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난죠 요시노


「6년간 함께 걸어왔으니 "에리는 지금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야세가 빛날 수 없어! 그런 마음가짐으로 스테이지에 섰습니다


- "µ's Final LoveLive!" 때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여태까지의 6년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나요?


난죠 요시노 그 날을 경계로 일단락......이라고는 하지만 극적으로 변한 건 없었네요. 학생 시절 때 봄방학을 하면 「정말 학교 안 가도 되는구나」싶은 정도예요. 그러면서도 항상 눈앞의 새로운 일들이랑 마주하는 게 최근 제 상황이었어요. 한편으론 열심히 응원해주시는 관객분들 중에서도 어디선가 µ's의 흔적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듯한 격한 "µ's로스"를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걸 다른 작품이나 개인 활동에서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응원해줬다고 느끼는 걸 돌아보는 거라고 말한다면 돌아보는 겁니다만, 실제론 "아직 반년밖에 안 지났구나"라는 느낌이 듭니다.


- 다시금 여쭤보는데, 파이널 라이브까진 어떻게 지내셨나요?


난죠 우선 도쿄돔이라는 게 감당하지 못 할 정도로 거대해서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저 "여기서 이틀간 마지막 라이브를 하고, 넓은 회장이 관객분들로 메워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전날에 리허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이다보니 멤버들도 모두 "어떡해야 여태까지의 『러브라이브!』나 µ's의 좋은 점을 라이브에서 전해줄 수 있을까"라며 직전까지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보다도 "좀 더 이렇게 보여주는 게 더 잘 전해지지 않을까"하는 정신적인 노력이 여태까지 했던 라이브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각자가 여태까지 연기해온 여자아이들을 재차 마주하며 만들어낸 라이브 아니었나, 그런 생각입니다.


- 당일에 관객들을 보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난죠 저는 스테이지에서 본 『러브라이브!』의 가장 큰 특징이 아홉 색깔로 빛나는 객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그 무대가 도쿄돔이라 엄청 넓은 곳에서 여러 색깔이 보였고요....... 리허설과 실제 라이브의 결정적 차이는 관객들이 있고, 펜라이트를 들고 있다는 거예요. 몇 달을 아무런 색깔도 없이 연습해온 걸 당일엔 그렇게 예쁘게 빛나는 곳에서 할 수 있다는 거죠. 이쪽으로도 감동받게 됩니다.


- MC에서 난죠씨가 "9명이 아닌 18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라이브에서 에리와 있다는 느낌이란 어떤 거였을까요?


난죠 당시에 에리와의 거리감이 어땠느냐는 건, 실은 라이브에 필사적이어서 잘 기억이 나진 않네요.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리허설 때부터 캐스트진은 모두 자기가 연기하는 아이들을 느껴주길 바라며,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의 "µ's"를 재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 노력한다기보단 아야세 에리를 위해 노력한다, 이런 거지요. 가령 제 자신의 라이브였다면 좀 더 설렁설렁 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그 땐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야세가 빛날 수 없어, 그녀를 위해서 노력하고 싶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스테이지에 서있었네요.


- 그 퍼포먼스는 그런 마음에서 나왔다는 거군요


난죠 스테이지에 서있을 땐 순수하게 즐겁다는 마음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360도에 관객분들이 있고, 계속 웃게 되고, 때론 눈물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어떤 면으론 신을 보는 듯한 눈으로 스테이지를 보기도 하곤 하는 거죠. 그러면 저도 자연스레 할 수 있는 만큼 뒤쪽이나 위쪽 자리 근처까지 가서 "실제로 µ's를 만났다"라는 체험을 전해주고 싶었고, 그에 필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로감이 든 것도 라이브가 다 끝나고서 호텔에 돌아가고 난 후에야 "...... 내일도 있었지!"라고 한 거였어요 (웃음).


아야세 에리를 위해 자신이 노력한다


- 거슬러올라가서 처음에 에리와 만났을 때 인상은 어땠나요?


난죠 저는 에리처럼 "살짝 언니"라는 역할을 연기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애가 걸렸구나 싶었어요. 다른 8명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까 생각했죠. 6년 전이라면 목소리 높고 귀여운 분위기의 여자애들이 인기가 많던 때라서 "에리쨩은 인기 얻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죠. 이 애의 매력을 어떻게 끌어내고 어떻게 연기해야 보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엄청 고민했었네요.


- 노래도 에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인상에 남는 곡은 있나요?


난죠 그렇게 질문받을 때마다 계속 「START:DASH!!」라고 대답해왔었는데, 마지막까지 해보니 「우리들은 하나의 빛」도 인상애 남고, 레코딩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네요. 제 안에선 어렴풋하게 "어른스럽게 연기하자"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레코딩에 들어가니 "어쨌든 활기차게!" 해달라셨습니다(웃음). 아직 성격이 정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여기서 활기차게 했다간 전 그 뒤로 갭에 고생할 것 같아서 제 나름의 에리를 이미지화하고, 그 성격의 분위기에서 기운차게 하는 식으로 미묘하게 가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그 시점에서 노래하는 방법이 달라졌더라면 지금의 에리는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난죠 처음에 그렸던 막연한 이미지가 찰카닥 들어맞게 된 게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서이네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전 쿨하게 연기하려고 했는데, 첫 보이스 드라마 무렵엔 허당 같은 느낌이 좀 있어서.......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고서야 간신히 "그래그래, 내가 하고자 했던 아야세가 이거야!"라고 할 수 있었죠(웃음).


- 학생회장스러운 쿨한 분위기 말씀이신가요?


난죠 솔직하지 못 하고, 좀처럼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 하고 서투른 부분이 아야세 에리의 귀여운 부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 때까지 해왔던 "허당치카"가 나올 타이밍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첫 인물상 묘사라던가, TV 애니메이션에서 거리가 줄어드는 과정 같은 걸 보며 "이거야 이거! 이걸 해보고 싶었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 처음엔 대립축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멤버들 사이에서도 에리가 갈등하는 씬이 인상적이었죠.


난죠 고민하길 좋아하는 거겠죠. 정말로 괜찮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해보자!"라고 말하는 호노카라던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하는 멤버들도 있는 와중에 "정말로?"라고 하는 식으로요. 제게도 그런 점이 있어서 상당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 방금 말씀하신 그런 공감을 포함해서 지금 에리와 난죠씨는 어떤 관계인가요?


난죠 때론 제 애 같기도 하고, 때론 반쪽 같기도 하고, 제 자신 같을 때도 있어요. 작품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멤버가 캐스트에게 다가오는 게 있다고 있달까요, 연기하는 제가 에리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물색 물건을 고르게 되기도 해요. 요 6년간 서로가 융합하게 된 부분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에리의 관계성을 다시금 생각해볼 틈도 없이 당장 눈앞에 닥친 라이브나 엄청난 수의 곡을 레코딩을 소화해내느라 필사적이었고,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에리고 저디까지가 저인지가 모호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파이널 라이브에선 "아야세 에리를 있는 힘껏 빛내주고 싶으니까 내가 그걸 위해 노력한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6년 중에서도 작년은 그야말로 숨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고조되었는데요, 그런 흐름을 어떻게 보셨나요?


난죠 초창기의 "아야세 에리를 어떻게 연기할까"라는 망설임이나 제가 아무리 "귀엽잖아!"라고 말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나날들이라던가(웃음), 그런 걸 잊어선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전 『러브라이브!』 때문에 성우가 된 게 아니고, 병행하고 있는 다른 작품의 캐릭터와 마주하기도 하니까요. 그게 전부 『러브라이브!』의 기세에 휩쓸렸다간 순식간에 제 자신마저 휩쓸려 없어져버릴 것 같아서, 냉정하게 있어야 된다는 위기감이 있었네요. 규모가 커지는 속도도 엄청났고, 스케일도 차원이 달랐던 만큼 무서웠던 부분도 있었죠.


- 그 땐 평소에 애니메이션을 안 보는 사람들도 『러브라이브!』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죠.


난죠 "대단하네"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저는 캐스트로서 관여한다는 생각이 강했스니 TV에서나 미디어에서 나마µ's(원문 : 生身のほうのµ's)를 알게 됐다고 해도 그게 애니메이션까지 이어졌으면 싶은 바람이 컸어요.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동지"로서의 말


- 농밀한 6년간을 달려온 지금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난죠 성우 일의 일환으로 있기도 하지만, 그걸 어느 정도 뛰어넘은 라이브이기도 했고, 평범한 성우 일을 했더라면 경험 못 했을 일도 잔뜩 했죠. 배역으로서도 성우로서도 엄청난 일도 물론 있었지만, 정말 여러가지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µ's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도 많이 있고요.


함께 "µ's"를 경험해온 동료로서, 앞을 바라보고 힘내주길 바란다


- 그런 만남 중 하나가 캐스트 8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난죠 역시 아직까지도 약간 가족스러운 감이 가시질 않긴 합니다. 정말로 같은 밥통의 밥을 먹은 셈이고요(웃음). 거의 매일 함께 있는 시간이 지나갔으니 이전만큼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어딘가 현장에서 얼굴을 보면 안심된다고 할까요. 다른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도 또 다른 진정되는 느낌이에요.


- 함께 6년간을 보낸 에리에 대해서 한마디 해준다면?


난죠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일까요. 6년간 계속 바로 옆을 걸어와서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다시 어떤 길에서 마주쳐서 만나면 좋겠다 싶긴 한데요. 그렇게 오랫동안 곁에 있던 사람과 떨어져버린 건 졸업이랑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정말로 지금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싶어요. 2차원이라고 말한다면 2차원이겠지만, 정말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 같아서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 마지막에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난죠 그 뒤로 µ's로스는 어떠신가요?(웃음). 정말로 눈물이 마를 정도로 운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엔 저희를 몰랐던 분한테서 "최근에 알게 됐는데, 왜 몰랐는지 후회한다"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해요. "저는 대체 왜 라이브에 가지 않은 걸까요!" 같이요. 저로선 "그러게 보라고 했잖아!"라고 하는 식이지만요(웃음). 그렇게 다양한 µ's 팬이 있다보니 6년간 계속 좇아와주신 사람들도 있고, 그 중 몇 년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지낸 시간이 많든 적든, 그 마음은 진짜라고 생각해요. 파이널 라이브가 끝나고 아직 슬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µ's가 소멸한 것도 아니고, 함께 만들어온 추억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특히 그렇게 "슬퍼...... 슬퍼서 내일이 깜깜해......"라는 사람에겐 함께 µ's와 지내온 동지로서, 너무 울지 말고 앞을 바라바줬으면 합니다. 또 언제 어디에선가 µ's가 여러분의 앞에 나타나게 될 날이 있다면 그 때 그 6년간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 여러분도 그렇고, 연기한 저희도 그렇습니다. µ's를 경험한 동료로서, 앞을 바라보고 힘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모두 각자의 시간을 보냈을 테니, 이제 다음으로 열정을 쏟을 걸 사람도 있을 테고, 여전히 끝난 것에 개운치 않아서 앞으로 어떡할지 불투명한 사람도 있겠죠. 마음이 좀 정리됐을 때 6년간을 되돌아보며 "서로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변함없이 µ's와의 추억이나 노래를 소중히 여기며 각자의 생활에 힘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번역 : Na2Cr2O7

링크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emitsun&no=1734


01. 닛타 에미


'각각의 시간 안에서 이야기와 만난 순간이, 「러브라이브!」 라는 꿈의 시작입니다.'


호노카의 등을 계속 쫓아와서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생각듭니다.


-"μ’s Final LoveLive!"에서 반년, 다시 생각해볼 기회는 있으셨나요?


닛타 에미 저, '도쿄돔이 끝난다면 「러브라이브!」의 팬이 되자!'라고 계속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돔 공연의 다음 날은 라이브뷰잉에 가기도 하고, 그 후에도 TV 애니메이션을 제1화부터 되돌아보거나 해서 작품에 닿을 기회가 있엇지만서도, 쓸쓸하게 되어 떠올리게 되는 느낌은 아니었네요. 하지만 새삼스럽게 돔의 영상을 볼 때에, '정말 엄청난 경험을 했구나, 우리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에 도쿄돔 공연이라고 들었을 때 감상은 어떠셨나요?


닛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μ’s가 아키바돔에 서있는 모습은, 사실은 애니메이션에서 그려지지 않았죠. 저는 계속 μ’s를 귀감으로 삼아와서, 호노카의 등을 계속 보아왔습니다. 호노카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라서, 지금까지는 뒤쫓자라고 했지만, 처음으로 그녀들보다 큰 스테이지에 저희들이 서서 그녀들의 등을 쫓아 가는 것이 아닌,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답(未踏)의 경치라는 것을 이중으로 느꼈던거군요.


닛타 ‘도쿄돔’ 이라는 이름에 위축되는 느낌도 있었지만, 라이브의 MC에서도 말했듯이, 「러브라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모인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엄청 넓었지만 스테이지를 이곳저곳 다닌다던가, 토롯코(*무대에서 타고 다니던 차)에서 돔 내를 이동하던가, 응원해주는 여러분의 얼굴이 보이게 되어서. 지금이라도 그 경치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리허설 등의 준비는 어떤 상태였나요?


닛타 돔을 향해서의 리허설은 스케쥴이 꽤 타이트해서, 하지만 도쿄돔이 넓어서 아무리 넓은 스튜디오에서 하더라도 당일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실제의 스테이지에 섰을 때부터 드디어 ‘도쿄돔에 섰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의 안에서도 돔을 상정하며 걸어보지만, 물론 돔 정도의 넓이는 아닙니다. ‘이 거리를 몇번 왕복하면 스테이지의 이쯤에 간다’라고 들어도,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경치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웃음)


-진정한 의미로 서보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거군요.


닛타 네. 하지만, 모두가 의견을 서로 내어 만든 최고의 세트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불안도 있었지만, 곡을 다시 들을 때마다 ‘괜찮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방은 터프한 스테이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멤버도 관객도 웃는 얼굴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기분이 어떠셨나요?


닛타 저, 「러브라이브!」의 스테이지에서는 울어버릴 때가 많지만, 1일차는 ‘울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오늘밖에 없어!’라고 생각해서 참았습니다. 하지만, 2일차에는 ‘코우사카 호노카 역의 닛타 에미’로는 있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네요. 호노카를 잘 연기하는 것보다도, 자기자신을 포함해서 최고의 시간으로 하자라는 기분으로 임하였습니다.


-1일차를 마치고 , 2일차는 이제 즐겁게하자라고 하는.


닛타 ‘Snow halation’의 최후, 객석이 흰색에서 오렌지로 바뀌는 순간을 멤버 중에 저만이 정면을 향하여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도 지금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거 같네요. 라는 것은 풍경으로서는 눈에 들어오지만, μ’s로서 스테이지에 설 때는 PV를 떠올리면서 호노카가 있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해왔으니까요.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이 있어서의 μ’s라 언제나 거기에 몰입하여 보고 있는거군요.


닛타 하지만, 돔의 2일차에서는 닛타 에미로서 객석을 보았습니다. 멤버조차 볼 수 없는 경치를 혼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사치를 맛보는 것은 지금밖에 없어!’라고. 그러니까 라이브의 영상을 보면, 지금까지 중 가장 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예뻤어요! 처음으로 회장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걸 도쿄돔에서 한다는건. (웃음)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1st 라이브를 거쳐 “시작한” 순간


-새삼스럽지만 호노카와 처음 만났던 때의 인상을 들려주세요.


닛타 사무소에서 오디션을 받았을 때는 처음 그림을 보고, 최초의 설정으로 ‘보통의 여자아이’라고 쓰여있던 것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돌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보통의 아이일 리 없어라고.


-거기서부터 긴 교류를 거쳐 인상도 바뀌어 왔다고 생각합니다만, 닛타 씨의 안에서는 호노카다움을 얻은 것은 어느 때셨나요?


닛타 호노카다운 노래 방법을 계속 자신 안에서도 모색해와서, ‘이거다!’라고 채널이 완벽하게 맞은 감각을 얻은 것은 ‘꿈 없는 꿈은 꿈이 아니야(夢なき夢は夢じゃない)’(TV 애니메이션 Blu-ray 제1권 특장한정판특전)네요. 적극적인 것밖에 없는 에너지의 혼으로, ‘파이트야!(ファイトだよ!)’라는 말이 태어난 곡이기도 합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기까지는 단편적인 이야기으로 밖에 그녀들을 알 수 없었지만, 이른바 ‘밝고 활기찬’이라는 연기로는 정리할 수 없는 아이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기부터 제1화의 아후레코(애프터 레코딩)를 끝내고, 호노카에 가까워졌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제1화의 아후레코는 큰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닛타 그렇게 고생했던 아후레코는 없지 않았을까...하지만, 호노카다움을 얻은 것은 그 아후레코와 제1화 삽입곡의 ‘나아가자→내일로(ススメ→トゥモロウ)’에 만났던 것이 컸습니다. 인생을 바꾼 한 곡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TV 애니메이션의 첫번째 소리가 그것을 불렀던 것이기도 하고, 거기에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이 매우 집약되어 있습니다. 감독에게 ‘이 작품의 도입부분이기도 하니, 뉴트럴하게, 퓨어하고 여러 느낌이 드는 창법으로 해주세요’라고 들어서 다시 녹음했었어요. 그 디렉션(방향)으로 ‘그런가!’라고 이해했습니다.


-그 창법이기 때문에 시작했던거군요. 최근의 아후레코에서는 특별한 감정은 없으셨나요?


닛타 작년 12월에 홍백가합전에 돔 공연의 앞부분에 흐르는 애니메이션을 같이 녹화했는데, 그 때는 완성이 기대되어 보통의 팬의 시선으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돔 공연의 영상은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뭉클해져서, 리허설의 날에 그것을 떠올려서 ‘사전에 보아두지 않으면 스테이지에서 울어버릴꺼 같은 패턴이다!’라고 생각해서 스크린으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정말로 보아두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걸 본방에서 처음 보면 저, 설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웃음) ‘다음 곡은 무리에요!’라고 리허설도 한번 중단할 정도로...그건 훌륭했습니다.


-각각의 라이브 회장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의 요코하마BLITZ에서의 1st 라이브는 어떠셨나요?


닛타 그 때 막이 오르고 스테이지의 위에서부터 팬분들이 보였을 때의 공기가 바뀌었다는 것이 알았습니다. 그저 라이브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닌, 좀 더 큰 것이 움직이게 되었다는 감각이 있어서, “시작한다”라는 것은 이렇구나라고 생각했네요.


-팬들의 환성으로 시작한 순간을 실감했던거군요.


닛타 당시, 「러브라이브!」는 TV 애니메이션이 된 것도 아니고, ‘전격 G’s 매거진’이나 니코니코 생방송에서의 조금의 방송이 있던 정도라 수수께끼 같았습니다. 그게 갑자기 라이브를 하게 되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프로듀서와 이야기하거나 했습니다. 아직 불안했었네요.


-지금에 와서 뒤에 영상을 등에 지는 스타일이 확립되었는데, 당시에는 제로부터 그것을 만들게 된거군요.


닛타 영상과 성우가 어우러진 것이 μ’s가 시작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보이스드라마 등에서 라이브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체험하여 처음으로 그녀들이 말한 “라이브”라는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라이브는 외견도 얽혀버려서 호노카의 머리의 위치가 반대로 된다던가. (웃음)


호노카들, 그리고 우리들은, 영원히 μ’s입니다!


-라이브 회장도 점점 커져서 μ’s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것을 느끼셨나요?


닛타 TV 애니메이션 2기 이후는 눈 깜짝할 새에 날들이 지나, 뭐랄까 매달려있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래서 TV 애니메이션에서 호노카가 ‘3학년이 졸업하면 끝낼게’라고 했을 때에 저 자신도 구해졌다고 해야할까...저희들이 형태로 해야할 것은 이렇게 말한 그녀들의 추억이기도 하며, 그것이 저희들 μ’s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쿄돔 공연이 끝나더라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자신도 젊어질 수 없어. 그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바뀌지 않는 것에 향했던 것이 μ’s의 청춘 이야기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것을 부정하면 안된다는 기분은 있었습니다.


-그것을 말로해서 전해진 것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닛타 이 장을 빌려서 한번 더, ‘해산’은 아니라는 것을 소리로 크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좋아해주는 한 그 9인은 거기 있고, 그 이야기와 만났던 순간이 「러브라이브!」 라는 꿈의 시작입니다. 저희들은 도쿄돔 공연이라는 형태로 일단락했지만, 지금도 저는 μ’s의 코우사카 호노카 역의 닛타 에미라고 생각하고 있고, 80세, 90세가 되더라도 그렇게 말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새로 「러브라이브!」에 만날 때, 물론 저희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시기와는 겹치지 않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시간 안에서  μ’s의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μ’sic Forever♪♪♪♪♪♪♪♪♪~”라는 타이틀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당황하셨을 꺼라고 생각하고, ‘어째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거야!’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실꺼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한번 더 이야기를 처음부터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걸로 시간이 지나면, 어째서 호노카들이 ‘끝내겠습니다’라고 말한걸까, ‘스쿨아이돌 모두가 노래를 하자’라고 말한걸까, 분명 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닛타 씨 자신으로서는 최근 반년간 변화가 있었나요?


닛타 이 촬영으로 반년 만에 의상을 입으니, 간만에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었을 때의 부끄러움, 같은 기분이 있어서. (웃음) 고등학교를 마친 듯한 감각이네요. 좀 더 떨어져서 보면 반년따윈 그렇게 바뀌지 않아라고 생각합니다만, 대학에 들어가거나 막 취직한 것은 큰일이고, 그런 시간의 이야기구나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렸습니다.


-정말로 농밀한 6년간이었는데, μ’s의 멤버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이 있나요?


닛타 μ’s의 멤버는 사이가 좋지만, 여자친구와는 다르게, 역시 동료라는 느낌이랄까요. 응해주는, 응해주지 않는다던가 그런 것이 아닌, 가끔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주면서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런건 ‘동료’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더, 같이 6년간을 달려나온 호노카에게 무언가 한마디를.


닛타 라이브를 끝냈을 때에는 ‘고마워’라던가, ‘수고했어’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팟하고 떠오르지가 않네요...호노카는 제가 있더라도, 없더라도 호노카이기 때문에 활기차게 해나가겠지라고. 앞으로도 여러 사람에게 꿈을 주는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떨어지게 되었지만 계속 지켜보고, ‘앞으로도 함께야’라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에게 메세지를 부탁드립니다.


닛타 「러브라이브!」, μ’s를 사랑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나 멋진 6년간을 보낸 것은 「러브라이브!」를 사랑해주신 모든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μ’s의 이야기는 일단락을 맞이했지만, 호노카들의 μ’s는 언제까지나 계속 빛나는 여자아이로서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들 안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작품에서 많은 용기나 살아나갈 양식을 받았기 때문에, 팬 여러분들에게도 청춘을 헤메이고 있다면 몇번이라도 「러브라이브!」를 보고, 「러브라이브!」하고, 인생의 여러 상황에서 떠올려주세요. 호노카들, 그리고 저희들은 영원히 μ’s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청춘을 헤메이고 있다면 몇번이라도 보고, 「러브라이브!」해주시길 바랍니다.

2010년에 시작한 이래, 작중의 성공 스토리를 현실에서도 이루어낸 『러브라이브!』. 올해 4월에 열린 "µ's Final LoveLive!"에서 일단락을 맞게된 지금, 9명의 멤버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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