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이이다 리호


"슬퍼하고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개운한 기분이었습니다. 전부 해내서 그런 기분이 든 게 아니었을까요?


- "µ's Final LoveLive!"부터 약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이다 리호 이제 고작 반년 됐는데 되게 예전 일처럼 느껴지네요. 벌써 1, 2년은 지난 일처럼 느껴져요.


- 여태까지 활동을 돌아보며 노래를 들어보고 라이브 영상을 다시 본 적이 있나요?


이이다 최근에 µ's 곡을 듣지 않고 있었네요. 듣지 않는 건지 듣지 못 한 건진 모르겠지만, 플레이리스트에 손이 안 가서요. 듣기만 한다면 분명 멋진 추억이 다시 떠오를 테지만, 일단 보물상자에 소중히 넣어둔 걸 간단히 열어버리는 건 조금 아니다 싶은 마음이 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도쿄돔에서 라이브를 한다고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이이다 그 땐 "짱이다!"라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이전부터 머리 한편에서 "언젠간 µ's는 그 무대에 서겠지"하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있었어요. 실은 처음부터 갈 기세로 노력했던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 한편으론 "아, 드디어 왔구나"라는 감도 있었습니다(웃음).


- 언젠간 그만큼 큰 회장에서 하겠지, 라는 건가요?


이이다 그렇다기보단 도쿄돔에서 인연을 느꼈어요. 「µ's New Year LoveLive! 2013」에서 TOKYO DOME CITY HALL에 섰을 때, 바로 옆에 있는 도쿄돔을 보며 문득 "언젠가 여기서 하겠지"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방송에서 "앞으로의 목표는?"라고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았을 때, 생방송 끝나기 5초 전에 "노리자, 돔!"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 적이 있어요. 그 뒤로 극장판이 나왔고, 실제로 돔에서 라이브를 하게 되고...... 신기한 인연을 느꼈다고 할까요, 속으로 모종의 예감을 한 거네요.


- 사상 최대의 회장이자 장기전 라이브였습니다만, 리허설 상황은 어땠나요?


이이다 떠올려보자니 그립네요. 라이브에 대비한 체력 기르기를 겸하며 추운 날에도 스튜디오에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해보고, 집에선 스트레칭이나 근력 트레이닝도 했었네요. 그 때까진 그 정도로 하진 않았었지만, 전부 해내고 싶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리허설에 시간을 투자하려고 했습니다.


- 총연습 같은 일으로 돔 무대에 선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일단 넓고, 천장도 엄청 높고,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엄청났습니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는 세로로 길었는데, 돔은 둥그런 느낌이었네요.


- 아무래도 당일을 맞았을 땐 긴장도 상당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이다 바로 직전까지도 별로 긴장하진 않았습니다. 든든한 제 편이 8명이나 있는 데다가, 기대감에 부풀었거든요. 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무대에 올라가려고 하니까 손이 엄청 떨렸어요. "아, 나 긴장하는구나"라고 그 때 처음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른지 5초만에 금방 괜찮아졌어요.


도쿄돔에서 신기한 인연을 느꼈다고 할까요, 속으로 예감 같은 걸 했습니다.


- 당일 무대에 섰을 때 광경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엄청났습니다. 빛에 둘러쌓여있는 것 같았어요. 와주신 분들의 환성에 땅이 흔들리는 게 몸으로 느껴졌고요. 귀가 아니라 뼈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처럼 몸으로 목소리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웃음).


- 처음부터 엄청난 환성이었군요. 아무래도 멤버들의 텐션도 올라가던가요?


이이다 물론 즐거운 건 맥스로 최고조에 달했지만, 의외로 퍼포먼스 자체는 냉정하게 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허둥대다가 주변에 신경을 못 쓰게 되는 일도 없이, 좋은 의미로서 냉정함을 지키며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카메라를 보는 표정이나 모습도 착실히 의식해가며 미더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이다 리허설을 그만큼이나 했던 것도 있었고, 여태까지와는 침착하게 있는 것부터가 달랐거든요. 단단히 벼르고 있던 탓에 하나씩 잘 소화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고조되는 한편, 이게 마지막이라는 섭섭함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2일차 스테이지는 어떠셨나요?


이이다 2일차 아침엔 기분 좋은 근육통에 눈을 떴습니다. 뭔가 특별한 것도 없이 정말 이게 마지막인가 싶을 정도였고, 다른 멤버들도 엄청나게 평소처럼이었습니다. 그래도 스테이지의 마지막 직전에 멤버 전원이 꽃 안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을 때가 있었어요. 아무도 볼 수 없이 9명만의 공간에서, 다 같이 눈빛을 주고받곤 원형으로 서서 손을 맞잡았을 때 처음으로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려나요. 그 순간은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서 남아있습니다.


- 마지막 「우리들은 하나의 빛」이 끝나고 스테이지를 뒤로 했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퇴장 중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며 관객 한명한명의 얼굴이 갑자기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즐거운 듯이 웃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시는 분도, 엄청 울고 계신 분들도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퇴장한 뒤에도 모두가 노래해주는 게 들려서 애정을 느꼈습니다. 한순간 다시 한 번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스테이지를 뒤로 했습니다.


- 스테이지를 마친 다음날엔 어떠셨나요?


이이다 슬프고 공허할 것 같았는데, 무척이나 기분이 좋고 개운한 기분이었습니다. 모두 해낼 수 있었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린쨩과 µ's의 성장을 고민하며 좇아가는 6년간


- 다시 6년간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무렵 활동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있었나요?


이이다 처음 레코딩했을 때 일은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Pile쨩이랑 시카쨩까지 3명이 함께 있었는데요, 그 때가 첫 대면이라서 서로 말 한 마디를 안 하고 있었어요(웃음).


- 멤버들과 몇 번씩 레코딩을 같이 하며 서서히 알아갔다는 거군요.


이이다 그렇죠. 그 후의 레코딩은 9명의 나레이션 파트가 들어가는 곡도 몇 개 있다보니, 대사 타이밍을 재려고 첫 대사를 넣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 대사까지 혼자서 했어야 됐습니다. 「Mermaid festa vol.1」이나 「카구야의 성에서 춤추고 싶어」였던가요? 제가 첫 대사를 맡게 돼서 다른 멤버들의 대사를 흉내내자 "완전 똑같아!"라더라고요(웃음). 멤버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다보니 그게 인상적인 에피소드였네요.


- 2012년 요코하마 BLITZ의 첫 라이브에선 어떤 심정으로 임하셨나요? 초창기 라이브는 애니메이션 PV와 호흡을 맞춰 퍼포먼스를 했었죠.


이이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댄스를 연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까지도 애니메이션와 똑같은 안무를 외워 9명이서 추는 스테이지는 처음이다보니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그저 그 무렵엔 린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지금도 초창기 CD, DVD는 부끄러워서 틀질 못 해요. 댄스 표현력도 그렇습니다만, 린쨩과 싱크로하는 걸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초창기엔 린쨩과 어딘지 거리감이 있었네요. 거기 있던 건 아직 이이다 리호인 거죠. 린쨩의 역할을 지고 있지 않은 걸 보기 부끄럽다고 할까요.......


- 린쨩은 극중에서 다른 사람을 지지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이 두드러졌지요.


이이다 의외로 착실한 애라 귀여웠고, "좀 더 귀엽게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부모 같은 심정으로 보기도 했어요. 그랬기에 좀 더 린쨩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쳐주길 계속 바랐고, 어딘지 린쨩이라는 여자애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 한 것 같아서 스스로도 여러가지로 고민하며 조금씩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 작중 스토리처럼 자신을 어떻게 내보일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거군요. 그 중에서도 린쨩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계기는 뭐였나요?


이이다 꽤 시간이 지나서이긴 한데, 「Love wing bell」 때였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의 영상도 멋졌고, 스태프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연기했습니다.


- TV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는 한편, 라이브에서도 주목받으며 점점 회장이 커졌는데요, 그 과정은 어떠셨나요?


이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 일을 보는 것 같을 정도로 실감이 들지 않았어요. "헤에, 이 사람들 그렇게 대단하구나. 이 9명 확실히 귀엽네"라는 느낌이었습니다(웃음).


지금도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이 있기에 린쨩이 멀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 그녀들이 스타덤을 뛰어올라가는 걸 관조하는 느낌이었다는 거군요.


이이다 저희가 나오는 건데도 반쯤은 다른 사람 일처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왠지 엄청난 일이 됐네" 같은 말도 몇 번씩 했고요. TV에 출연했을 때도 집에 돌아가서 체크해보니 웬 낯선 사람이 춤추고 있는 듯한, 신기한 감각이었습니다. 철저하게 그녀들이 이런 의상을 입고 있으니 우리들도 이런 의상을 입습니다, 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TV나 잡지를 통해 보는 µ's가 점점 귀여워지고, 그걸 저희아 좇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 2015년은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극장판, 팬미팅 투어, TV 출연 등, 정말 다사다난했는데요, 좇아가는 것조차 힘들진 않던가요?


이이다 「M스테」부터 홍백까지 텀도 짧았고, 파이널 라이브 리허설도 있는 와중에 다들 무작정 하고 있었네요. 일들이 엄청난 기대로 눈앞을 홱홱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목표하는 곳으로 이끌어준 『러브라이브!』라는 작품


- µ's로서 『러브라이브!』와 함께 날려온 요 6년간은 이이다씨에게 있어서 어떤 6년이었나요?


이이다 인생이 변한 6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가 시작했던 당시에 제가 18살이었고, 대학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의 기간이 이 6년에 포함돼서 실은 TV 애니메이션 1기가 끝난 직후에 평범하게 취업활동을 하고 있었어요(웃음). 도중에 취직했더라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역시 이 일을 쭉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일들이 좋게좋게 거듭되고, 결과로서 제가 바라던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기간을 『러브라이브!』와 지냈네요.


- 멤버들과도 서로 자극을 해주는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이다 학생 시절의 이 시기에 함께 시간을 지냈다는 건 정말 중요하니까요. 멤버들의 구성요소를 전부 빨아들일 기세로 동료들로부터 다양한 걸 흡수한 것 같습니다.


- 린쨩에게 한마디 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떤 말을 해주겠습니까?


이이다 µ's 활동은 일단락 된 지금도 팬들 모두 린쨩을 엄청 사랑해주시기에 린쨩이 멀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여태까지 린쨩을 비롯한 µ's가 얼어온 길을, 앞으로 제 개인이 좇아가게 될 것 같네요. 활동하는 와중에 "함께 나아가자"라고 말한 동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지금은 프로필란에 "목표로 삼은 사람"으로 써놔도 될 정도로(웃음), "린쨩정도는 되어보고 싶다"라는 목표 같은 존재로 옮겨갔네요. 린쨩이 "따라와"라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라, 혹시 말을 건넨다면 "갈게 린쨩, 지금 그리로 갈 테니 기다려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이이다 이 인터뷰를 통해 다시 여러분과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예전에 나온 애니메이션으로 아직까지도 성지순례를 하시는 팬분들이 잔뜩 몰려들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러브라이브!』나 µ's도 20년 후, 30년 후까지 여러분의 안에 소중하게 남겨주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시간이 지나고서 추억 순례 투어 같은 것도 해보고 싶네요(웃음). 10년 후에도 쭉 µ's의 이이다 리호로서, 그리고 호시조라 린쨩의 이이다 리호로서 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문득 떠올려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번역 : Na2Cr2O7

링크 : http://bbs.ruliweb.com/game/81035/board/read/9431069


03. 미모리 스즈코


'꿈을 말로 해서 계속해서 노력하면, 손이 닿는 곳까지 다가갈 수 있다고 실감한 6주년이었습니다.'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야! 정진정명 동료다!


-’μ’s Final LoveLive!’부터 반년, 그 동안 μ’s의 곡을 접한적 있으신가요?


미모리 스즈코 거의 최근까지 μ’s의 곡을 듣지 않았어요. 여러 감정이 자신의 안에서 어지럽게 섞일꺼 같아서 그다지 들을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라이브 BD의 영상 체크도 좀처럼 볼 수 업ㅇ서서, 팩키지로 나온 것을 열지 않고 보관해두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여름에 한 자신의 투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간만에 μ’s의 노래를 듣고 싶었어요. 투어의 첫날이 삿포로여서,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 때에 팬미팅 왔었지, 즐거웠어’라고 생각하니 엄청 그리워져서. 간만에 들으니까 역시 좋은 곡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끝난 직후에는 정리를 할 수 없었던거군요.


미모리 감정의 정리는 못했지만, 그래도 날들은 지나가고,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투어도 시작하고, ‘어, 어, 어쩌지!’ 라고.


-멤버와 만난 일도 없었나요?


미모리 멤버는 자신의 라디오나 라이브에 와주어서 가끔 만나곤했어요. TV 애니메이션에서 2학년이 수학여행으로 오키나와에 갔으니까, 우리들도 가자고해서 2학년조로 오키나와 요리집으로 먹으러 갔다던가. (웃음) 의외로 저, 가장 모두랑 만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다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함께 있다는 느낌이 꽤 드네요.


-다시 한 번 파이널 라이브를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최후의 대무대, 긴장하지 않으셨나요?


미모리 줄곧 재미있었어요. 제가 작은 회장 쪽이 긴장해버리는 타입이라, 크면 클수록 긴장이 분산됩니다. 모두도 아마 라이브를 향해서의 반년간은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해야할까, 전개가 빨라서 마비되어 있던거 같네요. (웃음) 홍백 때도 하루 종일 즐거워서, 긴장은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인상이 남았던 파트는?


미모리 많이 여러가지가 있지만서도…’우리들은 하나의 빛(僕たちはひとつの光)’에서 꽃 안에서 스탠바이하고 있을 때, 모두가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야모니(イヤモニ, 모니터링 이어폰)하고 있어서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힘내자라는 기분이라. 그 때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진정명(正眞正銘), 거짓 없는 동료들이구나 라고. 평소의 자신이라면 부끄럽다고 생각할 것도, 그 때는 감정적인 기분이 되어서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2일차의 최후의 순간은 어떠셨나요?


미모리 그걸로 저의 청춘이 막을 내려가는구나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청춘, 고마워’같은. 막이 천천히 슥하고 내려가는 동안 ‘모두가 보이지 않는구나…’라고 꽤 뭉클해졌습니다.


-막이 내려간 종연 직후의 상태는 어떤 분위기였나요?


미모리 모두가 원이 되어, 엄청 울어버렸어요. 캐스트 뿐만 아니라, 스탭 모두가 모여서 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서도 메이킹 영상을 찍어뒀으면 좋은 그림이 찍혔을텐데, 아무도 그럴참이 아니여서. (웃음) 객석부터 모두가 ‘μ’s! μ’s!’라고 콜해주셔서, 누군가가 ‘모두가 부르고 있어. 나가보면 안될까나’라고 말해서, 저도 ‘안될꺼 같아!’라고 말하면서 울어버렸습니다.


캐스트 똘똘 뭉쳐 “스포츠 근성”으로 해온 6년간


-되돌아보아 프로젝트가 시작 했을 때, 우미의 인상은?


미모리 비쥬얼을 보고, 우미쨩이 엄청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때까지 연기한 캐릭터와 비하면, 머리의 색도 어른스럽고, 성격도 야마토 나데시코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역으로 엄청 어려움을 느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우미쨩과 사이좋게 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바로 잡을 순 없었습니다.


-최초로 연기한 것은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僕らのLIVE、君とのLIFE)’의 레코딩이었나요?


미모리 그렇네요. 노래를 가장 먼저 수록해서, 그 후 보이스드라마를 녹음했습니다. 그저 맨처음일 때는 아직 프로젝트 자체도 어떤 것이 되어가는지 알 수 없어서, 수수께끼였습니다. 드라마CD가 시작하고나서 우미쨩의 재밌는 부분, 실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의외로 장난기있는 부분도 틈이 보여와서 ‘우미쨩을 연기하는게 재밌어졌어’라고 생각했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 제1화의 아후레코(애프터 레코딩)의 추억은?


미모리 제1화는 엄청 시간이 걸려서, 밤 늦게까지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지만, 「러브라이브!」에서는 첫 아후레코였던 분도 있으셨고, 저도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꽤 힘들었던 인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난죠씨가 자신의 장면을 확실히 녹음을 끝내고도 최후까지 남아주어서, 9명 전원이서 녹음했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μ’s는 9명이 하나였었네요. 최초에 ‘이 애니메이션은 어떤 의미 스포츠 근성이야’라고 설명을 들었었데, 그 정신을 우리들도 받아들여서 부활동같은 스타일로 수록했었네요.


-그렇게 길러진 멤버들과의 인연도 있고, 또 아후레코를 거쳐서 우미와의 깊은 관계가 되었던걸로 생각합니다.


미모리 그렇네요. 제가 잠깐 말했던 말이 우미쨩의 성격에 반영되어가는 일체감도 생겨나서. 반대로 저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미쨩이 매력적으로 보일까나라던가, 귀여울까나라던가, 그런 것을 생각해왔었네요.


-여태까지의 곡중에서 인상에 남는 곡은 있으신가요?


미모리 ‘Wonderful Rush’는 힘들었습니다. μ’s는 자신이 부르는 파트 이외에도 한번 풀로 녹음하기 떄문에, 어쨌든 파트가 많아서. 저는 보통 착착 레코딩할 수 있는 타입이지만, ‘Wonderful Rush’ 때는 일번 타자로 몇 시간이 경과해도 끝나지 않고, 지쳐버려서. 당시는 랩(Rap) 같은 것에 도전한 적이 없었고, 텐션이 높은 랩같은건 냉정한 우미쨩이랑 연결지을 수 없어서 엄청 어려웠습니다.


-우미쨩답게 랩하는 것은 확실히 어렵죠.


미모리 멤버 각자각자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미쨩에게는 랩이 들어간 노래는 엄청 익숙하지 않아서. ‘Super LOVE=Super LIVE!’도 고생했었네요. 그럴 때는 대체적으로 니코쨩이 대활약해서, ‘활발한 계열의 아이는 좋겠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웃음)


-노래뿐만 아니라, 2012년의 1st 라이브에서 댄스를 하게 되었을 때는 어떠셨나요?


미모리 저는 ‘좋아!’라고 느꼈었네요. 계속 댄스를 하고 있어서, 드디어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순간이 온게 기뻐서, 엄청 들뜨고 두근두근 했어요. 댄서 분이 춤추는 영상을 사전에 받았기 때문에, 그걸 보면서 안무를 외워서. 첫 레슨에서 선생님에게 ‘확실하네요’라고 칭찬받은 것이 엄청 기뻤습니다. 칭찬받으면 성장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텐션 높아져서. (웃음)


-그 라이브는 그 후에 아니사마로 흘러가는 것도 포함해, 큰 전환기였네요.


미모리 1st 라이브는 관객이 모여주실지 어떨지 알 수 없어서 불안했었지만, 저희들이 어두운 곳에서 살짝살짝 포지션을 이루고 있을 때에 엄청난 환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걸로 놀래서 ‘우리들을 원하고 있어!’라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에는 꽤 용기를 가질 수 있던 해였네요. 그때까지는 어떻게 될까나, 같은 것이 마음 한 가운데에 있었어요.


-그 외에 지금까지 인상에 남았던 라이브가 있으신가요?


미모리 3rd 라이브 때의 2학년 3명이서 ‘START:DASH!!’를 부른 것이 고민했던 것이 많습니다. TV 애니메이션과 같은 의상을 입고, 노래에 이어지는 조금의 연기를 넣기도 했었는데, 그 이후로 3명이서 한적이 없네요.


-그 후에는 확고부동한 존재가 되어서...2015년부터 돔에 이르기까지는 엄청 위세가 대단했었어요.


미모리 2015년에는 μ’s YEAR였었네요. 뭐랄까 믿겨지지 않은 기분이라, 도쿄돔에서 정말로 할 수 있게 된거라던가, 정말로 홍백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라던가, 작년의 여름 쯤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어쨌든 무작정 발버둥치며 2015년이 끝났는데, 몇년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러브라이브!」의 추억이라면 2015년이 팟하고 떠오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농축된 해입니다.


-6년간을 달려나온 지금, 미모리 씨에게 있어서 μ’s란 어떤 존재입니까?


미모리 청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꿈’이라는 단어를 현실의 것으로 해주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던 것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힘으로 문뜩 떠올랐다고 해야할까, 그런 주변의 힘이란 대단하구나라고.


-꿈은 이루어진다, 의 설득력이군요.


미모리 아니 정말로!  멋진 인생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은 어른 9명과 평범했던 우미에 향해


-새삼스럽지만 멤버 8명에 대해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미모리 μ’s의 멤버는 저를 포함해, 엄청 운이 좋은 9명이라고 생각하네요. 모두 운이 좋은  사람으로 있어주어서 고마워라고. 물론 노력도 했기 때문에, 열중한 노력이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운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공은 할 수 없지 않았을까라고.


-이 9명이 아니면 안된다는거군요.


미모리 모두 퓨어하고, 꿈에 향해서 올곧다고 해야할까, 완벽주의자가 많네요. 저도 그렇지만 어느정도 어른이고, 각각 좌절도 경험도 해왔습니다. 인간적인 점이라면 비교적 모두가 너무 간섭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들 같은 질투라던가 따돌림도 없었고, 개방적인 좋은 거리감으로 좋은 어른의 사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미쨩에게 대해서 지금 한마디 한다면?


미모리 최초는 의외로 수수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설마 여기까지 햇빛을 받게 되어(알려지게) 되어 개화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사람을 보는 눈이 없지 않았을까라고도. (웃음)


-여기까지 바뀐 것은 미모리 씨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모리 그렇네요. 제가 좀 더 우미쨩같은 인간이었으면, 계속 심플한 여자아이가 되어있었을지도 몰라요. 돌아보면 애드립부터 우미쨩이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Wonderful Rush’에서 우미쨩이 싸움에 진 무사의 영혼이 된다는 보이스 드라마가 있는데, 그 때 수록에서는 꽤 자유롭게 해버렸었네요. 거기서부터 조금은 익살스러운 노선이 되어, 얼굴장난(顔芸)이라던가도 절대 저의 니코나마의 영향이라고. (웃음) 제가 바로 개그를 치고 싶어지는 성격이니까 이렇게 되버린거라면, ‘만나서 다행이네, 우미쨩. 나에게 감사해도 좋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미모리 씨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거네요. (웃음)


미모리 엄청나게 거만하네요. (웃음) 저도 우미쨩과 만나서, 조용하고 쿨한 연기 등, 성우로서 공부가 된 부분도 잔뜩 있었기 때문에, 서로 WIN-WIN하는 관계를 쌓은게 아닐까나, 라고.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메세지를 부탁드립니다.


미모리 저 자신, μ’s와 만나게 되어 성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확 바뀌었습니다. 아주 큰 꿈은 이뤄지지 않는걸까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부분도 있지만, 꿈을 말로 해서 노력한다면, 의외로 손이 닿는 곳까지 다가갈 수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는 6년간이었습니다. 응원해준 여러분에게 있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된다면 기쁩니다. 저도 μ’s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 적어졌지만, 작품은 그 사람이 봤을 때가 살아있을 때이니까, 자신이 없을 때같은 경우에 다시 보아주셨으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은 몇년이 지나도 좋은 작품이니까 이 앞으로도 계속 봐주셨으면 하고, ‘저희들에 대해서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웃음) 가끔은 기억해주신다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던 것이,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힘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03. 우치다 아야


"힘들 때나 벽에 부딪혔을 때 떠올려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토리다움"을 추구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 "µ's Final LoveLive!" 때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여태까지의 6년을 돌아볼 타이밍이 있었나요?


우치다 아야 벌써 반년이나 지났네요....... 파이널 라이브 BD를 발매날 조금 전에 받아봤는데요, 도착하고 바로 틀어볼 용기가 나질 않아서 2~3일은 그대로 놔뒀어요. 발매날 전에 보긴 봤지만, 관객 입장에서 보고 받아들여야 된다는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긴 라이브였던 건 아니까 따뜻한 마실거리도 준비하고 "느긋하게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몸을 앞으로 기울이게 되고, 마실 걸 마실 틈도 없이 순간순간마다 여기저기로 눈이 가다보니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도 아까울 정도였어요(웃음).


- 다시 보게 되니 어떠셨나요?


우치다 제가 찍히지 않는 부분에선 "이 때 여기 가사 실수한 얘가 너무 귀여워서 눈물이 난다!"라던가, 거의 한 명의 시청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 볼 땐 왠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여긴 깔끔하게 잘 됐네"라던가, "멀리서 찍은 뒷모습은 코토리쨩처럼 보이네!"라던가, 꽤 자세하게 체크했는데요, 저의 다양한 모습이 나와서 기쁘다고 할까요...... 복잡한 심정이었네요. "저번엔 솔직하게 볼 수 없었으니까 가볍게 보자"라던가, "이 곡은 다시 한 번 보자"라던가, 이래저래 몇 번씩 돌려봤네요.


- 파이널 라이브까지 준비기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우치다 솔직히 『러브라이브!』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니 어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 곡은 마지막 곡이구나"하고 리허설 도중에도 묘하게 숙연해지기도 하고요. 팬분들께도 물론 그렇지만, 제게 있어서도 마지막이니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여태까지 이상으로 코토리쨩다운 움직음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다 같이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있다 보니 그 안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고, 저 스스로 최고의 추억으로 남을 라이브로 만들고 싶었어요. 여러가지가 다다닷 달려들어서 "우와앗!"하다가 끝나버리는 건 싫겠지 싶어서요. 돔에서 처음 안무를 하게 된 곡도 있다보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평소보다 제 자신의 의견을 많이 말하게 됐습니다.


- 파이널 라이브에서 인상에 남은 씬은 있었나요?


우치다 "우리들은 하나의 빛"이 시작하기 전에 9명끼리만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객석에 있는 모두에겐 보이지 않는 곳,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꽃에 쌓인 채로 이동하던 멤버들만의 공간이 가장 리얼하게 느껴져서 인상에 남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선 그려지지 않은 무대 뒤입니다만 "작중 µ's도 이런 느낌이었을까"라고 생각하니 그 때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울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지만 결국 마지막엔 울어버렸네요. 그래도 스스로도 멋진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멤버들이 정말 좋은 표정으로 울고 있는 걸 보고 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지구나 싶어요. 미모링은 평소에 그리 울지 않는데, 코멘트를 하고 있을 때 슥하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 때 제가 우연히 그 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눈물이 너무 예쁘게 흘러서 "와아!"했어요. 말로 다 할 수 없다라는 말 그대로였는데, 그 때 여채까지 해온 것들이 전부 아름다워졌다고 느꼈습니다.


- 끝나고 나선 어떤 상태였나요?


우치다 해냈다고 하기엔 또 다른데요, 굳이 따지자면 1일차 끝나고서가 문제였습니다. 아쉬움을 남기기 싫다고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2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안 나왔거든요. "어떡하지!"라고 했죠....... 1일차밖에 못 오는 사람도 있다보니 2일차가 있단 걸 차마 생각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1일차 라이브는 1일차에서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처럼 몸이 따라가주질 못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온 힘을 다했다는 거구나 싶어요. 영상을 보면 틈틈마다 엄청 즐겁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죠(웃음).


"코토리쨩이다!"를 목표로 한 나날


- 거슬러 올라가서 코토리와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땠나요?


우치다 이름만 들어도 멤버들 중에서 부드러운 존재일까 상상하기도 하고, 꼬리 같은 게 붙어있길래 조금 멋쟁이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정보가 없다보니 일러스트랑 이름 분위기에서 어떤 아이일지 상상했어요.


- 아직 성격 같은 것도 정해지지 않았었나 보군요.


우치다 하나하나 더듬어가던 과정이었지만 전 애초부터 「전격 G's magazine」의 독자 참가형 기획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에 참가할 수 있는 게 기뻤고, 독자 여러분의 투표를 통해 앞으로 자라날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고민하는 것도 좋진 않겠다 싶었죠. 어떻게 자라날까 두근두근거렸네요.


- 어떤 의미론 우치다씨는 기획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한 멤버라는 거군요(웃음).


우치다 그래도 투표로 순위를 매긴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아무래도 일희일비하게 되잖아요. 첫 번째 투표에선 9명 중에서 9위라서 "하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죠(웃음). 그 때 제가 좀 더 코토리쨩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9명이서 노래할 때 솔로 한 구절이라도 코토리쨩이라고 눈치챌 만한 표정을 불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 때까지 9명이서 노래하려고 하면 키가 낮은 것 같아서 코토리쨩의 둥실둥실한 부분을 내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baby maybe 사랑의 버튼」은 템포가 느긋하고 부르기 쉬워서 "이런 식으로 부르면 되게 코토리쨩스럽게 불리는구나"하고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그런 코토리다움을 처음 내보이게 된 1st 라이브에선 어떤 기분이셨나요?


우치다 처음엔 아직 자신이 없어서 관객분들이 와주시긴 할까 하는 불안함이 컸습니다. 그 불안이 Printemps 3명이서 『러브라이브!』로서 처음 이벤트를 했을 때부터 있었어요. 그래도 그 때 수용인원을 꽉 채운 80분이 와주셨습니다. 그게 너무 기뻐서....... 그 때부터 라이브 준비를 하는 도중에 조금씩 저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한 걸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이 생긴 것 같아요.


- 그 예감대로 µ's는 점점 큰 존재가 됐습니다만, 심정의 변화는 있었나요?


우치다 저 같은 경우엔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아이돌이 아닌 성우를 동경해서 이 업계에 뛰어들었으니 겉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선 조금 망설이기도 했어요. 무대나 뮤지컬처럼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마음가짐으로 노래하는 게 미나미 코토리쨩의 역할의 우치다 아야로서 정답이라고 생각했던지라 코토리쨩다움을 얼마나 재현해내느냐를 많이 의식했었죠. 라이브에서 애니메이션과 완전히 똑같은 안무를 한다면 단순히 춤만 춰선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 부분에서 코토리 역으로서 연기가 필요다보니 아이돌 그룹의 영상도 보고, 둥실둥실하고 귀엽게 보이는 애의 움직임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토리다움"을 추구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 주변에서 열광하는 가운데에 철저히 코토리라는 존재와 일체화하는 스테이지를 생각했다는 거군요.


우치다 네. 점점 인기가 많아지는 코토리쨩에 대해 제가 따라가는 느낌도 있었고, 불안하기도 했었습니다. 얼굴도 다르고 스타일도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닌데 같은 의상을 입고 잡지에 나가기도 하다보니 보는 사람한텐 "안 귀여워"라는 말을 듣고 축 쳐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가 가진 범위 안에서 최대한 해보려던 게 처음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공연하게 되었을 때 도리어 터져나오게 됐습니다. 회장이 넓어지다보니 콩알만하게밖에 안 보인다면 오히려 실루엣이라도 비슷하게 하면 멀리서 보기엔 코토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펴고 탈색까지 하고서야 코토리 색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 아까 말씀하셨는데, 파이널 라이브 BD를 보시고 스스로도 코토리답다고 생각하게 되신 거네요.


우치다 여태까지 헤어메이크를 해주시는 분과 함께 몇 번씩 고쳐나갔거든요. 돔에선 붙이는 가발까지 붙여서 머리 길이를 늘리고, 염색도 깔끔하게 하고, 벼슬도 붙여서 진짜 코토리에 가장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코토리쨩은 의상쪽이라 전 그 부분에도 고집하는 게 있었어요. 이번에 빨리 갈아입어야 될 일이 많다보니 두껍게 껴입어야 되는 의상이 많아서 몇 번씩 의상 담당하시는 분이랑 상담을 했습니다. 「꼬옥하고 "love"로 접근 중!」 의상은 특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여기 파니에()가 좋아요!"라던가 "여기가 두꺼우면 애니메이션 그림이랑 실루엣이 달라요!"라던가, 끈질기게 건의를 했었죠. 그렇게 머리모양이나 의상에 고집을 부려서 BD 영상에서 뒷모습을 봤을 때 진짜 코토리쨩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스스로도 만족했습니다. "내가 이걸 보고 싶었던 거구나! 이런 작품 어디 없지"라면서요(웃음).


무적의 9명이 모인 기적의 작품


- 우치다씨에게 있어서 µ's 멤버는 어떤 존재인가요?


우치다 정말 무적의 9명이라고 생각합니다. µ's 모두를 대단하다고 여겨요. 평소에도 생각하는 거지만 팬미팅 때 다시금 이 9명이 모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의 본업은 뭘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도, 춤도 잘 하고, 이야기도 재밌잖아요. 한명한명에게 존경할 만한 부분이 많이 있고, 개성 넘치는 9명이 모여있다 보니 잘하는 것도 제각각이예요. "내가 실수해도 얘가 커버해주겠지" 싶은 안정감도 있고, 이상하거나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멤버끼리 무언의 연결고리로 통하는 듯한 팀워크도 엄청났죠. 남얘기 같지만서도 정말 "뭐하는 녀석들이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 한편으로 6년간을 함께 걸어온 코토리는 어떤 존재인가요?


우치다 뭘까요, 신기한 느낌이네요. 작품은 일단락을 맞이했지만 쭉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생명을 불어넣는다"라고 곧잘 말하는데요, 함께한 추억이 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즐겁기도 함께 하며 즐겨온 것들은 쭉 남겠죠. 어릴 때 본 TV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변함없이 마음에 남아있듯이요....... 저와는 확실히 다르지만, 코토리가 있다면 힘낼 수 있다, 그런 인생의 보물 같은 존재일까요. 제가 모르는 부분도 여러 사람의 보물이 되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보물이 되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메시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치다 파이널 라이브가 끝나고 슬퍼해주시는 팬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반년이 지나고, 저는 상당히 상쾌하게 갠 마음으로 지금 인터뷰에 답변할 수 있습니다. 그 스테이지를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러브라이브!』는 기적적인 작품이라고 자주 일컬어지는데요, 라이브 마지막에 다 함께 합창하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기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BD를 다시 봐도 "이렇게 좋은 곳에서 끝난다고!?"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무척이나 멋진 마지막이였어요(웃음).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사랑받은 작품은 어딜 가도 찾아볼 수 없을 거 같고, 그런 작품을 만들어주신 건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신 여러분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CD가 400장밖에 팔리지 않던 때부터 한 명, 또 한 명이 좋아해주셨기에 이렇게 큰 꿈을 꿀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멋진 추억으로서, 함께 청춘들 달려온 일원으로서, 그걸 잊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들은 항상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으니까 힘들 때나 벽에 부딪혔을 때 『러브라이브!』를 떠올려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그런 존재로서 계속해서 빛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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