의 2일차에서는 닛타 에미로서 객석을 보았습니다. 멤버조차 볼 수 없는 경치를 혼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사치를 맛보는 것은 지금밖에 없어!’라고. 그러니까 라이브의 영상을 보면, 지금까지 중 가장 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예뻤어요! 처음으로 회장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걸 도쿄돔에서 한다는건. (웃음)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1st 라이브를 거쳐 “시작한” 순간


-새삼스럽지만 호노카와 처음 만났던 때의 인상을 들려주세요.


닛타 사무소에서 오디션을 받았을 때는 처음 그림을 보고, 최초의 설정으로 ‘보통의 여자아이’라고 쓰여있던 것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돌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보통의 아이일 리 없어라고.


-거기서부터 긴 교류를 거쳐 인상도 바뀌어 왔다고 생각합니다만, 닛타 씨의 안에서는 호노카다움을 얻은 것은 어느 때셨나요?


닛타 호노카다운 노래 방법을 계속 자신 안에서도 모색해와서, ‘이거다!’라고 채널이 완벽하게 맞은 감각을 얻은 것은 ‘꿈 없는 꿈은 꿈이 아니야(夢なき夢は夢じゃない)’(TV 애니메이션 Blu-ray 제1권 특장한정판특전)네요. 적극적인 것밖에 없는 에너지의 혼으로, ‘파이트야!(ファイトだよ!)’라는 말이 태어난 곡이기도 합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기까지는 단편적인 이야기으로 밖에 그녀들을 알 수 없었지만, 이른바 ‘밝고 활기찬’이라는 연기로는 정리할 수 없는 아이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기부터 제1화의 아후레코(애프터 레코딩)를 끝내고, 호노카에 가까워졌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제1화의 아후레코는 큰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닛타 그렇게 고생했던 아후레코는 없지 않았을까...하지만, 호노카다움을 얻은 것은 그 아후레코와 제1화 삽입곡의 ‘나아가자→내일로(ススメ→トゥモロウ)’에 만났던 것이 컸습니다. 인생을 바꾼 한 곡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TV 애니메이션의 첫번째 소리가 그것을 불렀던 것이기도 하고, 거기에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이 매우 집약되어 있습니다. 감독에게 ‘이 작품의 도입부분이기도 하니, 뉴트럴하게, 퓨어하고 여러 느낌이 드는 창법으로 해주세요’라고 들어서 다시 녹음했었어요. 그 디렉션(방향)으로 ‘그런가!’라고 이해했습니다.


-그 창법이기 때문에 시작했던거군요. 최근의 아후레코에서는 특별한 감정은 없으셨나요?


닛타 작년 12월에 홍백가합전에 돔 공연의 앞부분에 흐르는 애니메이션을 같이 녹화했는데, 그 때는 완성이 기대되어 보통의 팬의 시선으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돔 공연의 영상은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뭉클해져서, 리허설의 날에 그것을 떠올려서 ‘사전에 보아두지 않으면 스테이지에서 울어버릴꺼 같은 패턴이다!’라고 생각해서 스크린으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정말로 보아두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걸 본방에서 처음 보면 저, 설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웃음) ‘다음 곡은 무리에요!’라고 리허설도 한번 중단할 정도로...그건 훌륭했습니다.


-각각의 라이브 회장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의 요코하마BLITZ에서의 1st 라이브는 어떠셨나요?


닛타 그 때 막이 오르고 스테이지의 위에서부터 팬분들이 보였을 때의 공기가 바뀌었다는 것이 알았습니다. 그저 라이브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닌, 좀 더 큰 것이 움직이게 되었다는 감각이 있어서, “시작한다”라는 것은 이렇구나라고 생각했네요.


-팬들의 환성으로 시작한 순간을 실감했던거군요.


닛타 당시, 「러브라이브!」는 TV 애니메이션이 된 것도 아니고, ‘전격 G’s 매거진’이나 니코니코 생방송에서의 조금의 방송이 있던 정도라 수수께끼 같았습니다. 그게 갑자기 라이브를 하게 되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프로듀서와 이야기하거나 했습니다. 아직 불안했었네요.


-지금에 와서 뒤에 영상을 등에 지는 스타일이 확립되었는데, 당시에는 제로부터 그것을 만들게 된거군요.


닛타 영상과 성우가 어우러진 것이 μ’s가 시작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보이스드라마 등에서 라이브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체험하여 처음으로 그녀들이 말한 “라이브”라는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라이브는 외견도 얽혀버려서 호노카의 머리의 위치가 반대로 된다던가. (웃음)


호노카들, 그리고 우리들은, 영원히 μ’s입니다!


-라이브 회장도 점점 커져서 μ’s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것을 느끼셨나요?


닛타 TV 애니메이션 2기 이후는 눈 깜짝할 새에 날들이 지나, 뭐랄까 매달려있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래서 TV 애니메이션에서 호노카가 ‘3학년이 졸업하면 끝낼게’라고 했을 때에 저 자신도 구해졌다고 해야할까...저희들이 형태로 해야할 것은 이렇게 말한 그녀들의 추억이기도 하며, 그것이 저희들 μ’s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쿄돔 공연이 끝나더라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자신도 젊어질 수 없어. 그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바뀌지 않는 것에 향했던 것이 μ’s의 청춘 이야기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것을 부정하면 안된다는 기분은 있었습니다.


-그것을 말로해서 전해진 것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닛타 이 장을 빌려서 한번 더, ‘해산’은 아니라는 것을 소리로 크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좋아해주는 한 그 9인은 거기 있고, 그 이야기와 만났던 순간이 「러브라이브!」 라는 꿈의 시작입니다. 저희들은 도쿄돔 공연이라는 형태로 일단락했지만, 지금도 저는 μ’s의 코우사카 호노카 역의 닛타 에미라고 생각하고 있고, 80세, 90세가 되더라도 그렇게 말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새로 「러브라이브!」에 만날 때, 물론 저희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시기와는 겹치지 않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시간 안에서  μ’s의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μ’sic Forever♪♪♪♪♪♪♪♪♪~”라는 타이틀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당황하셨을 꺼라고 생각하고, ‘어째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거야!’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실꺼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한번 더 이야기를 처음부터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걸로 시간이 지나면, 어째서 호노카들이 ‘끝내겠습니다’라고 말한걸까, ‘스쿨아이돌 모두가 노래를 하자’라고 말한걸까, 분명 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닛타 씨 자신으로서는 최근 반년간 변화가 있었나요?


닛타 이 촬영으로 반년 만에 의상을 입으니, 간만에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었을 때의 부끄러움, 같은 기분이 있어서. (웃음) 고등학교를 마친 듯한 감각이네요. 좀 더 떨어져서 보면 반년따윈 그렇게 바뀌지 않아라고 생각합니다만, 대학에 들어가거나 막 취직한 것은 큰일이고, 그런 시간의 이야기구나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렸습니다.


-정말로 농밀한 6년간이었는데, μ’s의 멤버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이 있나요?


닛타 μ’s의 멤버는 사이가 좋지만, 여자친구와는 다르게, 역시 동료라는 느낌이랄까요. 응해주는, 응해주지 않는다던가 그런 것이 아닌, 가끔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주면서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런건 ‘동료’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더, 같이 6년간을 달려나온 호노카에게 무언가 한마디를.


닛타 라이브를 끝냈을 때에는 ‘고마워’라던가, ‘수고했어’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팟하고 떠오르지가 않네요...호노카는 제가 있더라도, 없더라도 호노카이기 때문에 활기차게 해나가겠지라고. 앞으로도 여러 사람에게 꿈을 주는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떨어지게 되었지만 계속 지켜보고, ‘앞으로도 함께야’라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에게 메세지를 부탁드립니다.


닛타 「러브라이브!」, μ’s를 사랑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나 멋진 6년간을 보낸 것은 「러브라이브!」를 사랑해주신 모든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μ’s의 이야기는 일단락을 맞이했지만, 호노카들의 μ’s는 언제까지나 계속 빛나는 여자아이로서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들 안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작품에서 많은 용기나 살아나갈 양식을 받았기 때문에, 팬 여러분들에게도 청춘을 헤메이고 있다면 몇번이라도 「러브라이브!」를 보고, 「러브라이브!」하고, 인생의 여러 상황에서 떠올려주세요. 호노카들, 그리고 저희들은 영원히 μ’s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청춘을 헤메이고 있다면 몇번이라도 보고, 「러브라이브!」해주시길 바랍니다.

2010년에 시작한 이래, 작중의 성공 스토리를 현실에서도 이루어낸 『러브라이브!』. 올해 4월에 열린 "µ's Final LoveLive!"에서 일단락을 맞게된 지금, 9명의 멤버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